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바닷가에서 보내는 여름은 처음이 아니지만물을 좋아하게 된 이후 바다에서 보내는 첫 번째 여름이다. 줄곧 물을 무서워하다가 2017년 즈음에 수영을 배운 것이 계기가 되어 물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뒤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따고 부산에 온 올해에는 서핑도 배우기 시작했다. 물이 좋으니 사방이 물 천지인 바닷가에서의 여름은 온통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부산의 사계 중 가장 '부산다운 계절'이 바로 여름이 아닐까 한다. 제주도 다음으로 많이들 찾는 국내 여행지이자 바다를 끼고 있어 겨울보다 여름에 찾는 이들이 더 많은 이곳은 7월 1일 해수욕장 공식 개장을 계기로 주말이든 평일이든 관광객들로 북적북적 생동한다. 부산이 가장 부산다운 계절에 이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어쩌면 꽤 운이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창밖은 여름, 아니 창밖은 대변항
경쾌하게 밀면을 들이켠다.
날이 더워져서인지 밀면을 자주 찾게 된다. 예전에 밀면은 부산에 오면 특별히 찾아 먹는 관광지에서의 특식이었지만, 부산에 살고 있는 요즘은 여름에 시원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간편한 한 끼가 되었다. 밀면집이면 응당 내어주는 끈적한 맛의 온육수가 밀면의 시작을 알리는 첫 입이다. 냉면과 비슷한 듯 하지만 메밀이나 전분으로만 뽑은 탱탱한 냉면 면발과는 달리 밀가루를 섞어 부드럽지만 쫄깃하게 면발이 후루룩 감긴다. 한때 드라마 주인공들이 그렇게도 찾더랬던 슴슴한 맛의 평양냉면과는 달리 고기향 가득한 국물에 매콤 새콤 다대기도 듬뿍이다. 취향 따라 식초나 겨자는 많이 곁들이지는 않는 편이지만, 눈앞에 식초병을 보면 유혹을 참지 못하고 꼭 한 번 쪼록! 하고 두르게 되는 것이 우습게도 매번 같은 시나리오.그렇게 한 그릇에 맵고 달고 새콤하기까지 한 온갖 맛의 밀면을 들이켜자면 여름을 한가득 삼키는 것만 같다.
밀면 맛집은 아직도 탐색중(새삼 진지)
여름의 계절에 여름이 좋은 나는 여름의 맛을 입안 가득 머금을 때 경쾌함을 느낀다. 오늘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밀면을 먹었다. 부산의 맛을 보여주겠다며 바닷가 근처 밀면집에서 밀면 한 그릇 시원하게 들이켜고 나서 해변에 있는 커피집에서 2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로 입가심하면서 멀리 해변을 한참 바라보았다. 모래사장과 멀지 않은 허리춤 밖에 되지 않은 물속에서 사람들이 신나게 물놀이하고 있는 모습을 한참 보다가 웃다가 했다. 시답잖은 농담으로 친구를 조금 놀리다가 서로 깔깔거리며 웃다가 새삼 팔에 감기는 습도에 '마 이게 부산이다!' 라며 너스레를 떨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었다.
부산에서의 첫겨울은 모든 것이 어색하고 어려웠는데 여름은 꽤나 경쾌하게 지나갈 모양이다.겨울 부산 바다는 나를 기쁘고 슬프게 했더라면, 여름날의 부산 바다는 나를 들뜨고 신나게 한다. 한참 철부지였던 시절, 고민걱정은 많았지만 매일 아침이면 새로고침 버튼을 누른 것처럼 새로이 하루를 시작하는 게 즐거웠던 때가 있었다. 기분이 좋으면 혼자 걸으면서 조용히 손목을 돌리며 내적댄스를 추곤 했는데 어느 날 그걸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복도에서 춤추고 다니지 말라고 크큭 거리며 지나갔는데 그때의 코웃음이 떠오르는 요즘에서야 과거의 내가 꽤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냈구나 한다. 한동안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즐거운 순간 중 하나가 불쑥 수면 위로 떠오른 걸 보면 바다를 보며 지낸 6개월 동안 생각을 많이 덜어내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기도. 남아있는 부산에서의 여름날을 신나게 보내보자는 용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