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지명은 신라의 문인 최치원이 그 옛날 해운대 바다를 방문했다가 경치에 반해 자신의 호인 '해운'을 붙여준 것에서 유래한다. 하필 최치원의 호가 바다와 구름을 아우르니 아름다운 바닷가에 더할 나위 없는 이름이었을 터. 오늘날의 해운대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구름이 끼었든 구름 한 점 없든 해운대 바다는 그 경치에 반해 한없이 바라보게 만드니 말이다.
오자마자 찍었던 겨울의 해운대
현대로 돌아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지명을 떠올리자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바다 그 자체이자 많은 이들에게 설레는 여행지이며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이곳은 한쪽은 너른 바다, 한쪽은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이 이질적 이게도 어우러지는 관광지다. 그래서인지 해운대의 낮과 밤은 언제나 북적이고 반짝이며 소란스럽다. 매일이 관광객으로 생동하는 해운대를 보자면 어쩐지 나는 청춘이 떠오른다.
부산에 온 뒤 친지들이 많이 찾아주었는데 그럴 때마다 해운대는 정말이지 빠지지 않고 방문했던 것 같다. 오바 조금 보태서 창문 열면 해운대 짠기가 스며오는 곳에서 지내고 있는 탓도 있지만, 모두에게 해운대는 부산을 온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부산의 첫인상과도 같은 곳일 터. 모두가 오고 싶어 하는 부산의 대표 관광지에서 일상을 꾸리고 있는 한시적 로컬이기에 나는 해운대의 풍경보다도 해운대를 찾는 이들을 한번 더 보게 된다. 여행의 설렘과 기쁨에 젖어있는 표정들을 바라보자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청춘이다'라고 소리 없는 탄성이 나오곤 하는 것이다.
달맞이고개에서 바라본 해운대는 어쩐지 다른 느낌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올때마다 찍게되는 마린시티
동백섬 더베이101
언젠가 청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청춘을 노래한 작품들은 너무도 평범한 일상 속에 한없이 흔들리는 찌질한 모습이라며. 좋아하는 이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대차게 까이며 돈이 없어 터덜터덜 하염없이 걸어가기도 하고 좁은 자취방 구석에서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훌쩍훌쩍 눈물콧물까지 흘린다.(우당탕탕 청춘의 장면은 어쩜 그리 똑같은지!) 청춘의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우며, 청춘은 불안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달리다가 넘어져 울고 또 다시금 달리다 넘어져 피가 줄줄 났다. 그렇게 청춘을 추억하다 보니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찌질함의 극치일 뿐인데 왜 생동하는 해운대를 보고 청춘을 떠올렸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청춘은 설렘이었던 것도 같다. 청춘의 나날은 찌질하고 어리숙했으나 어쩐지 설레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 너무나도 무섭고 불안했지만, 동시에 그래서 꿈꿀 수 있었다. 뭐 하나 해보겠다고 도전해도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으며 그 도전이 대차게 실패해도 며칠이면 다시 덤빌 힘이 생겼다. 불안함이 주는 용기였는데도, 불안감을 원망하면서 그 용기로 버텼다. 어쩐지 내일은 조금 나아질 것만 같은 설렘으로 말이다. 현실에 퍽 안주하는 삶을 살게 된 요즘, 청춘을 돌아보니 그때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가 그때의 설렘이 조금은 그리워졌다.
그래서인지많은 이들에게 설렘으로 기억되어 청춘과도 같은 해운대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대리만족해볼까 싶기도 하다. 시원하게 뻗은 바다 뒤로 펼쳐진 마린시티의 야경을 보고 카메라를 누르는 여행객의 상기된 표정을 보면서 어쩌면 청춘이란 저런 표정이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