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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장이 전반적으로 '태권도'라는 큰 틀 안에 있는 것을 모두 가르치기는 하지만 관장님의 과거에 따라 어떤 것을 주력으로 두는지가 조금씩 다르다. 일반부가 아닌 심화반, 그러니까 선수단이 어떤 선수단인가 를 보면 주력 포인트를 알 수 있고, 이에 따라 관장님의 과거를 알 수 있다.
내가 다니는 태권도장에는 겨루기 선수단이 있었고, 우리 관장님은 전 겨루기 국가대표 상비군이었다. 그래서 나 또한 자연스럽게 발차기 먼저 배웠던 것이었다. 그 말인즉슨 안 그래도 주 3회밖에 안 나가는 나는 그동안 품새를 배운 적이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품새 또한 승단심사에 있어 필수적인 종목이었다. 그러니 남은 준비기간 동안은 품새를 외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관장님은 내가 머리가 좋을 것이라 생각하셨다. 체육계와는 다른 인생을 살았으니 당연히 머리가 좋을 거라고 짐작하셨던 것 같다. 나도 내 머리가 그렇게까지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당연히 성인부인만큼 품새동작 하나하나를 훨씬 섬세하게 배워야 했다. 어떤 동작을 하든 늘 보조손동작도 함께 들어가야 한다. 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어떤 높이로 멈추는지가 다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런 세부내용들은 급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진짜 심각하게
품새를
못 외웠다.
세부동작 수정이고 나발이고 애초에 동작을 차례대로 외우질 못했다.
발차기가 두 번인지 세 번인지, 왼쪽으로 가는 게 먼저인지 오른쪽으로 가는 게 먼저인지, 어떤 손이 먼저 나가고 어떤 발이 먼저 나가는지 도대체가 외우면 외울수록 더 헷갈릴 뿐이었다. 2장으로 시작했는데 3장으로 끝나고, 4장으로 시작했는데 6장으로 끝났다.
다리 모양이 앞서기 자세인지 앞굽이 자세인지 구분해야 한다고? 지금 왼손 오른손도 헷갈리는데 그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유치부보다 나은 점이라곤 왼쪽과 오른쪽을 그나마 확실히 알고는 있다는 것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중고등학교 시절에 유행했던 그 어떤 아이돌 댄스도 따라춰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시도는 했었다. 그저 두 동작 이상 연결하지 못했을 뿐이다.
게다가 나는 움직임 마저 뻣뻣했다. 아니, 요가는 제법 따라 하는 편이었으니 뻣뻣했다기보다는 어색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가끔 걷다가도 같은 손과 같은 발이 동시에 나가곤 했으니까 말이다.
순서도 엉망인데 어딘가 어색하기까지 한 내 품새를 보고 부관장님은 결국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던 관장님은 차마 웃지도 못한 채 눈만 질끈 감았다.
그렇게 내 별명은 평화주의 목각인형으로 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