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시간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합니다.
그는 시간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속 시원히 무엇이라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시간을 사는 우리들도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시간이 무엇인지 알지만 설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시간을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 모두가 분명히 아는 것이 있습니다. 1년이 12개월이고, 1월 1일이면 새 해의 시작을 알리고 12월 31일에 한 해 마무리의 마침표를 찍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새해가 되면 이런 상상을 하곤 합니다.
저는 항구에 나와 있습니다. 여러 박스에 과거의 기억을 나누어 담고 정박된 배에 실어 한 해도 수고가 많았다 인사를 나눕니다. 항구를 떠나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드는 제 모습은 어쩐지 아쉽기보다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과거를 전부 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간 것을 잘 보내는 의식 같은 상상입니다.
그리고 저는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며 새로운 나를 만나고 싶습니다.
2025년 작년 한 해, 커다란 제 다이어리 매월 일정표에는 많은 업무들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지금 돌아보아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바쁘게 한 해를 보냈습니다.
어느덧 2025년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12월 31일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배 30분 전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안의 공기는 차분했고 조용했습니다. 조용히 십자가를 응시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았지만
그 안에는 또 다른 세상이 보였습니다.
열심히 살았던 만큼 성과도 있었지만 실수와 실패도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습니다. 어떤 실수들은 봄으로 나아가는 길목을 막아서며 곧 다가올 짙은 겨울에 대해 제게 협박을 하는 것만 같아 두렵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시간 속에 쌓이고 쌓여 이렇게 저렇게 엉켜있는 나의 모습들.
그 모습들을 하나씩 정돈했습니다.
이불 끝을 양팔로 탁 잡고 펼치듯 활짝 펼쳐 그 순간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즐거움과 기쁨, 수치와 두려움 여러 감정들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놀랍게도 한 해를 돌아보기에는 적절했습니다.
생각의 끝무렵이 되었을 즈음 제 마음 안에 "모든 게 감사입니다."라는 말이 절로 새어 나왔습니다.
봄 같은 날들에는 안식을 취할 수 있었고 시린 겨울이 다시금 허락되었을 때는 겸손해질 수 있었습니다.
제 힘만으로 그리고 내가 가진 엄청난 열정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제 자신감은 때때로 선을 넘어 교만이 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교만을 눈치채지 못할 때 찾아온 인생의 겨울.
인생의 겨울은 그렇게 제게 '내 힘만으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도왔고 겸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12월 31일 눈 덮인 침묵 아래에서야 이러한 사실들을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겨울이 다가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깊은 무기력을 경험하기도 했고, 인생의 온갖 어려움이 제게만 찾아오는 것 같아 화가 나고 원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실수와 실패는 수치와 두려움의 감정을 썰물처럼 제 안에 끌고 들어옵니다.
그러나 제게 허락된 인생의 겨울은 웬만한 어려움은 넘어설 수 있는 담대함과 두려워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도전하는 용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미숙했던 나에서 좀 더 성숙해 가는 나를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매력적이었고 작지만 소중한 의미가 되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왜 그렇게 밖에 못했느냐'며 스스로를 심하게 비난하고 질책하던 제가, 이제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비난과 질책을 그치고 수치와 두려움을 배에 실어 바다 멀리 작별을 고합니다.
제게 말을 건 냅니다.
'인생의 모든 계절이 의미 있었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 안에 남기기로 선택합니다.
우리 중 누가 과거에 대해 후회와 상념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다고 한들 단 한 자락이라도 줄이거나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요?
과거로 회기 하는 드라마와 영화가 끊임없이 제작되는 것도 이러한 아쉬움 때문이겠지요.
어떠한 아쉬움에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새해라는 시간의 의미에 감사하게 됩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 옵니다.
한 해가 지나면 새해가 다가옵니다.
과거의 나를 잘 보내고
오늘은 새로운 나와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