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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May 21. 2023

부산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국밥집이 있다

#부산돼지국밥 에 대한 잡설

고백하건대 부산에 내려와 처음 먹은 음식은 돼지국밥이었다. 어쩐지 부산살이의 첫 숟가락은 돼지국밥이어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있었달까. 부산에 대해 뭣도 모르던 그날 나는 해운대 한복판에 있는 관광객 가득한 돼지국밥집에 혼자 앉아서, 무료주차 30분을 받으려면 15,000원 이상시켜야 된다는 '아지매'의 압박에 맛보기 수육까지 주문하고서, 절반 이상 남기고 30분이 넘어 비싼 해운대 주차비까지 탈탈 털리고서야 집에 온 슬픈 호구의 기억이 있다.


그땐 정말 모든 게 엉망이었다



 

자고로 부산하면 돼지국밥, 돼지국밥 하면 부산 아니겠는가. 부산에 간다 하니 추천받은 돼지국밥집만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다. 이미 한 집 걸러 한 집이 돼지국밥집인 부산에서 나는 어쩐지 정말 내 입맛에 꼭 맞는 맛집을 찾고 싶어 져서 만나는 부산아재들마다 현지인의 돼지국밥 맛집을 추천해 달라고 물어보곤 했다.


"솔직히 돼지국밥이 음식입니꺼?"

누군가 이렇게 대답하길래 흠칫 놀랬다. 아니, 돼지국밥이 맛없다는 건가? 그때까지만 해도 누구픽 돼지국밥집을 수차례 방문했지만 딱히 1등으로 꼽는 맛집을 못 찾았기에 '솔직히 별로예요'라고 공감하던 찰나에 말소리가 이어졌다.

"마 돼지국밥은 생활입니더 생활. 그냥 배고프면 국밥이나 때릴까 하는 게 돼지국밥이란 말입니더."

그리고 내가 부산에서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주옥같은 명언이 나왔다.

"부산사람은 다 자기만의 국밥집이 있는 겁니더."


.

자기만의 국밥집이라니.

그야말로 F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한마디 었다.

부산 사람들에게 돼지국밥은 너무나도 평범하게 그야말로 삶에 녹아있는 일부와도 같아서 맛도 맛이지만 내 입맛과 일상과 추억이 버무려진, 내게 꼭 맞는 국밥집 하나 정도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거다. 그래서인지 그들에게 진짜 돼지국밥 맛집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거 별것도 없심더 그냥 유명한 집 가이소' 하면서 추천을 꺼린다. 평범함 그지없는 내 삶의 일부일테니 말이다.


캬- 술도 안마셨는데 멘트가 취한다 취해




돼지국밥의 기원을 돌아보면 먹을게 풍족하지 않던 시절에 갖가지 돼지 부속물을 넣고 끓여 만든 음식이었단다. 지금이야 내장은 물론 살코기까지 듬뿍 넣지만, 애초에 국밥은 머릿고기며 부속물 등 갖가지 부위를 솥단지 가득 넣고 끓이다가 주문하면 뚝배기에 투박하게 담겨 나와 끓어 넘치는 국물 후후 식혀가며 먹었던 그야말로 끼니를 해결해 주던 평범한 서민음식이었다. 물론 그 시절은 너무 까마득해 부모님 세대나 겪었을 법 하지만, 나 역시 어릴 적 엄마아빠 손 잡고 등산 후에 국밥 한 그릇 싹싹 비우고 배 부르다며 바지 단추를 열어야 했던 추억이 있다. 따지고 보면 국밥은 어느 지역이든 대다수의 서민에게 추억의 음식일 터. 그런 국밥에 어쩐지 지역명과 특색이 묻어 지금은 관광객이 줄을 서서 먹고 한 그릇 가격이 만원을 훌쩍 넘어가니, 본디 일상이었던 국밥을 어쩐지 관광객에게 빼앗긴 느낌마저 든다.


한편, 부산사람들에게 돼지국밥은 일상이겠지만 외지인이 본 부산의 돼지국밥은 분명 특별한 구석이 있다. 일단 그 압도적인 가게 숫자가 눈길을 끌고 마치 곰탕처럼 뽀얀 국물과 가득 담긴 건더기가 주로 돼지 살코기, 그것도 항정살을 쓰는 집이 많다는 점이 재미있다. 또 수육과 국물을 따로 내어주는 수육백반(수백) 또한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 있는 메뉴다. 전주의 콩나물국밥, 천안의 병천순대국밥, 통영의 굴국밥 등 전국을 다채롭게 채우는 다양한 국밥들 사이에서 살코기 듬뿍 넣은 부산의 돼지국밥은 분명 그 존재감이 확실한 국밥 중 하나다.


영진돼지국밥의 수백. 얇게 썬 항정수육인데 대패 스타일로 얇아서 식감이 아쉬웠다. 항정살은 비계가 아삭 씹혀야 제맛인 것을!
요즘 핫하다는 엄용백 돼지국밥에 오소리감투 추가. 어쩐지 퓨전의 향이 강해서 내입맛에는 옆집인 엄용백 낙돈(고깃집)이 압승!
목살을 넣었다는 깔끔한 맛의 양산국밥. 토렴국밥 오랜만!
핫한 수변최고돼지국밥의 항정국밥. 개인적으로 항정국밥은 절반쯤부터 느끼해서 그냥 고기국밥이 더 맛있었달까.


날이 더워지면서 국밥릴레이에 조금은 소홀했지만, 얼마간의 부산생활 동안 나도 '나만의 국밥집'을 찾고자 하는 목표는 분명 포기하지 않았다. 아마도 단순히 맛이나 유명세를 쫓는 집보다는, 나 역시 부산에서 만들어갈 일상과 소소하고도 특별한 추억이 버무려진 나만의 돼지국밥집을 찾게 될 터이다. 낭만의 도시 부산에서 저마다의 돼지국밥집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부산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명예 부산사람으로서 돼지국밥집 하나 정도는 지니고 싶은 바람이랄까.


굳이?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부산사람이라면 응당 자기만의 국밥집이 있는 거라고!


어쩐지 바다 사람만의 낭만이 있는 것도 같다.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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