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프다"

슬픔과 고통에도 자격이 필요한가요?

by 겨울나기 이코치


타인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기로.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프다."

우리나라의 속담 중 하나인데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내 아픔에 자격을 주기 때문입니다.

안심하고 아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린 겨울의 아픔마저 타인에게 허락을

구하는 우리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내게는 이리도 시리고 아픈 겨울인데

고통과 아픔의 크기를 견주며

누군가에게 말하기 어렵고

말을 한다 해도 오히려 말한 것을 후회하는 상황이 생기니까요.

내가 겪는 겨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그 정도 가지고 뭘?"이 되면 더욱 그렇습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손톱 밑에 가시가 가장 아프다."라고 말입니다.




가만히 침묵으로 들어주는 한 사람


제약회사 연구원 출신 사토 겐타로 작가의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은

초기 의약품의 흥미로운 역사를 들려줍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3000년경에 걸쳐,

무려 550종에 달하는 의약품 목록이 점토판에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초기 의약품 목록을 보면 '옛사람들의 지혜가 참으로 대단했구나!'라는

부응하는 내용이기를 바라게 되지만, 막상 그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누구나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약은커녕 쓰레기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온갖 더러운 물질들이 버젓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소똥, 말똥, 썩은 고기와 기름, 불에 태운 양털, 돼지의 귀지 등...

오늘날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질병이 악마가 몸속에 침투하여 만들어내는

나쁜 현상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몸속의 악마를 쫓아내려면

악취를 풍기는 동물의 똥이나 오줌, 썩은 고기, 심지어 돼지의 귀지처럼

악귀가 싫어하는 더러운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죠.


하지만 기원전 460년경에서 377년경에 이르는 의학의 성인,

히포크라테스 시대에 이르러 질병이 더는 악마의 소행이 아닌

자연 현상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이 '쓰레기 약 목록'은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잘못된 신념이 깃들면 사람을 살리는 약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병들게 하는 방법을 쓰게 된다는 것을요.


마음에 겨울이 오면 몸에도 영향을 준다고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정신적인 어려움은 어느 부위를 수술하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보니 오해를 받기 쉽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말이야, 사회생활이 어디 쉽나? 정신력을 강하게 해 봐!",

"포기가 왜 그렇게 쉬워? 최선을 다해 보라고.",

"너는 허구한 날 그런 일이 생기니? 너한테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들어 봐" 같은 말들 말이에요.


신념이 깃든 자기중심적인 이런 말들은 나의 의도가 아무리 선량했더라도

받는 이들에게는 약이 아니라 쓰레기가 됩니다.

말하는 이는 약을 건넸다고 착각하지만

우리가 던 진 쓰레기 때문에 그들은 졸지에 쓰레기 통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

누가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격언처럼 전해지는 이 말이

우리가 써야 할 아주 중요한 약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각자가 겪는 겨울의 아픔을 우리의 저울로 그 크기를 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고통과 아픔의 크기는 매우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지요.


10년째 코치로 활동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는 질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경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경청은 제 신념을 비워내야 하는 일이었기에

제게는 정말 어렵고 힘든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상대방의 신을 신는다'는 격언은 의미 충만한 멋진 말이었지만,

저처럼 속에 자기 할 말이 많은 사람에게는 혹독한 훈련이 되었고

아니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전히 훈련 중입니다.


경청과 침묵은 언제나 하나의 쌍이었습니다.

온전히 듣기 위해서는 제 속에 가득 찬 말들을 멈추고,

기꺼이 침묵해야 합니다.

마음과 입 모두를 조용히 지킬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지요.


시린 겨울을 나는 이들에게는,

기꺼이 자신이 신은 신을 함께 신고

가만히 침묵으로 깊이 들어주는 이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마음을 놓고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너무나 아프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니까요.


침묵은 금이 아니라, 겨울 속 얼어붙은 마음들을 녹이는 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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