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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Jun 26. 2023

당신이 기억하는 부산의 색깔은 무엇인가요

매우 주관적인 기억 속 #부산의색깔

기억은 대체로 그 순간에 느꼈던 오감과 함께 얽혀있기 마련이다. 신선한 커피 향을 맡으면 학생 때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의 문을 열고 갓 내려 마시던 어스름한 새벽의 하늘이 생각나고 빈지노의 노래를 들으면 고민 많던 그 시절에 하염없이 걷던 동네의 익숙한 골목골목이 떠오른다. 어떤 음식을 먹으면 꼭 그 사람이 생각나고, 어느 지역 어느 장소 아니 그 비슷한 느낌의 장소라도 마주하면 추억 속 사람과 그러한 장소에서 나누었던 대화나 감정이 스쳐가곤 한다.


부산살이 6개월을 지나는 요즘, 문득 내가 이 도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부산의 맛은 여전히 열심히 찾고 있고, 부산의 향기는 아직 시내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니지 못해 어렴풋한 바다향으로 물꼬만 텄을 뿐. 부산의 소리는 꽤 소란스럽지만 또 상당히 경쾌하다.


그런데 부산하면 떠오르는 색깔은?

쉽지 않은 질문이다.




빨강. 부산의 동백.
동백섬의 동백나무 아래 누군가 모아둔 낙화


동백은 추운 겨울부터 따뜻함이 미처 미치지 못한 초봄까지 붉은 꽃망울을 터트린다. 다만 삭막하고 추운 겨울을 선택한 것 치고는 따뜻한 남해안 지방에 주로 모여사는 것이 퍽 재미있는 부분이다. 겉바속촉 같달까. 겨울에 피는 꽃이지만 공기가 조금은 따뜻한 제주, 전라남도 그리고 부울경 지역에서 붉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 동백은 부산(그리고 여수)의 시화(市花)이기도 하다.


부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그러니깐 봄을 기다리는 겨울의 끝자락에 나는 답답한 마음을 이겨내고자 무작정 달렸다. 완벽한 이방인으로 나는 한동안 매번 초면인 골목 구석구석을 숨찰 때까지 달려 다녔다. 생소한 지명과 입맛, 그리고 다소 투박한 사투리 속에서 그나마 익숙했던 건 어릴 때 화단에서 보던 동백꽃. 해가 빨리 지던 겨울에도 마치 가로등처럼 동백꽃은 여기저기 붉은빛을 매달고 있었다. 또 동백꽃은 도도한 꽃이라 꽃잎이 떨어지는 대신 꽃 전체가 툭 하고 떨어진다. 겉 꽃잎 조금 시들었을 뿐인데 한송이가 툭 하고 떨어진 모습을 보자니 누군가 안쓰러웠는지 꽃송이를 모아둔 것이 귀엽고 측은해서 달리다 멈추고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내게 부산의 빨강은 익숙한 동백꽃이다.


주황. 부산의 불꽃축제.
올해 4월. 부산불꽃축제는 황홀했다!


부산이 일부 해를 제외하고 2005년부터 매년 불꽃축제를 개최했다는 사실을 부산 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올해는 4월 엑스포 유치를 기원하며 광안리 하늘을 수놓았다. 이곳저곳에서 불꽃축제를 본 적은 있지만 그때마다 수많은 인파에 밀려 소란 속에 정신없이 휩쓸렸던 기억뿐이라 부산의 불꽃축제 역시 비슷하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부산의 불꽃축제는 꽤 화려하고 감동적이었다. 동행한 부산친구 역시 부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불꽃축제는 처음이었는데, 고향 부산이 조금은 자랑스럽게 느껴질 정도라고 감탄했을 정도. 음악과 함께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광안리 하늘과 그 아래 바다까지 눈앞 광경을 전부 불빛으로 가득 채웠던 불꽃축제가 생각나 부산의 주황은 불꽃축제로 기억하려 한다.


노랑. 노릇노릇 부산의 군만두.
부산역 장성향 군만두(사랑해요!)
장성향 만두는 사실 올드보이 군만두로 유명하다


우습지만 부산의 노란색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니 딱 하나, 노릇노릇 군만두가 떠올랐다(ㅋㅋ) 놀랍게도 부산의 군만두는 가히 향토음식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특별하고 맛있다. 어지간한 부산의 중국집에서는 직접 빚은(혹은 그런 것만 같은 맛이 나는) 군만두를 팔고 부산에는 중국식 만두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제법 많다. 특징이라면 거의 거친 느낌이 날 정도로 바싹 튀긴 겉면과 함께 마치 고기완자처럼 한데 어우러졌으나 육즙이 느껴지는 촉촉한 만두소다. 아무튼 맛있다는 이야기고,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부산 군만두 특집을 작성했다가 오류가 나 날아갔을 정도로 군만두에 진심이다. 노란색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억지스럽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노란 단무지보다 노릇노릇 군만두가 부산의 노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초록과 파랑. 부산의 산과 바다.
뷰맛집이었던 송정의 어느 식당


부산은 산이 마치 가마솥을 얹은 꼴이라고 해서 그 명칭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 산이 어떤 산인지는 알 수 없다지만 부산은 멀리서도 산이 보였을 정도로 산이 꽤 많은 동네 중 하나다. 크고 작은 산이 59개나 되며 또 그 가장자리는 푸르른 바다로 둘러싸고 있으니 멀리서 본다면 그 가마솥의 색깔은 단연코 푸른빛이었으리라. 부산에서 산 만큼이나 쉽게 볼 수 있는 바다의 빛깔 역시 어느 날에는 쨍한 파란색, 어느 날에는 맑은 청록색, 어느 날에는 연한 초록빛인지 푸른빛인지 모를 오묘한 색을 띄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초록과 파랑을 따로 구분하기보다는 부산의 푸르름으로 해서 산과 바다, 하나의 풍경으로 기억하고 싶다.


남색. 부산의 야경.


밤이 오면 푸르른 해안도시에 어둠은 깔릴지언정 도시의 화려한 불빛은 부산의 밤마저 비추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부산의 밤 역시 쉽게 어두워지지 못하고 오히려 남색으로 새롭게 빛나는 느낌마저 든다. 빛공해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하늘도 바다도 쉬이 잠들지 못하는 도시. 그래서 가끔 부산의 밤바다를 바라보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할 수 없고 어둠이 깔리는지 걷히는지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부산의 하늘과 밤은 언제 비로소 쉴 수 있을지 문득 측은한 마음까지 드는 걸 보니 글 쓰는 지금 이 순간, 밝지만 어두운 남색의 밤이 찾아왔나 보다.


보라색. 부산의 꽃.
해운대 송림공원의 수국(끝물이라 조금 시무룩ㅠㅠ)
달맞이길에서 본 벚꽃과 해운대 바다


사실 내가 경험한 부산의 보라색과, 기억하고픈 보랏빛은 다르다. 아직 방문하지 않은 카페인데 그곳에 얽힌 기억이 있어 아마 나중에 가보고 나서는 그 장소를 보라색이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내게 보라색은 부산의 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겨울의 동백꽃 말고도 부산은 온화한 기후 덕분인지 사시사철 꽃이 핀다. 봄에는 길고도 힘든 첫 몇 개월을 지나 보상처럼 핑크색 벚꽃이 팝콘처럼 팡팡 터졌고, 후덥지근한 여름이 다가오니 그 열기 따라 쨍한 수국이 얼굴을 내민다. 사실 어느 하나 보랏빛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겠지만 내게는 보랏빛이 묘하게 따뜻하고 한편으로 감성적인 색이라 꽃들로 추억하는 것 같다. 그래서 여름을 지나고 있는 6개월 차 부산 시민에게 보라색은 부산의 꽃이다.




반년동안 부산에서의 기억을 색깔로 기록해 보니 감회가 새롭다. 물론 브런치에 기록하기 위해 기억해 낸 색도 분명히 있지만, 기록할 수 없으나 기억되는 부산의 색깔들이 내 안에 꽤나 켜켜이 쌓인 모양이다. 시작은 등 떠밀려 내려온 부산이었고 지난 6개월은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았을 뿐이었으나 이 도시의 특별함이 내 평범한 일상을 다채롭게 칠해주었다.


이 '한시적 로컬'이라는 신분은 묘한 안정감과 동시에 충분히 즐겨야 한다는 불안감을 선사하여 부산을 100배 즐기면서 동시에 부산에 십분 적응하게 했다. 6개월이면 아주 조금은 질릴 때도 됐는데 이상하게  도시 쉽게 질리지 않는 걸 보면 부산은 참 매력적인 도시임에 틀림없다. 이제껏 마주한 부산의 색깔보다도 앞으로 마주할 부산의 색깔이 기대가 된다.


당신의 기억 속에
 '부산'하면 떠오르는 색깔은 무엇인가요?




'어른이'라서 마음껏 즐기다가 글이 늦었습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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