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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연애에 유일하게 감사한 지점이 있다면
회사로 인해 미쳐 돌아간 스트레스 지수를 연애 초반에 나오는 도파민으로 감당했다는 부분이다.
스트레스와 도파민의 상쇄로 인한 것인지 당시 연애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도 주 3회 태권도는 꼬박꼬박 나가서 2단을 따기 위한 준비는 열심히 했었다.
사실 기억에는 제대로 없지만 아마도 열심히 했었을 것이다.
심사 전날 차였음에도 2단 심사를 무사히 치렀으니 말이다.
코로나 시국의 심사는 정말 단출했다.
심사 당일 아침 도장으로 향했다. 장소의 변화도 없었고 같이 연습하던 아이들도 그대로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심사를 진행했다.
유일한 차이점이라곤 국기원에서 관계자가 와서 앞에서 통촬영을 했다는 점이다.
2단 심사 지정품새는 고려, 무작위 선정 품새는 8장이었다.
고려 맨 마지막에 고려 준비자세가 아닌 기본 준비자세를 했다가 헉 소리를 내며 다시 고려 준비자세로 바꾼 것을 제외하면 틀린 부분은 없었다.
겨루기 심사는 더욱 간단했다. 허공에 대고 발차기를 종류 상관없이 열 번 정도 차면 되는 거였다.
도장 아이들은 상대방과 겨루기를 일상적으로 해왔다 보니 허공에 대고 발차기하는 것이 조금은 어색했다.
하지만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어차피 나의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다 어색했다.
품새 중 하는 발차기와 딱히 다를 바 없이 애매하고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한 회심의 일격들을 날렸다. 발차기를 하다 넘어지거나 스텝이 꼬이는 불상사는 다행히 없었다.
그렇게 내 2단 심사가 끝이 났다.
전날 갑작스럽게 전화통보로 차인 뒤 새벽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상대에게 내일 국기원 심사 있는 거 알면서 그걸 꼭 지금 얘기했어야 했냐고 했다. 진짜로 그 부분이 제일 열받았으니까.
어차피 곧 헤어지겠다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는 하나도 없는 시점이었다.
물론 20대 후반 사무직 회사원이 주체였던 만큼 상대는 국기원 심사의 중요도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심사가 끝나고 나자 모든 긴장이 풀려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심사 때 뭘 어떻게 했는지 회상할 기력도 정신도 없었다.
편의점에서 빈속을 대충 에너지바로 달랜 뒤 집에 가서 기절하듯 침대 위로 엎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