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역에는 겨울이 온다.

퇴직이 불행이 되는 나라.

by 겨울나기 이코치


33년간 달려온 열차의 종착역은 "퇴직역"


공기업에서 33년.

일은 제 삶의 모든 세월이 깃든 곳이었고, 제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단 한 번의 이직도 없이, 오롯이 한 곳에서만 근무했죠. 그때는 그것이 곧 저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침 6시에 눈을 떠 남들보다 일찍 출근했고,

저녁 6시에도 퇴근하지 않고 남들보다 더 늦게까지 야근했습니다. 그것이 제 삶의 루틴이었죠.


어디를 가도 번듯하게 내밀 수 있는 명함이 있었고, 그 명함은 곧 저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국가의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며 능력을 인정받는 것은 물론, 후배들에게는 소통 잘하는 ‘일 잘러’로 존경을 듬뿍 받았지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매달 꾸준히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 오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두 아들의 양육은 아내의 몫으로 남겨두어도 된다고, 그 모든 것까지 제가 잘 해낼 수는 없다고 스스로 합리화했더랬습니다.

그래서 사실 아이들이 어찌 자라고 있는지 모르는 무심한 아버지이기도 했습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시간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종착지에 도착했고,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려야 했습니다. 33년간 달려온 이 열차가 더 갈 다음 역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33년의 종착점이었으니 평온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그만 편히 쉬라며 모두가 박수를 쳐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일을 좋아했고 잘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무게가 가벼웠던 것은 아닙니다.


종착역의 이름은 '퇴직역',

제가 갈 곳은 가족들 곁이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꽤나 친숙해 보였고, 저도 당연히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관계에 당연함이란 없었습니다.


아내도, 아이들도 저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지붕 아래 살았지만, 저는 가족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아침 식사로 빵 한 조각에 커피를 마시는 아들들에게, "한국 사람은 밥심인데, 아침밥이 보약이니 밥을 먹고 다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더 언성을 높입니다.

"이 나이 먹어서까지 내가 아침밥을 해야 하냐"는 것이었죠. 평생 밥을 해 먹였으니 이제는 좀 손수 해 먹으라고 하는데, 그 말이 어찌나 서럽고 노엽던지요.


그래도 두어 달은 은퇴를 축하한다는 핑계로 사람들을 만나며 그 서운함을 달랬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아내의 살림하는 모습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행주는 빨아서 햇볕에 빳빳하게 말려야 하는데,

대충 빨아 싱크대에 걸쳐둡니다.

설거지도 뽀득뽀득하게 해야 하는데,

건성건성 문대고 헹구어 버립니다.

저는 무슨 일이든 제 역할이라 여기면 제대로 해내야 하는 성격이라, 건성으로 하는 아내의 모습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렇게 생각만 하던 것들이 저도 모르게 잔소리가 되어 불쑥불쑥 튀어나왔습니다.

점점 주책바가지가 되어갑니다.

아내는 더 이상 저에게 져주지 않았고,

그 순하던 눈매가 옆으로 쫙 째지며 저를 쏘아봅니다.

그 시선이 하도 따가워, "이제 돈을 안 벌어다 준다고 그러느냐, 33년간 내가 벌어다 준 돈으로 잘 살지 않았느냐"라고 물었더니 아내가 되려

"나는 놀았냐"라고 되묻더군요.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매일 눈만 뜨면 갈 곳이 없어 하루가 멀다 하고 아내와 티격태격하는 제 모습이 한없이 처량합니다.


이제는 저를 찾아주는 이도 없습니다.

사회적 위치를 잃었고, 가정 내 입지도 좁아졌습니다.

예상치 못한 우울감이 밀려들어옵니다.


시청에서 진행하는 중. 장년 재취업 교육에서 만난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상실감에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감까지 밀려와

힘드셨을 마음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퇴직 이후 비슷한 모습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주변 지인이 "아직 건강하니 집에만 있지 말고 교육을 신청해서 공부해 보라"라고

권해 주어 마지못해 등록하고 나오셨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감정은 억누르기만 했을 뿐, 표현하고 살아오지 않으셨기에 가족들에게 본인의 마음이나 생각을 전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울 수밖에 없으셨을 겁니다. 그러니 더욱 고립되고 외로움이 깊어지셨을 수밖에요.


생각지도 못하게 시작된, 뒤늦은 겨울나기.



봄인줄 알았는데


그런데 옆자리에 앉으신 미소가 인자한 K 선생님이 모든 이야기를 가만히 함께 들으시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지금이 바로 기회입니다. 가족들과 천천히 대화를 시도해 보세요.

그간 얼마나 열심히 살아오셨는지, 가족들도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다만 우리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니, 가족들도 우리를 오해하는 것이지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인생을 함께 살아갈 이들은 결국 가족들뿐입니다."


그 말을 듣고 선생님께서는 "생각은 간절한데 잘 안되네요." 하고 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K 선생님은 "네, 그러실 수 있지요.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진심을 보여주시지요. 그래야 우리 남은 생이 평안해질 테니까요." 하고 다정하게 답해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어 K 선생님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하나뿐인 아들과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답니다.

아들이 제게 우체국에서 근무하며 '고객 서비스 만족도 1위'를 했던 경험을 스펙으로 써야 한다고 조언해 주어서, 시에서 운영하는 주차 관리직에 도전했어요. 주차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우체국에서 근무하며 받았던 '고객 만족도 서비스 1위' 평가처럼 응대하며 일에 임하겠다고 했지요. 아! 그리고 '라떼는 말이야.'는 절대 하지 말라고 일러주더군요. 아버지는 다시 신입사원이 되신 것이라며, 배우겠다는 마음가짐과 자신보다 어린 상사의 지시도 적극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고요. 이제는 제가 아들 녀석에게 배우는 게 더 많아졌습니다."


아드님의 지혜로운 조언 덕분이었는지,

K 선생님은 벌써 두 차례나 계약직 공공근로 경력을 쌓게 되셨다고 합니다.


중장년층의 취업 시장이 청년들 못지않게 치열하고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원하는 곳마다 합격하셨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좀 더 기간이 긴 일에 도전하고 싶어, 자기소개서에 더욱 정성을 들여야 할 것 같다며 교육을 받으러 오셨다고 하셨지요.


4일간 진행되는 교육 기간 동안, 두 분은 단짝처럼 가까워지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깊은 우울감으로 마음이 힘드셨던 선생님은

조금씩 삶의 방향을 찾아가셨습니다.


성실과 책임감으로 평생을 살아온 중장년층에게 퇴직이 봄이 아닌 한겨울이 될 수 있음을 교육 현장에서 실감하며, 문득 김누리 교수님의 책,『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가 떠올랐습니다.


김누리 교수님의 저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개인의 불행이 그 개인의 책임이 아닌, 잘못된 사회 시스템과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교수님은 이 책에서 우리 사회가 발생하는 불행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이상한 사회'가 되었다고 비판합니다.

얼핏 개인적인 문제로 보이는 많은 불행들이 사실은 사회적 시선, 그리고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회 구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하셨지요.


우리가 겪는 어떤 겨울들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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