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심판의 아이들

정심여자중고등학교에서 1

by 겨울나기 이코치


소년심판


"아이를 낳아보고 키워보니

세상에서 가장 지켜야 할 약자는 아이들이더라고요.

부모도, 교사도, 경찰도, 판사도 어른이라면

다 아이들을 지킬 책임이 있습니다."


2022년,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주인공 심은석(김혜수) 판사가 했던 명대사입니다.


저는 드라마가 공개되자마자 바쁜 시간을 쪼개

3일 만에 10부작 전체를 모두 시청했습니다.

제가 만났던 아이들과 깊은 연관이 있는 내용이라

평소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드라마 댓글에는 '재미있다'는 표현이 상당수를 차지했지만, 저는 그 댓글들이 마냥 편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습니다.

마치 목에 가시가 걸린 듯 거슬렸고

저도 모르게 "재미있다고? 재미있다고?" 하고 되뇌게 되더군요.

아마 드라마 속 이야기가 저에게는

단순한 허구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직접 만났던 소년, 소녀들의 삶이

드라마라는 옷을 입고 현실감 있게 펼쳐지고 있었으니까요.


드라마 에피소드 중 청소년 회복 센터의

여자아이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들이 센터에서 도망치자,

심은석(김혜수) 판사가 아이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센터를 나온 아이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성매매를 알선했고, 심지어 친구였던 한 소녀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충격적인 모습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장면은 계속해서 지켜보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힘들었습니다.


정심여자 중. 고등학교 진로교육 이야기


'정심여자중고등학교'라는 곳이 있습니다.

법무부 산하 안양소년원에 위치한 학교로,

보호처분을 받은 여자 청소년들이 학업을 이어가고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특수교육기관

입니다. 당시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하며 활동하시던 교수님 중 한 분이 이곳 여학생들과 지속적으로 상담을 진행하셨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권유로 15명의 학생들을 만나

진로교육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 학생들이 위법 행위로 보호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은 제게 편견을 가지게 했고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 솔직히 무겁고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막 코치 자격을 취득하고 사람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기에,

이를 성장의 기회라 여기며 용기를 내었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제가 만난 그곳의 소녀들은

여느 10대 소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 온 과자들을 꺼내 놓으니(담당관 허락하에)

"학교에는 없는 과자 종류"라며 서로 먹여주고,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깔깔거리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다'는 말이 떠오르는

영락없는 사춘기 소녀들이었죠.


간식을 먹고 진로교육에 들어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교육을 진행하던 계절은 한여름이었고 매우 무더운 날씨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날씨에 팔 토시를 착용한 학생들이 여럿 있었던 것입니다.

덥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한 여학생이

"선생님, 더운데 팔 토시 벗어도 되나요?"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럼, 더운데 얼마든지 벗어도 되지!"라는 저의 답변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토시를 훌렁훌렁 벗어던졌습니다.

그리고 곧 학생들이 토시를 착용했던 이유가 드러났습니다. 장미와 각종 동물, 그리고 다양한 문구 등의 타투가 양팔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 너무 당황이 되었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시선을 거두고 서로의 장점 찾아주기 활동을 진행하며 진로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생각보다 진지하게 참여했고

교육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가졌던 편견은 생각보다 빠르게 깨졌고 아이들과 친밀한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소녀의 후회


한 소녀가 우리 모두에게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에 면회실에서 엄마가 음식을 해 오셔서 먹었거든요.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제가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요. 후회스러워요."


아이가 말을 마치자, 다른 한 학생이 반응을 했습니다.


"엄마가 있으면 그러면 안 되지. 나는 아무도 없는데."


수년 전에 일이지만 '나는 아무도 없는데.'라는 말이 지금도 코 끝을 저리게 합니다.


엄마가 찾아왔다는 아이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엄마는 혼자 일하며 소녀를 양육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녹록하지 않았고

옷이며 신발, 사용하는 학용품을 보고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중학교 입학 후 사복이 아닌 교복을 입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소녀는 안타깝게도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일진 무리'에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무리에 들어가면 친구들이 자신을 무섭게 생각할 것이고, 과거와 같은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일진 무리의 아이들은 후배 학생을 폭행했고, 소녀는 그것이 잘못된 줄 알았지만

두려움에 말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현장에 함께 있다 가해자가 되어

학교에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 아이가 만난 '겨울'.

아이는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자신을 지키고자 선택한 방법은 결국 소녀를 더욱 거칠고 시린 겨울 속으로 밀어 넣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언젠가 겨울에서 벗어나 봄으로 걸음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소녀에게는 함께 겨울을 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어붙은 손을 잡아주며

겨울을 나는 아이에게

'너는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 준 '한 사람',

바로 '엄마'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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