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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May 14. 2023

바다는 나를 기쁘고 슬프게 해

#부산바다 를 보고 든 생각

2023년 1월, 나는 울면서 부산으로 향하는 운전대를 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희망하던 지역은 전혀 다른 곳이었고 매우 찌질한 인간인 나는 내가 모자라서, 내가 능력도 뭣도 없어서, 그렇게 모든 것이 내 탓이라서 부산에 살게 되었다는 억울함에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누가 울고불고 랬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때마침 우리 집 막내인 반려견이 갑작스레 무지개다리를 건넜던 터라 연고하나 없는 이 도시에서 나는 한없이 지하로 꺼지는 것만 같았다.


그와중에 애석한 E 성향은 집에 있는 나에게 평안함을 티끌만큼도 허락하지 않았고, 매일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사방천지가 바다인 이 도시에서, 매일같이 쏟아지는 관광객을 마주하며, 그리고 외로움과 싸우며 꾸역꾸역 적응했고 적응하는 중이다.




누가 그랬다.

같은 바다는 단 한 곳도 없다고.

바다는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다르다고.

비오는 날의 영도 바다
물이 맑았던 기장 일광 바다
해 지고 난 해운대 마린시티 바다
(내가 좋아하는) 해운대 미포 바다
그라데이션이 아름다웠던 미포 바다
광안대교 밑 바다
송정 바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했던 다대포 바다


관광도시 부산답게 해안선을 따라 동네마다 해변마다 이름을 붙이고 각자 다른 특색을 입혔다(물 색깔도 다르다!). 그래서인지 차로 조금만 가도 또 다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처음에는 비릿한 바다 냄새와 파도소리 그리고 하염없이 펼쳐진 바다의 풍경에 힐링이 되면서도 외로움이 울컥 치밀었다. 부산에서 바다는 너무 일상이기에 매일 바다를 보고 밥을 먹고 바다를 따라 길을 걷고 바다를 끼고 운동을 하면서도 처럼 익숙해지지 않고 생경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가족과 친구들이 한 번씩 찾아오고, 그들을 위해 도시 곳곳을 직접 다니고 소개하다 보니 이제 조금은 눈에 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순간의 바다만 카메라에 담거나 때로는 빗속에 몰아치는 파도를 보고 우울감에 빠졌다면 이제는 바다를 지긋히 바라보며 조금은 내려놓는 시간을 보내본다. 바다를 보며 기쁘다 슬프다 했던 이전의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지는 것만 같다.




오늘, 부산에 와 처음으로 바닷물에 들어가 보았다. 볕은 뜨거웠는데 바닷물은 꽤 차가웠다. 삼삼오오 서핑강습을 받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서 홀로 열심히 서핑수업을 듣는데 꽤 재밌었다. 언젠가 친구들과 와르르 함께 양양 바닷가에서 서핑을 배웠던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때는 술에 절어 또 친구들과 물놀이하느라 서핑이 기억도 안 났다. 이번에는 혼자, 그것도 물에서 강습을 받노라니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 서핑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함께 왔을 땐 서로에게 집중하고 분위기에 취하느라 미처 느끼지 못했던 몸의 근육과 자세를 신경 쓰며 파도를 타보니 제법 보드 위에 서있을 수도 있어서 강습을 추가로 결제하고 돌아왔다.


오늘 들어갔던 송정 바다


지금도 멀리 바다를 바라본다.

늦은 꽃샘추위가 이제는 정말로 가시려는지 볕이 꽤 눈부시게 내리쬔다. 원해서 온 부산은 아니지만, 강제로 주어진 이 풍광과 시간에 생각이 부쩍 많아진다. 부산, 부산, 바다, 파도, 그리고 나. 소음 가득한 도시 속에서 숨 막히게 부대끼며 눈치 보며 신경 쓰며 웃어가며 울어가며 보냈던 지난날의 나는 가시 돋쳤고 동시에 물러터졌다. 이제 내 손에 주어진 시간과 내 눈에 펼쳐진 바다를 보며 아주 천천히 나를 아보고 스스로를 조금은 단단하게 다져볼까 한다. 홀로 지낸 시간이 살아온 나날의 절반쯤이나 되는대도 홀로서기 무서워하는 무늬만 어른이었다. 여전히 내 뒤에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이 도시에서의 남은 시간이 너무 아득해 핑 현기증이 나곤 하지만, 이 갑작스러운 부산살이가 끝날 즈음에는 홀로 서도 조금은 단단하게 잔뿌리정도는 내릴 줄 아는 어른이가 되고 싶을 다름이다.


어제는 바다 옆 카페(캐비네 드 쁘아송, 이름 넘 복잡)에 갔었지
조금 더 단단한 내일을 응원하는 선물을 받았어
나는 정말 우당탕탕 어른이였던 것만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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