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770km 도보 여행이 준 교훈 (2016.5-6월)
아버지가 7년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수술비와 입원비, 간병비 등을 감당하다 가족의 삶은 너덜너덜해졌다.
모든 걸 마무리하고 나서야,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허공이 텅 빈 집 안에서, 나도 함께 휘청거렸다.
어떤 날은 방 안의 공기가 너무 무거워
숨이 막히기도 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가슴 안쪽 어딘가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신호가 들려왔다.
그때, 우연히 한 줄의 신문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해파랑길 개통 이음단 모집.”
부산 오륙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한 달을 걷는 여정이었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걸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도망치듯 지원서를 냈고, 덜컥 합격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집결지에 도착했을 때,
그들 사이에 내가 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안나푸르나를 완등한 분,
산티아고 순례길을 네 번 걸은 사람,
한국 걷기 연맹 관계자들까지.
그들 앞에서 동네 뒷산 몇 번 오른 경험은
명함조차 내밀 수 없었다.
하지만 길 위에서는 모두가 초보였다.
날씨와 체력, 마음의 파도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걷기란 ‘누가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버티느냐’의 문제라는 걸.
그 길에서 얻은 교훈은 셋이었다.
첫째, 떠날 때는 짐을 가볍게 해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챙긴 짐은 결국 나를 짓누른다.
며칠이고 싸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알았다.
짐은 곧 마음이었다.
둘째, 물은 책임이다.
산에서 물이 떨어졌을 때,
‘그 정도쯤이야’ 하고 빌리려다 멈칫했다.
누군가의 생명수를 덜어 쓰는 일,
그건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어떤 부족함도 스스로 감당하기로 했다.
셋째, 신발은 나 자신이다.
10km가 넘어가면,
내 발의 습관이 얼마나 잔인하게 나를 피로하게 하는지 알게 된다.
딱딱한 밑창, 과한 쿠션, 삐뚤어진 걸음.
걷는다는 건 결국
‘나는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인가’를 묻는 일이었다.
해파랑길은 오른쪽으로 태양이 쏟아지는 길이었다.
바람은 짜고, 햇빛은 뜨겁고,
길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무엇보다 이 길의 가장 큰 유혹은,
언제든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버스를 타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택시를 부르면 여정은 금세 끝났다.
산티아고처럼 걷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길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해파랑길은 더 어려웠다.
포기할 이유가 늘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번 멈춰 섰다.
발바닥이 타들어가고,
어깨의 무게가 등을 짓눌러도,
그저 숨을 고르고 다시 걸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완주가 아니라,
끝까지 가본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770킬로의 끝자락,
동해의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쳤다.
발은 다 해졌지만,
그때서야 알았다.
나는 길을 완주한 게 아니라,
내 안의 포기와 싸워 이긴 거였다.
그 이후로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힘들면 잠시 멈춰 숨을 고를 뿐,
다시 일어나 걷는다.
인생의 길도 결국,
그런 식으로 완보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