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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May 18. 2023

달콤 쌉싸름한 커피

#부산커피 는 왜 맛있을까?

나의 첫 커피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생 때이다.

이모들이 놀러 오는 날이면 삼삼오오 수다를 떨거나 티비를 보거나 때로는 고스톱을 치다가 꼭 주문을 한다.

"커피 한 잔만 타줘."

엄마와 이모들의 원픽은 (환경호르몬 걱정 제쳐두고) 껍질채 휘휘 저은 달달한 맥심 모카골드였지만, 거기에도 개인별 취향이 담긴다. 엄마는 물 적게, 저 이모는 설탕 한 꼬집 덜 넣고, 다른 이모는 정량보다 한 수저 정도 물 많게, 또 누구는 꼭 두 개씩 타오기.

"어머, 이거 누가 탔니 너무 맛있다 딱 좋다!"

초딩 바리스타의 마음에 불이라도 지르는 날에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던 소소한 인정감의 기억과 함께, 초딩이 커피 마시면 머리가 멍청해진다던 엄마 눈을 피해 몰래 이모들 잔에서 반모금씩 훔쳐마시던 달달한 황금비율. 내게 남은 첫 커피의 순간 달콤하고 향긋했다.


꼬꼬마 바리스타는 커서 대학에 들어가 과외와 카페 바리스타 알바를 곁들이며,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럽게도 카페인 가득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특히 어깨 너머로 배운 라테아트와 귀동냥한 커피 잡지식들, 무엇보다도 이 잔 저 잔 수많은 잔들과 입 맞추며 쌓인 커피에 대한 취향과 맛에 대한 고집은 귀한 자산이 되었다.


대학생때의 나 = 사실 요즘도 매일 아침의 나




커피는 기억이다.

커피를 마셨던 순간은 머릿속에 남고 또 혀끝에 남는다.

커피는 추억이다.

그 순간, 그 향기, 그 잔에 맴돌던 맛, 그리고 나누었던 대화와 얼굴들.

그래서 커피는 기억이고 추억이다.

부산에 온지 정말 며칠 안됐을 때 가본 광안동 타타에스프레소바
여기는 진짜진짜 맛있었던 센텀 커피프론트, 알고보니 전포동 스트럿커피가 본점이라는데 스트럿 드립백도 진짜진짜 맛도리
커피가 진했던 부산역(차이나타운) 시맨스 클럽
바깥 풍경이 아름다웠던 카페들
그리고 힙찔이 가슴에 불을 지른 항구뷰 영도 모모스 로스터리 (부산 로컬은 항구뷰를 질색했다 이게 뭐가 멋지냐면서ㅋㅋ)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나의 첫 부산 커피에 대한 기억은 아마도 10년쯤 전이었던 것 같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이것도 커피 인연인, 언니를 만나러 부산에 온 적이 있다. 그때 언니는 자신 있게 한 카페로 나를 이끌었다.

"니  무 봤나?"

솔직히 말하자면 내 기억 속에 더욱 강렬히 남았던 건 하얗고 몽실몽실한 크림치즈 빵이었지만, 정확한 맛은 휘발됐을지언정 커피 한 잔을 정말이지 맛있게 비우고 온 기억이 난다. 그게 온천장의 모모스 본점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저 맛있던 카페는 사장이 무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에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하는 대단한 곳으로 성장하였고, 모모스를 필두로 부산 커피산업은 무럭무럭 성장해 무려 부산시 피셜 '커피도시 부산'이 되어버렸다. 내년에는 WBC가 부산에서 열린다고 하니, 부산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사실 부산에서 지내면서 먼저는 부산에 카페가 이토록 많은 점에 대해 놀랐고, 또 그중에서도 해안가 따라 초대형 카페가 엄청 많아서 놀랐으며, 그 카페들이 전반적으로 맛이 나쁘지 않다는 데에 놀랐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지인이 부산은 항구 도시니깐, 원두가 항만을 통해 수입될 테니 신선해서 맛있을 거라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수치로 증명되었는데, 대한민국 커피 물동량의 95%가 부산을 통해 들어온단다(!) 부산신항에 아득히 쌓인 컨테이너 중 하나쯤에는 생두가 가득 실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커피는 곧 문화이자 브랜딩이 중요한 작금의 시대에 부산이 나아가는 방향성과 맞닿아 있는 부분도 있다.

'지독한 컨셉충'

이미 치킨집, 편의점 수를 훌쩍 넘어버린 수많은 카페 속에서 경쟁하기 위해 카페는 이른바 지독한 컨셉충이 되어야 한다. 맛은 물론이거니와 저마다의 독특한 컨셉을 갖고 이를 커피와 공간에 녹여내 색깔을 만드는 브랜딩을 잘해야 살아남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도시 브랜딩만큼은 전국 1 티어라고 생각하는 곳이 바로 부산이다. 하다못해 지하철 타고 내릴 때도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를 넣은 이 도시는 도시 전체가 부산이라는 브랜드에 흠뻑 젖은 느낌인데, 이는 커피와 카페의 지향성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부산시는 커피를 그냥 도시 브랜드화 해버렸다.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녀석을 등에 태워버린 거다. 부릉부릉. 보글보글. 캬!


붓산 카페 머 다 밖에 바다인 줄 아나?                                 ...맞다..!


도시 전체가 팍팍 밀어주는 이 향긋한 커피의 도시를 한시적 부산시민인 내가 충분히 향유하는 법은 그저 좋아하는 커피를 마음껏 마시고 즐기는 거다. 더군다나 세  네잔을 마셔도 가슴이 벌렁거리지 않는, 그야말로 커피를 즐기기에 최적화된 신체조건(?)을 갖줬더랬다. 그래서 요즘은 짬짬이 네이버 지도에 가고픈 부산 카페를 저장해 두고, 그 동네를 지날 때 즈음에 잊지 않고 들리곤 한다. 한잔의 커피는 사실 몇 분이면 바닥을 보이지만 신선한 커피의 맛과 함께 눈앞에 펼쳐진 비현실적인 바다를 보며 순간의 분위기와 그 장면을 머릿속에 되새기는 요즘이다.


내일은 부산의 어떤 동네에서 무슨 커피를 마셔볼까?


팩트. 매일 아침 카누나 캡슐커피 마십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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