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눈에도 삶을 밝히는 빛이 있음을

눈의 빛을 밝히길

by 겨울나기 이코치



'눈빛'에 담기는 생(生)과 사(死)


'눈빛'

따스함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단어입니다.

사람들은 왜 눈에 빛이 있다고 인식하며 '눈빛'이라는 말을 사용할까요?


실제로 우리 눈은 빛을 반사하고 투과하는 광학적인 현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눈물이 글썽일 때는 눈이 더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면 유독 눈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광학적인 현상을 넘어서 우리는 '눈빛'에 생(生)과 사(死)를 담습니다.

'눈빛이 살아 있는 사람'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눈빛이 죽어있는 사람'은 몸은 살아있어도 마음이 죽어 있음을, 그래서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고들 합니다.


인생의 겨울이 짙어지면 눈빛이 시들어가고, 끝내 눈의 빛이 사그라듭니다.

잃어버린 것에 마음에 묶이면, 눈은 어둠에 갇히게 됩니다.


사람을 잃어버리고,

시간을 잃어버리고,

건강을 잃어버리고,

꿈을 잃어버리고,

잠을 잃어버리고,

쉼을 잃어버리고,

배려를 잃어버리고,

친절을 잃어버리고,

용서를 잃어버리고,

사랑을 잃어버리고,

결국 나를 잃어버리고

그렇게 잃어가며 우리의 눈빛도 생기를 잃어갑니다.




다시 눈의 빛을 밝히기


어린 시절 질병으로 한쪽 눈을 완전히 잃은 시각장애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악착같이 공부했습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달리고 또 달려, 목표한 대로 원하는 성적을 이루며 성장했죠. 잃어버린 한쪽 눈의 빈자리는 성적으로 인정받으며 채워졌습니다. 그렇게 그는 학업에 있어 항상 우수한 성적으로 인정을 받아왔고, 원하는 대학에 유망한 학과에 진학하며 더할 나위 없는 앞날이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교내 연구 활동팀에서 꿈을 키우던 중, 태어나 처음으로 관계에서 엄청난 상처를 경험했습니다. 연구 활동 경험을 통해 대학원 진학을 꿈꾸었지만, 관계 상실의 상처는 넘어설 수 없는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도망갈 곳이 필요했습니다.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늘 플랜 B로만 생각했던 공기업이나 대기업 등 취업의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은 다른 길을 찾게 했지만, 수많은 정보들은 자신의 선택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가슴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분명한 꿈이 있었으니까요.


관계의 상실을 경험하고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몇몇 친구들이나 부모님과 이야기 나누어 보았지만 그때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와중 기숙사에 함께 생활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이 되어 나가게 되었고 현재 그 방에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관계의 상실과 상처에만 갇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학교 공고에 올라와 있는 취업 관련 교육들에 쉴 틈 없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상실에 대한 아픔을 애도할 시간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서진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고 뛰어다니며 여러 컨설턴트를 만났지만, 원하는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있는 전문가를 만나고 싶다며 수소문하여 결국 저를 찾아온 것이었지요.


학생의 눈빛이 느껴졌습니다. 표정은 밝았지만 그의 눈은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차분히 들은 후 천천히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이코치] "쉴 때는 어떻게 해요?"


한참을 대답하지 못합니다.

열심히 사느라 쉬어본 경험이 없었던 겁니다.

잠시 후 학생은 종전에 한 이야기보다 좀 더 깊은 마음의 소리를 전해주기 시작했습니다.


[학생] "제가 공부하고 혼신을 다하고 대학에 오게 된 것도, 그저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껴서였고, 돌이켜보면 지난 24년간 스스로를 너무나 몰아붙이며 살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잘하고 싶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커졌어요. 생각해 보니 살면서 남이 저에게 뭐라고 해서 상처받은 것보다도,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상처 입힌 경우가 훨씬 많았던 것 같아요."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이코치]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어요?"


[학생]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또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 저로 인해 많이 힘들어했던 모습을 보면서, 그 힘들었던 마음을 덜어 드리고 싶다는 욕구가 어렸을 때부터 아주 컸던 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부모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저에게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도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제가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던 것 같습니다."


학생의 이야기 속에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코치]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건 가족을 사랑해서 아니었을까요?"


순식간에 학생이 있는 공간 너머로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는 게 느껴집니다.


[학생]

"네, 맞아요. 가족을, 부모님의 사랑을 너무 잘 아니까요.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요."

학생의 눈빛이 흔들립니다.


[학생]

"코치님, 완벽주의적인 제 성향이 실패를 허락해 주지를 않는 것 같아요. 지금껏 잘해왔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대학원에 지원했는데 떨어지거나, 취업을 준비했는데 불합격을 경험하며, 기약 없는 앞으로의 과정이 저를 완전히 무너지게 할 것 같아요."


[이코치]

"네 S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요.

맞아요, 대학원 진학도 취업도 모두 중요하지요. 그런데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답니다.

제가 우리 학생들을 만날 때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이 있어요. 취업이나 진학보다 우리 학생들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고요. 그래서 지금의 이야기는 꼭 해야 할 것 같아요. 인생에 있어 절대 놓치고 가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S님 자신이에요. 지금 마음이 산산이 부서져서 울고 있는데, 이걸 방치하고 또다시 바쁘게 지나가는 것은 안 됩니다. 무엇인가 성과를 내고, 이루고, 성공했다는 그 기준에 도달하면 더 행복해질 것 같고, 내가 더 나은 사람처럼 느껴질 것 같지요? 그런데 그렇게 이루고 나서 내 안이 텅 비어버리면 공허함만 남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지금 저와 함께 부서진 마음들을 다시 이어 붙이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애도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학생]

"어떻게 보면 대학 생활의 마무리는 결국 취업 준비로 귀결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간 준비해 온 대학원을 가지 않는다면 이 시점에서 제가 확실히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모든 노력들이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과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잘 마무리해야만 제 시간과 노력이 더욱 가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관계의 상실과 실패로 생겨난 두려움을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었어서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코치]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어요. 그럴 수 있죠. 만약 두려워할 만한 상황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다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어요?"

[학생]

"제 생각에는 반드시 또 똑같은 상황이 생긴다고 봐요. 그래도 만약 그렇지 않다면 대학원 가서 제가 원하는 연구와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이코치]

"네, S님. 두려워할 만한 상황이 생기지 않는다면 대학원에 가고 싶으시군요. 그런데 상처가 너무 아프죠?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온전히 버리고 용기를 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 감정이 그렇게 쉽게 버려지지가 않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두려움을 안고서도 한 걸음 내딛는 용기를 살면서 생각보다 자주 내었답니다.


S님 처음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게 되었을 때 어땠어요? 낯설지 않았어요? 두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기까지 멋지게 성장을 이루어 내었지요. S님은 그런 존재랍니다.


지금껏 S님이 자신을 몰아붙였다고 하지만, 달리 말하면 목표 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이었던 것이죠. 성실했고 책임을 다했고요. 그동안 정말 잘해왔어요. 충분히 잘해왔습니다. 그러니 우리 부서진 마음도 다시 붙여주고, 좀 더 단단해지는 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나중에 두려움 때문에 놓쳐버린 꿈에 미련이 남지 않도록, 대학원 진학에 떨어지는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같이 만들어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건 제가 확신하는데,

S님은 잘 될 수밖에 없어요.

잘 될 수밖에 없게 생겼거든요~ㅎㅎ"


학생의 미소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코칭 이후 학생이 제게 보내준 눈빛입니다.



보이는 눈보다 더욱 생기 있는 눈빛을


이제는 고인이 된 강영우 박사는 중학교 시절 사고로 실명했고, 이후 어머니와 누나를 잃으면서 고아가 되었습니다.

유년기를 좌절감에 사로잡혀 살았던 그는

잃어버린 것에 마음을 두며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이 원망과 좌절의 늪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의 빛은 잃었지만,

신이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낸 이유가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삶과 스스로를 소중히 돌보는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1976년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가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의 두 아들을 글로벌 리더로 양육했다는 것입니다.


첫째 아들은 안과 의사가 되어 36세라는 나이에 미국 워싱턴 안과의사협회장에 선출되었고, 워싱턴포스트에 의해 '슈퍼 닥터'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변호사가 되어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했습니다.


강영우 박사가 자녀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것은 열등감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자기 신뢰를 바탕으로 자존감을 높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고자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여 이루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었죠. 강영우 박사는 자신의 삶을 통해 자녀들에게 긍정적인 정체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큰아들이 어린 시절 "우리 아빠는 운전도 못 해요. 야구도 못 해요. 세발자전거 타는 것도 못 가르쳐 줘요. 우리 아빠 눈 좀 고쳐줘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을 보지 못하는 아빠의 눈은 아들의 겨울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강영우 박사는 잠자리에 드는 아들에게 불을 끄며 "아빠가 눈이 보이는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도 있단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게 뭐예요?"라고 질문했습니다. 답변 대신 박사는 캄캄한 방 안에서 점자로 된 동화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의 어린 큰 아들에게는 캄캄한 방 동화책을 읽어주는 아빠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큰아들이 하버드 대학교 지원 시 합격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에세이에 담기게 되었고, 그는 결국 합격의 기쁜 소식을 아빠에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입학 사정관들과의 인터뷰 시 큰아들 강진석 박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저는 눈이 보이는 아버지와 살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 차이를 정확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시각에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함께 살며 무엇이 다르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이나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모든 것이 자연스러울 뿐이었지요. 아버지는 육안의 시력은 잃었어도 세상을 보고, 인생을 보고, 미래를 보는 선명한 비전을 가지고 삶을 살아 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를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삶이 저의 인생을 선명한 비전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강영욱 박사는 보이는 눈보다 더욱 생기 있는 눈빛을 아들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준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눈에도 다른 이의 삶을 밝히는 빛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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