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곳이 내 현주소다! “
브런치 팝업 스토어에서 시작된 우연한 만남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작가를 꿈꾸는 한 여성을 만났다. 내가 브런치 작가로 활동한다는 말을 듣고 만나고 싶어 했다.
사실 나는 누구에게 조언해줄 주제가 아니다. 하지만 브런치 작가가 되는 법을 이야기해 주고, 앞으로의 진로를 위해 타로도 봐주기로 했다.
커피숍에서 타로를 펼쳤다. 어떤 맥락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내가 본 카드들이 그녀의 정곡을 찔렀나 보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십 평생 가족들을 위해 희생했다고 했다. 그녀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며 작업할 때면, 지나가던 가족들은 콧방귀를 뀌었단다.
“그런 거 해서 뭐 하게…”
그 말에 어린 자녀도, 원래 무심했던 남편은 더욱 정이 떨어지고 괘씸했다고 했다.
나는 타로를 봐주다 말고 이렇게 말했다.
“싹수없는 것들은 본 때를 보여줘야 정신을 차립니다.”
그 말이 그녀에게 꽤 후련한 한 방이었나 보다. 동시에 눈물샘을 건드렸다. 너무 참다가 꺼먹게 멍든 그녀의 한이 보였다.
그녀와 헤어지고 걸어오는데 발뒤꿈치 아킬레스건이 찢어질 듯 아팠다. 큰 병이 난 건가 싶어 급히 근막교정 선생님께 예약을 넣었다.
다음 날 선생님께 내 증상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요즘 내가 ‘간’이 안 좋아졌냐며 무릎과 연결된 정강이의 어느 부위를 눌렀다.
순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왔다.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선생님이 짚으신 부위에서 최대한 멀리 몸을 움츠리는 나를 봤다. 이미 통증 지점을 누르고 있으니 움츠려봐야 몇 센티미터도 안 될 텐데, 몸은 고통을 피해 아픈 지점에서 최대한 멀리 피하려고 했다.
통증을 피하려 한다… 아픔에서 도망가려 한다…
그 순간, 어제 만났던 그녀가 떠올랐다. 작가를 꿈꾸며 이혼을 결심하려던 그녀. 아픔에서 멀리 회피한들, 병의 근원을 고치지 않는 이상 잠시의 휴지기일 뿐이다. 고통을 들여다보고 아픔을 피하지 않아야 될 문제라는 답이 내 내면에서 올라왔다.
다시 교정 선생님이 반대쪽 혈자리를 눌렀다. 또 비명을 질렀다. 너무 아팠다. 하지만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아픈 곳이 내 현주소다.
아프지 않고 낫는 병은 없다.
아프게 반응하는 것은 낫기를 원하는 몸의 대답이다.
‘고맙습니다. 나의 몸, 내게 아프다 말해줘서.’
저절로 고마움의 인사를 하게 됐다.
내일 그녀에게 이야기해 줘야겠다.
지금 너무 아픈 현실은 낫을 조짐으로 오는 ‘현재의 신호’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그녀가 느끼는 지금의 고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의 첫걸음이라고.
아픔을 피하지 말고, 들여다보라고.
그곳이 바로 당신의 현주소이고, 그 아픔이 당신을 살리려는 몸의 신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