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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을 느끼며 걷다

누군가에게 기도터, 누군가에게 삶의 터

by 명선우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강화도 가는 버스는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전등사를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는데, 도착하려면 53분이나 남았다.

좀 지루하던 찰나, 시외버스 승차권 발매기가 눈에 들어왔다. 공항에서는 다양한 지역으로 버스가 연계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왠지 강화도행보다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더 끌렸다.


그리하여 겁도 없이 덥석 2시 30분 강릉행 티켓을 끊고 출발했다. 새로운 시도는 늘 설레었다.


5시 30분 강릉에 도착했다. 아직 날은 밝았지만 곧 날이 저물 시간이기도 했다.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탔다. 송정해변을 가달라고 했다. 송정에서 사근진 해변까지 솔밭을 따라 걸어도 힐링이 될 것 같았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어디서 왔냐고 내게 물었고, 서울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기사 아저씨는 강릉 예찬론자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강릉에 살 때는 잘 몰라요. 가끔 손님 태우고 장거리로 서울 갈 일이 생겨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주말여행 와서 놀다가 술 취해서 깨보니 월요일 새벽이고 출근을 위해 장거리 택시로 헐레벌떡 출근하는 사람들 말이에요. 출근 러시아워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니 열심히 밟아줘야 하거든요.


근데 서울 거의 와서 횡단보도에서 보면 사람들이 다 시체처럼 무표정하더라고요. 어디 그게 사람 얼굴입니까? 다들 좀비 얼굴처럼 무섭게 인상을 쓰고 다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손님 태워 드리고 빈 차로 강릉으로 돌아오면 여기가 그렇게 한가롭고 공기도 좋고 사람 사는 동네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곳에서 평생 살았지만 강릉이 좋아요.”


기사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맞아, 서울 사는 사람들은 다들 얼굴이 좀비 같지. 특히 월요일 아침이면 더 그랬겠네. 열심히 주말을 보내고 돈을 벌러 가는 사람들 중에 신나서 출근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 아저씨가 봤을 횡단보도의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송정해변에 도착했다. 소나무가 울창한 송정해변에서 소나무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예전에 들었던 말로는 소나무는 ‘별의 에너지’로 자란다고 했다. 소나무가지 뻗은 방향을 잘 보라고, 에너지가 강한 곳으로 가지를 뻗어 자란다고 했다. 어느 소나무들이 한쪽 방향으로 치우쳤는지를 관찰하며 걸었다.


강릉은 오늘 최고 온도를 찍어 인근 주민들은 해변 솔밭으로 다들 피신해서 나와 있었다. 피서객들 사이로 좀비처럼 내가 걸어갔다.


하늘이 점점 파스텔빛 하늘색과 옅은 오렌지가 교차되고 있다. 낮이 물러나고 밤이 바다 위로 내려앉고, 거기에다 아이스크림과 솜사탕 같은 구름을 군데군데 펼쳐놨다.


사근진 해변에는 유명한 바위가 있다. 무속인들의 바다 기도처로도 알려진 멍게바위다.


효성이 지극한 소녀가 병든 엄마를 살리기 위해 매일 그 바위 위에서 용왕님께 치성을 드렸다. 용왕님이 그 정성에 감복하여 멍게를 처방해 줬고, 매일 소녀가 따온 멍게를 먹고 엄마가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있다.


멍게바위는 감포읍의 문무대왕릉, 기장읍의 오랑대, 을왕리의 선녀바위와 함께 해마다 많은 무속인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적당한 날을 잡아 의식을 치르거나 홀로 독송을 하는 무속인을 본 적이 있다.


그 바위 뒤로는 무녀들을 위한 기도처를 내주던 민박집이 있었는데 헐려 없어졌다. 덩그러니 남은 멍게바위 위에 올라 무녀도 아니면서 괜히 용왕님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어 잠깐 기도를 올렸다.


누군가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리던 기도처였을 텐데 도시의 발전으로 그런 흔적들이 없어지는 것이 뭔가 아쉬웠다. 바위를 보면 안다. 사람들이 기도를 많이 올리던 곳은 남다른 아우라를 뿜어낸다는 것을. 사근진의 멍게바위도 그런 아우라가 있는 바위였다.


한참을 멍게 바위에 올라 바다를 바라봤다.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처럼, 어쩌면 나도 서울에서의 그 ‘죽은 얼굴’들 중 하나였는지 모른다.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니 생기가 돌아오고 가슴이 뻥 뚫렸다.


이제 서울로 올라가는 마지막 KTX를 예매했다. 버스를 타기에는 어중간한 시간,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시간을 때우려 사근진에서 강릉역까지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경포호를 따라 걷다 보니 강릉 사람들에게 경포호는 유명한 달리기의 성지 같았다. 젊은 남녀들이 무리 지어 달리고 있었고, 그런 달리기 동호회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9시가 넘어가니 달리는 옷차림조차 패셔너블하고 세련된 젊은 남녀들이 더 모여들기 시작했다. 뭔가 달리기보다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오해할 만큼 선남선녀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바라보기가 흐뭇했다.


다시 걸음을 옮겨 강릉 올림픽 운동장 쪽을 접어들면서 어둡고 길이 칙칙해졌다. 가능하면 가로등이 있는 쪽으로 걸었지만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은 아닌 듯했다. 본능적으로 몸은 바짝 긴장하게 됐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핸드폰을 손에 꼭 쥐자 땀이 고였다.


어느 순간 찻길 건너편으로 소녀가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예쁜 소녀의 존재가 이상하게도 내겐 든든한 의지가 되었다.


찻길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어두운 길을 나 홀로 걷고 있지 않다는 위안이 안도감을 줬다. 어디선가 그녀 쪽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다가 흘끗 그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오토바이는 그녀를 스치듯 지나가더니 재빠르게 불법 유턴을 하며 다시 한번 그녀 쪽을 훑어봤고 다시 유턴을 하려다 반대편의 나를 발견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남자의 얼굴에는 나의 존재가 낭패감을 안겨준 것 같았다. 오토바이는 그녀와 나를 빠르게 번갈아보다 처음 운전하던 경포호 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왠지 내가 그녀를 지켜낸 것 같았다. 어두운 길을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그녀에게 위안을 느꼈던 내 고마움을, 아까의 해프닝으로 갚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보 여행자, 특히나 여자 여행자들은 이런 위기의 순간(물론 그녀는 그런 낌새조차 느끼지도 못했겠지만), 서로 의지가 되고 지켜주는 존재가 된다.


소녀는 어려서 그런지 걸음걸이가 씩씩하고 재빨랐다. 제법 걸었던 이력이 있어 속도에 선 잘 지지 않는 나도 훌쩍 앞서가는 소녀에게서 거리가 벌어졌다.


왜? 이렇게 거리가 벌어지지?

혼자 그 원인을 분석해 봤다. 그녀에게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기 때문이다.


난 교차로에서 어디로 갈지 잠시 우왕좌왕한다. 버스 정류장마다 걸음을 멈추고 여기가 어딘지, 난 어디쯤 걷고 있는지, 이다음 코너에선 길이 연결되는지 파악하고 판단하는 동안, 자신이 정한 길로 오로지 직진만 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이 투영됐다.


맞아. 나도 이십 대 때는 뒤를 안 돌아봤어. 늘 못 먹어도 GO! 였다니까. 어차피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시간과 젊음이 있었으니까. 근데 이제 난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기 힘드니까… 몸을 사리느라 속도가 늦어지는 거네!


내 존재를 알아줄 일 없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젊음과 패기를 부러워했다. 정말 잘 걷는구나.


어느 순간 그녀를 놓쳤다. 마음으로 작별 인사도 못한 강릉의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이 글에 실어 보낸다.


강릉의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 사근진의 멍게바위에게, 이름 모를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걸었던 단발머리 소녀에게서 난 많은 것들을 얻었다.


그것은 강릉이라는 여행지를 선택했던 나의 모험의 결과물이었고, 난 이것들이 몹시도 만족스럽다.


자!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계절이 시작된다. 이제 계획된 여행 말고 나처럼 끌림이 이끄는 대로 어딘가로 떠나보자. 생각보다 훨씬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가득 안고 돌아오는 길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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