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흰 쌀밥을 맘껏 먹을 수 있다면......

by 고냥

인류의 황금기가 있다면 언제일까? 전쟁과 기아가 최소한으로 줄고, 개인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이 최대한으로 보장되는 시기.

루이 14세도 지금 평범한 프랑스인만큼의 자유를 누리지 못 했을 것이다. 세계 어느 곳이든 일주일 이내에 도달할 수 있고, 온갖 이국적인 음식들을 마트에서 사 먹을 수 있다. 보고 싶은 예술작품과 음악도 언제든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런데도 대단히 행복 해들 하지 않는다.

왜일까? 이것이 나만 누리는 권리가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남들도 다 누리는 사치는 평범한 일상이 된다.

수 분 이내에 궁금한 정보를 다 찾아볼 수 있고, 멀리 떨어진 친구와 언제라도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 놀라운 일이 공기처럼 당연시되니까 그 사실로 행복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70~80대 어르신들을 매일 만나면서, 그분들의 살아온 역사를 들으면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긋지긋하게 고생했던 경험들이 다 있다. 그래서인지 그분들은 지금의 풍요를 감지덕지해하신다.

당뇨가 심해 잡곡밥을 드시라는 권유에도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 난 어릴 적부터 배곯지 앓고 죽기 전에 쌀밥 한 끼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어. 이제야 겨우 흰 쌀밥 실컷 먹어볼 수 있게 되었는데 다시 잡곡밥을 먹으라고. 나보고 잡곡밥 먹으라는 그런 말 하지 마."

그 말을 들은 후에는 흰 공깃밥이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다.

전쟁이 뭔지 알고, 죽음을 눈 앞에 둔 굶주림이 뭔지 알고, 병명도 모른 채 자식을 먼저 묻어 본 경험이 있는 어르신들은 흙수저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분들은 무슨 수저일까? 그들의 자식이자 흙수저의 부모인 40~50 대는 위로도 죄송하고 아래로도 미안해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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