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신호탄:자기공개

정심여자중고등학교에서 2

by 겨울나기 이코치


자기 공개(Self-disclosure):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제 교육의 주제는 '진로'였지만,

학생들이 점차 마음의 문을 열자 곳곳에서

'자기 공개(Self-disclosure)'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자기 공개(Self-disclosure)'는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어도 된다는 안전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누군가에게 오픈하기 어려웠던
실수나 실패의 경험처럼 아주 사적인 내면이나
경험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의사소통과정이지요.
심리학자 Jourard는 이러한 자기 공개를
인간관계를 깊이 있고 풍성하게 만드는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시 원래의 교육 주제를 내려놓고,

아이들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한 소녀를 첫 시작으로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숨기지 않고 말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잘못인 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중 어머니의 행방을 알 수 없어 아버지와 살고 있던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동안 고통스러운 학대가 계속되었고,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 싶은 마음에 결국 가출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왕래할 일가친척조차 없던 아이들은

밤낮없이 헤매며 거리에서 잠이 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갈 곳 없던 아이들은 결국 SNS를 통해 가출팸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가출팸: 가출 후 일행을 이루어 함께 생활하는 청소년을 일컫는 말

처음에 친절했던 가출팸의 언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생활비가 필요하다며 일을 해야 한다고 윽박을 지르기 시작했고 험학해지는 분위기가 무서워 고분고분 언니들을 따라나섰습니다.

언니들은 쌍둥이 자매에게 다름 아닌 성매매를 알선했습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던 그 일은 현장에서 적발되었고 이후 보호 처분을 받고 이곳 학교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자매는 처음에는 보호처분을 받게 된 것이

두렵고 무서웠지만 막상 와 보니 잠 잘 곳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성매매를 강요받지도 않으며,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학교가

바깥세상보다 훨씬 안전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겪는 그 혹독한 겨울 이야기에

저는 가슴이 답답해져 왔습니다.

문제를 알면서도 당장 도와줄 수 없는

제 자신의 무능함에 교육 현장이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의 선택을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합리화할 수는 없지만,


"아이를 낳아보고 키워보니 세상에서

가장 지켜야 할 약자는 아이들이더라고요.

부모도, 교사도, 경찰도, 판사도 어른이라면

다 아이들을 지킬 책임이 있습니다."

심은석 판사의 대사가 떠 오릅니다.


아이들의 겨울은 저리도 시린데,

우리 어른들은 그리고 이 사회는

언제까지 이렇게 책임을 다하지 않고

아이들을 방치할 것인지 마음이 아픕니다.


교육의 마지막 활동으로, 학생들은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롤링페이퍼에 적었습니다.

페이퍼에는 "너를 만나서 좋았어.

하지만 다시는 이곳에서 만나지 말자"라는

유사한 결의 내용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학교가 바깥세상보다 안전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던

쌍둥이 자매 또한 서로에게 "그래도 다시 이곳에 오는 일은 만들지 말자"며 서로를 토닥였습니다.


물론 '소년심판' 드라마에서처럼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냉담한 아이들도 분명 존재하지요.


그러나 우리의 다정한 시선은

어른들의 방치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를 받지 못하고

혹독한 겨울에 갇힌 아이들에게로 향해야 합니다.

그 아이들은 드라마 속 가상인물이 아니라

엄연히 우리와 함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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