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에서 해운대 방면으로 가는 부산항대교 진입로에 오르면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부산의 명물(?), 공포의 O자 순환로가 펼쳐진다. 나선형 88도로 구조로 원을 한 바퀴 꼬박 돌아야 비로소 대교 위에 오를 수 있는데 양 옆 가드레일 너머 시원하게 트인 북항의 푸른 바다를 보다 보면 실제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손에 제법 땀이 스민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고소공포증이 심한 수준이라 처음에는 건너기도 힘들었거니와 거의 1년 가까이 '그 구간'을 지날 때면 핸들을 두 손으로 꽉 쥔 채 아주 천천히 초긴장상태로 겨우 지나곤 했다.
그런데 그 유명한 부산항대교 O자 순환로 아래에 캠핑장이 있다.
공포의 그 구간!
영도마리노 오토캠핑장은 영도구청이 관리하는 곳으로 문을 연 지 채 2년이 안 된 따끈따끈한 신상 캠핑장이다. 그래서 시설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부산 도심에 위치(부산역에서 차로 10분 거리) 하고 있는 데다 불 켜진 부산항대교의 야경을 볼 수 있는 바닷가 옆 캠핑장이라는 점에서 매력이 충분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예약 경쟁도 꽤 치열한데 특히 부산항대교를 바로 앞에서 조망할 수 있는 명당 3자리(오토 38, 39, 40번)는 평일에도 예약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주중에 예약가능한 자리(일반 1번)가 있어 잽싸게 일정을 비우고 다녀왔는데 가히 방문했던 캠핑장 중에서 가장 부산스러운 캠핑장이 이곳 영도마리노 오토캠핑장이었다!
아직 캠핑을 많이 다녀보지 않아 매번 불을 피워 바비큐를 했었는데 이번 캠핑장만큼은 도심에 위치하고 있는 장점을 십분 살려 인근에서 음식을 사서 가볍게 즐기는 힐링 컨셉으로 부전시장에 들러 이것저것 먹을 것을 포장해서 캠핑장을 방문했다. 오토캠핑장의 가장 큰 장점이 사이트에 차를 가지고 들어가 함께 세울 수 있다는 것인데 아쉽게도 오토 사이트는 전석 예약 완료라서 아쉬운 대로 일반석을 예약했다. 하지만 큰 무리가 없었던 것이 일반석이라도 짐을 내리고 실을 땐 차를 가지고 사이트까지 이동 가능하단다! 미리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O자 순환로 밑, 그러니깐 원형의 섬처럼 생긴 캠핑장이라 가장자리 사이트가 인기가 많았는데 소위 명당으로 불리는 부산항대교 뷰 사이트 3곳 외에도 가장자리는 전부 자리도 널찍하고 바로 옆에 바다를 끼고 있어 어느 자리를 예약해도 좋은 선택지인 듯하였다.
일반1번 사이트
2시 조금 넘어 체크인을 하고 나서 이미 손에 익을 대로 익은 장비들을 30분가량 후다닥 설치하니 하루를 즐길 캠핑장이 뚝딱 마련되었다. 간단하게 포장해 온 부전시장 명란김밥으로 요기를 하고 나니 저 멀리 북항에 드나드는 배들과 함께 언덕 따라 요밀조밀 모여있는 영도의 주택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 앞에 서 있는 크고 작은 배들에서 들려오는 항구의 소음이 제법 낭만적으로 들려왔다. 소화도 시킬 겸 캠핑장 외곽을 따라 뻗어있는 산책길을 걸어 들어가면 부산항대교 아래까지 이어진다. 항상 바쁘게 지나가기만 했던 부산항대교의 발 밑에 이런 여유가 숨어있었다니, 흠칫 놀라면서 캠핑장 한 바퀴를 크게 돌아 제 자리로 돌아왔다.
부전시장 명란김밥 강추합니데이!!(갑자기 추천 갈기기)
영도 캠핑장의 가장 큰 매력은 해가 지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다. 평소 일상에서 고개를 들어 저 멀리 풍경을 바라볼 일도, 또 멍하니 하늘을 볼 일도 많지 않은데 이곳 캠핑장은 머리 위에 시원하게 혹은 기하학적으로 뻗은 부산항대교가 어느 시선에도 걸리기에 공간이 마치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끝판왕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해가 어스름하게 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하늘의 색이 황홀하게 물드므로, 부산항대교에 불이 들어오기 전에 그 배경인 하늘에 먼저 불이 켜지는 것만 같다. 푸른 바다와 바삐 생동하는 항구의 풍경과 함께 부산항대교, 그리고 그 너머의 하늘까지 한꺼번에 담긴 풍경을 보고 있자면 마치 부산이 한눈에 담기는 것 같은 낭만에 살짝 취하게 된다!
이제 황혼을 지나 어둠이 깔리면 먼저 산책길을 따라 나있는 가로등에 불이 들어온다. 항구의 불빛과 도시의 빛공해가 반갑게마저 느껴지는 도심 캠핑장에 가로등 불빛까지 더해지면 어둠에 등을 켜고 불을 피워야만 했던 자연 속 캠핑장과는 다른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여기저기서 코를 자극하는 음식 냄새가 풍겨져 오고 때때로 배달 오토바이까지 뒤섞여 한바탕 저녁식사 소동이 벌어지고 나면 시간이 어스름이 8시를 지나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부산항대교에 불이 켜진다. 외지인으로서, 그러니깐 명예 부산인으로서 이런 도심 속 크고 작은 관광지를 보고 즐기자면 부산이 얼마나 관광에 진심인지 새삼 느끼게 된달까. 부산을 대표하는 광안대교의 미디어 파사드도 환상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산항대교의 불빛 역시 한참을 바라보게 될 만큼 황홀하다.
까만 밤바다 위에 여러 빛깔로 빛나는 부산항대교를 바라보며 캠핑장 둘레길을 걸어가다 보면 낮에 만났던 부산항대교의 비밀스럽고도 평화로운 발치를 이제는 화려한 불빛과 함께 만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형형색색 빛나는 밤의 대교를, 그것도 그 대교의 아래를 내 두 다리로 거닐 수 있다는 건 만나기 쉽지 않은 특별한 경험이다. 낮에는 바다 수면 위를 햇빛이 비추어 반짝이는 윤슬을 만들어내었다면, 밤에는 부산항대교의 조명이 바다와 만나 무지개 색깔의 윤슬을 만든다. 영도 캠핑장에 방문한 이라면 꼭 어둠이 깔린 밤에 한 바퀴 산책을 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심에 위치한 캠핑장이라 장비를 두고 집에 가서 취침할 수도 있을 테고 그냥 캠핑장에서의 하룻밤을 보내는 이들도 있을 텐데 나는 평일 오후 잠깐 시간을 내었던 터라 충분히 캠핑을 즐긴 뒤 무박캠핑을 마무리했다. 부산항대교를 타고 그리고 광안대교를 넘어오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캠핑의 여운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부산에서 나고 자라 상경한 지인과 함께 북항의 항구뷰가 한눈에 보이는 카페(영도 모모스)에 갔던 어느 날 그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부산 사람들은 이 항구뷰라면 지긋지긋 합니더. 이 항구를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아십니꺼.
일반1번 사이트 앞 항구뷰
시야에 걸리는 건물 하나 없이 아름다운 바다 말고도 부산에는 항구가 있다. 부산사람들의 밥줄이 되고 또 너무 익숙함에 때로는 벗어나고 싶어했을 항구가 있다. 한때 벗어나고 싶었다던 항구를 바라보면서 볼멘소리로 그 항구를 원망하면서도 또 한참 동안 항구를 말없이 바라보는 시선 끝에 왠지 모를 애정이 느껴졌다. 영도마리노캠핑장에 서서 선원의 땀방울과 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음과 연기가 뒤섞인 항구를 바라보자니 왜 그토록 부산항으로 돌아오라고 노래했는지 그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