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각자의 슬픔이 있다.
“니가 사람이니? 네가 사람이야? 싫으면 내가 나가마!”
“예! 저 사람 아니라고 생각하시고 그렇게 욕하며 사세요!”
순영은 전화를 끊었다. 숨이 가빠졌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족과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던 순영은 갑작스레 시작된 시어머니와의 합거를 견디지 못했고, 남편과 아들을 두고 혼자 나가 살게 되는 며느리와 어머니는 크게 다투고 말았다.
간병 일을 오래 해 온 어머니는 더 이상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환자 보호자들로부터 “누굴 간병할 게 아니라 이제는 간병을 받으셔야 할 나이 같아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무리 본인이 정정하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은퇴 아닌 은퇴를 하게 됐다. 사전 합의도 없이 “아들과 살겠다”는 말에 “안 된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순영이 지나치게 예의 바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순영은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일이 어렵지 않으리라 믿었다
삼 년 전, 미래를 알기라도 하듯 순영은 시어머니에게 간병 일을 그만두고 어떤 노후를 준비할 건지 이야기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너희 식구들 힘들게 할까 봐? 나 아직도 일할 수 있고, 내가 뭐 요즘 시엄마들 같은 줄 아니? 나 세련된 시애미다. 너희 불편하게 할 일 없으니 신경 쓰지 마라.”
“어머니, 사람 일은 모르는 거예요. 이제 허리도 살짝 굽으시고 이대로 간병 일 계속하면 남들이 아들 욕해요. 무릎 성하실 때 여행도 다니시고, 다른 어르신들처럼 복지관이나 다니시면서 이것저것 배워 보세요. 성당에서 친구도 사귀시고요.”
“얘, 내가 놀면 누가 용돈이라도 주니? 돈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야지.”
순영은 더 이상 실랑이를 하기 싫어 돌아서며 생각했다.
‘세상 일이 뭐 본인 생각 한대로 돌아가나…’
그런데 ‘너희 힘들게 안 할 거라’ 던 시어머님은 안방으로 들어와 살게 됐고, 시내버스 기사인 남편과 병원에서 근무하는 아들은 각자의 삼 교대 근무를 이유로 방을 필요했다. 방 세 칸짜리 아파트에서 일정한 근무 시간을 가진 사람은 순영 혼자였다. 순영은 거실에서 잠을 자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그것이 지옥의 시작이었다.
시어머니는 아들 퇴근 시간에 맞춰 새벽 한 시이든 새벽 세 시이든 상관없이 밥상을 차렸다. 순영의 잠든 머리맡 위에서 압력솥이 울렸고 찌개가 끓었다. 잠자리 위로 청국장 냄새가 번졌다. 반찬을 꺼내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두 모자가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 소리는 순영에게 잠들 수 없는 소음이 됐다.
며칠 저러다 말겠지…
참고 또 참았지만, 여섯 달이 지나자 불면증과 더불어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다. 순영은 집에 늦게 들어가기 위해 거리를 걷고 카페에 머물렀다. 피곤하면 그 소음과 냄새를 잊고 잠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아니, 우리 엄마는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밥도 못 먹고 다니는 사람처럼 왜 자꾸 밥상을 차려?”
“아이, 당신이 말씀드려 봐. 하지 마시라고. 이러다 사람이 돌아버릴 것 같아.”
“그래도 노인네가 저렇게 기뻐하는데, 어떻게 하지 말라고 해?”
“여보… 그러다가 내가 죽어…”
착해 빠진 순영의 남편은 노모의 기쁨을 위해 매일 저녁, 이미 밖에서 먹은 저녁을 다시 먹었다. 이 기묘한 의식은 끝날 줄 몰랐다. 남편은 저녁이든 새벽이든 새색시처럼 밥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는 어머니를 위해 억지로 밥을 먹어 주고 있었다. 신경정신과 의사는 “이러다 당신이 당신을 죽일 겁니다”라는 무서운 경고를 순영에게 했다. 시어머니를 죽일 수 없으니 결국 스스로를 죽이게 될 것이라는 걸 순영은 알고 있었다.
탈출의 명분은 뜻밖의 곳에서 왔다. 남편이 곧 재개발이 들어갈 강북구 재개발 추진위원장에 출마한다는 소식이었다. 출마 자격은 실거주한 원주민이라는 조건이었다. 실거주 조건 때문에 주소를 옮기고 세를 주던 빌라로 들어가야 했다. 남편은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지 못했고, 퇴사 시기를 맞추기 위해 직장을 계속 나가야 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밥상을 차리는 행복을 위해 본가에 남았다. 순영 혼자 세를 줬던 빌라로 들어갔다. 이혼도 아니고, 도망도 아닌 방식으로 시어머니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스물 두 해 만에 홀로 돌아온 신혼집. 살림은 단출했고, 매일을 쓸고 닦았다. 가능하면 재개발이 시작되면 모두 버릴 요량으로 당근 거래를 통해 최소한의 가구만 들였다. 새벽이면 명상 수행도 했다. 소음도 냄새도 없는 작은 빌라는 마음의 평화 그 자체였다. 다만 한 가지, 층간 소음이 있었다.
“아이, 시발아! 가만 좀 있어!”
‘어머, 이게 무슨 소리지? 시발이라니… 뭔 욕을? 아이를 혼내나?’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인상을 쓸 것 같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우, 시발아! 왜 약 안 먹어? 왜 안 먹냐고!”
빌라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소리가 벽을 뚫고 순영의 귀에 꽂혔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혼내고 있어? 저 집은 말리지도 혼자 소리를 지르게 두는 거야? 애들이 혼나면 울 텐데… 반항도 안 하네. 무슨 약을 먹는 거지? 요즘 어린이도 우울증 약을 먹는다던데… 아이가 ADHD 같은 건가? 날 밝으면 가서 한마디 해야겠다 ‘
다음 날, 순영은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안쪽에서 살짝 벗겨진 정수리와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가 하얀 러닝 차림으로 무뚝뚝하게 문을 열었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아이가 사는 집 같진 않아 보였다.
“저, 새로 이사 온 옆집인데요. 좀 조용히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남자는 건조한 얼굴로 순영을 한 번 보더니 대답도 없이 문을 닫아 버렸다.
‘뭐야, 저 사람… 무례하네.’
짜증이 올라왔다. 소음과 청국장 냄새에서 도망쳐왔는데 또 다른 소음과 맞닥뜨리다니…
다음 날 아침, 순영이 조용히 명상 수행을 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 다시 열린 창문 너머로 옆집 소리가 들려왔다.
“아유, 시발아! 돌아누워! 엉덩이 들고 가만있어, 시발아!”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못된 상상이 엉뚱한 19금 소설의 장면으로 흘러가다, 다음 들려온 소리에 상상을 멈췄다.
“아유, 시발아! 똥을 다 뭉갰어.”
이 한마디에 순영의 오해가 풀렸다. 어제 무뚝뚝하게 대답도 없이 문을 닫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치매 노인을 요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순영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노인이 혹시 학대받고 있을까 봐 며칠 동안 옆집 벽에 귀를 쫑긋 세워 댔다. 폭력은 쓰지 않는 듯했다. 아들임이 분명한 남자는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계속 이름처럼 “시발아”라고 불렀다. 처음엔 그 욕이 충격이었지만, 홀로 치매 노인을 간병하며 터져 나오는 그 남자의 피로와 짜증으로 범벅된 절규처럼 들렸다.
사람들은 저럴 바에는 요양원이라도 보내라고 혀를 찼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도저히 돌볼 수 없는 상태라는 등급 판정을 받아야 입소가 된다. 오죽하면 요양원 입소를 ‘현대판 고려장’이라 하겠는가.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옆집 할머니를 생각하며 순영은 과거를 떠올렸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순영의 아버지는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었다. 돌아가시기 칠 년 전쯤부터 고혈압과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 투석을 받아야 했다. 병원비와 수술비는 뭉텅뭉텅 빠져나갔다. 병자 한 명이 십여 년을 앓자, 집안은 연속으로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위기와 가난 속에서 순영의 엄마는 자식 볼 면목이 없어 죄인처럼 눈치를 봤다. 엄마는 자녀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식물인간처럼 누워 지내는 아버지의 대소변을 칠 년이나 받아 냈다.
“야야, 느그 아부지 이번 병원비는 누가 낼끼고?”
“엄마, 내가 벌써 세 번이나 냈는데 이번에는 언니한테 부탁하면 안 되나?”
“느그 언니랑 오빠는 내 전화를 안 받는다. 엄마는 느그들 부담 안 줄라고 간병인 대신 이거 다 짊어지고 가는데, 느그들은 병원비라도 보태야 되는 거 아이가? 엄마가 천날만날 이렇게 할 수 있을 거 같나? 엄마가 이래 버티고 있을 때 잘해레이. 안 그라믄 진짜 후회한데이.”
엄마는 간병인을 쓰면 얼마나 비싼지 아느냐며, 너희 중 아버지 간병할 사람이 있느냐고 다그쳤다. 그런 게 아니라면 병원비라도 잘 대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넉넉지 못한 살림 속에서 오빠와 언니는 각자의 배우자와 간병 문제로 불화를 겪었고, 생활비 문제로 줄줄이 이혼에 이르렀다.
며칠 뒤 밤, 순영의 아버지가 오늘이 고비일지도 모른다는 긴급 연락이 왔다. 가족들은 병원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버지는 또다시 위기를 넘겼고, 그것은 순영에게 묘한 억울함을 남겼다.
“뭐야, 오늘 아니야? 회사 일하다 말고 오늘 내일 한다고 불려 온 게 벌써 몇 번째야. 이제 회사에서 조퇴도 안 시켜 줘”
“순영아. 이번에는 누가 응급실 비용 낼 거야?”
“몰라, 나 이번에 카드 한도 다 찼어. 이번에는 오빠가 좀 내.”
병원 복도에서 형제자매가 병원비를 두고 다투고 있을 때, 엄마는 코에 인공호흡기를 단 채 누워 있는 아버지의 가슴을 치며 울고 있었다.
“보소, 제발 좀 가이소. 얼라들 가슴에 그만 못 박고 이제는 가이소. 내도 더는 못합니더. 이게 사람 사는 꼴인교 ? 이제 제발 죽으소마.”
순영의 엄마는 지긋지긋한 악몽을 끝내 달라며,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아버지의 가슴을 멍이 들 정도로 쳤다.
“아이, 시발아! 왜 안 먹어? 밥! 밥 먹어!”
옆집 남자의 고함이 다시 빌라를 울렸다. 순영의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여든을 훌쩍 넘겼다. 머지않아 자신도 옆집 남자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두려움이 순영을 덮쳤다.
남자의 고함이 빌라를 울린다. 누구든 층간 소음으로 항의할 만한 상황인데도, 빌라는 침묵으로 외면했다. 옆집 남자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웃들의 미안함이 담긴 암묵적인 배려처럼 느껴졌다. 빌라를 뒤흔드는 ‘시발아’ 고함 속에서, 숨죽인 듯한 고요는 검고 무거웠다. 모두들 알고 있었다. 남자의 절규에 비해 자신들이 느끼는 불편은 언젠가는 끝날 시한부 고통이라는 것을.
순영은 조용히 옆집 소리가 들려오는 창문을 닫았다. 한숨을 내쉬며 잠시 멈췄던 걸레질을 시작했다. 욕은 욕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남은 말이 그것뿐일 때 튀어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빌라 복도를 비추는 보안등이 오늘따라 희미하게 떨리는 것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순영의 미래를 닮은 것 같았다.
며칠 후, 끝내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던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소풍을 떠나셨다.
빌라 복도를 울리던 남자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