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

겨울을 안고 온 사람들

by 겨울나기 이코치


도란도란 정겨운 시장


어린 시절, 엄마는 장을 보러 시장에 갈 때면

제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사주겠다며 함께 갈 것을 제안하시곤 했습니다.

짜장을 섞은 듯 걸쭉한 떡볶이 국물에

방금 튀긴 따뜻한 계란 튀김을 적셔 먹곤 했지요.

입안에서 맴도는 맵고 짜고 달콤한 그 진한 맛은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제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 떡볶이를 먹고 장을 보며,

나물 집 할머니, 정육점 삼촌, 과일 집 아주머니 등

시장 상인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물건만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묻는

다정한 이웃이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시장의 상인들은 제게 친근한 이모 같았고 삼촌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제 삶에 들어와 저와 연결되는 것이

그렇게 자연스럽고 즐거울 수 없었습니다.

엄마가 알려주신 관계의 즐거움이 계기가 된 걸까요?

지금도 제가 하는 일의 현장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만나는 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사람들과의 만남에 좀 더 무게감이 실리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무게감을 기가 막히게 설명하는 시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현종의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겨울을 나는 이들이 저를 만나러 올 때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함께 옵니다.

그러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과 대면해야 하는 상황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서 코칭을 배우기를 정말 잘했구나 싶었습니다.

겨울을 나는 이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질문들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시작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감을 보냅니다.


열 마디 말보다 따스한 침묵이 그들에게 더욱 깊은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침묵을 견디지 못해 어색한 말이나 억지웃음을 짓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스한 침묵의 공간이 수많은 위로의 말보다 훨씬 안전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스한 침묵의 공간은

어쩌면 그들에게

자신 만의 답을 찾고

다음 계절을 준비할 수 있는

안전한 케렌시아 (Querencia)가 될 수 있습니다.



* 케렌시아 (Querencia):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말로, 투우 경기장에서 투우사가 소의 공격을 피해

잠시 숨을 고르며 재정비하는 안전한 공간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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