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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Dec 03. 2024

이번 가을은 충분했을지도 몰라

#삼락생태공원 100배 즐기기

날씨가 유난히도 변덕스러운 올해 가을이었다. 어느 날은 마치 늦여름처럼 더워서 겨울이 오고 있긴 하는 건가 내심 걱정이 들다가, 어느 날은 또 갑작스레 차가워진 공기에 코끝이 시큰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오락가락하는 날씨와 다소 눈치게임을 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나는 대로 부지런히 도심캠핑을 나갔더랬다. 여름의 끝자락부터 왠지 모를 아쉬움에 이번 가을은 가능한 한 야외 활동을 최대한 해보겠노라고 결심한 탓이다. 한편으로는 해운대를 뒤로하고 서부산으로 이사 온 만큼 이 동네의 큰 장점인 생태공원의 장점을 100배 즐겨보자는, 일종의 오기였는지도 모른다.


삼락공원은 조명보다는 수목이 지천인 곳이다(조금 무서움ㅠ)


서부산에는 낙동강을 따라 나란히 위치한 생태공원(삼락, 대저, 화명) 안에 캠핑장이 있어서 말 그대로 도심 속 캠핑장이라 접근성이 뛰어나다. 그중에서도 삼락생태공원의 경우 공원 입구에서 경전철을 타고 내릴 수 있으니 가히 사상구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나 역시 올 가을 삼락생태공원 오토캠핑장을 애용했는데 집에서 공원이 멀지 않은 거리라서 캠핑장에서 술 한 잔 걸치고 집에 걸어갔다가 다음 날 캠핑장에 차를 찾으러 와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캠핑을 부산에서 시작했으니 타 도시와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대도시에서 이렇게 도보로(혹은 지하철로) 캠핑장을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본다면 부산이 (즐기기에) 참 좋은 동네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캠핑이 일상 속에 스밀 때


초가을, 부산 날씨 기준으로는 늦여름 즈음이었을 때, 퇴근 후 친구들을 삼락공원으로 소집했다. '거창한 캠핑 아니야 정말 몸만 오면 돼!'라고 자신 있게 외치며 소집한 평일 캠핑이었다. 집에 공간이 여의치 않아서 연비를 포기하고 매번 트렁크에 차곡차곡 싣고 다니는 캠핑 장비와 전날 온라인 배송으로 주문한 음식 이것저것을 챙겨 캠핑장으로 향했다. 가볍게 떠난 캠핑인 만큼 텐트도 생략하고 간단하게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화로대 정도만 꾸려놓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한 잔 곁들였다.


나 포함 친구들 모두 서울에서 온 녀석들로 이렇게 퇴근 후에 도시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제법 그럴듯한 캠핑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점에 일제히 감탄했다. 물론 서울도 한강이나 근교 등등에 캠핑장이 있긴 하지만 도시의 빛이나 소음에서 한 걸음 떨어진 채 널찍한 공간 속에서 우리끼리 한적한 캠핑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삼락 캠핑장이 매력적인 데에는 모두 동의하는 바였다.


이제는 알아요 고기는 숯으로! 불멍은 장작으로!


돼지고기를 굽다가, 또 고등어까지 곁들이다 보니 다음 날(휴일이었음)은 생각하지 않고 욕심껏 다채롭게도 챙겨 온 주종에 모두 손이 갔다. 얼큰하게 취해갈 즈음 스피커에서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이 흘러나왔다. 술기운이 제법 얼큰하게 올라 감정과 솔직함이 필터 없이 불쑥불쑥 치밀 시점이었다.


돌아보면 부산에 온 것이 괜찮은 선택이었는지도 몰라



누군가 모닥불 위로 던지듯 한 마디 내뱉었다. 이자식 부산 올때는 눈물 찔찔 짜놓고 무슨 말이냐며 여기에 뼈를 묻으라는 시시콜콜한 농담과 함께 그 한 마디는 재처럼 금새 타버리고 말았지만 제법 울림을 주는 속마음이었다. 예상했든, 아님 팔자에도 없다고 공언했듯 예상 밖이었든 이곳 부산에 모여 도심 속 캠핑이라는 색다른 낭만에 취하다 보니 지난 1년 반 남짓의 시간이 제법 소중한 추억으로 탈바꿈하는 듯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 마저도 나와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최백호 노래 속 옛사랑의 부산이 사랑스럽게 와닿았다.


아무튼 취했심미더......


밤이 되니 딱 기분 좋을 정도로 낮아진 기온에 장작 한 박스를 모조리 태우고서야 얼큰한 그날의 캠핑을 마무리하였는데 정신 차려보니 집이었다. 다음 날 천근만근 같은 몸뚱이를 끌고 정신도 차릴 겸 캠핑장비도 정리할 겸 캠핑 사이트를 다시 찾았을 때 우리 사이트를 보고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차만 이동하면 될 정도로 완벽하게 정리된 모습...


문득 그 밤 술기운에도 주섬주섬 캠핑 사이트를 정리하던 K직장인들의 광기가 불현듯 떠올라 화들짝 차를 챙겨 집으로 무사귀환 했더랬다!


곧죽어도 일은 하고 가는겨.. 그러는겨...


일 마치고 캠핑장으로


앞서 퇴근 후 캠핑으로 한껏 자신감이 생겨, 지난 캠핑으로 옷에 베인 탄 냄새가 채 빠지지도 않은 어느 날 한번 더 퇴근 후 캠핑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한결 더 발칙하게, 일이 없는 친구가 먼저 캠핑장비를 차려두면 지하철을 타고 '캠핑장으로 퇴근'하는 방식을 택해보았다. 도심 속 퇴근 후 캠핑을 너머, 무려 캠핑장으로의 퇴근을 하는 셈이라 스스로가 제법 캠핑'꾼'이 된 것만 같아 으쓱한 기분으로 괘법르네시떼 역에서 삼락공원 캠핑장으로 쾌활하게 발걸음을 옮겼던 기억이 난다.


어느날은 천천히 즐기기다가 또 어느날은 다 태워 없애버리다가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K직장인의 광기가 아니지...


언제나 중간을 모르는 나는 급기야 회식장소 후보군을 묻는 질문에 삼락생태공원을 내뱉고야 말았고, 그렇게 캠핑장에서 퇴근 후에 업무의 연장선처럼 캠핑을 '대접'하고서야 삼락생태공원 추가예약을 멈출 수 있었다. 사실 다른 회식에 비해 뻥 뚫린 오토캠핑장에서의 회식은 꽤 낭만도 있었고 그날따라 유난스레 캠핑장에 사람도 없어서 캠핑 분위기를 100배 느낄 수는 있었지만, 역시나 회식은 업무의 연장선이요(!) 열심히 장비를 차리고 고기를 굽고 술잔을 채우고 정리를 하다 보니 이만하면 이번 가을 삼락행은 마무리를 지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낭만의 도시 부산이니깐


그렇게 변덕 끝에 가을만큼은 너그럽기로 작정한 날씨 덕분에 올 가을 기회 닿는 대로 바지런히 삼락생태공원 오토캠핑장을 방문해 보니, 캠핑 메이트가 누가 되었건 매번 짠 것처럼 나오는 한 마디가 바로 '부산이니깐 이런 (도심 속 캠핑이라는) 낭만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산이니깐, 부산이라서, 부산에 왔기 때문에 가을 한 페이지 추억을 낙동강변 도심 속 캠핑장에서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낭만의 도시에 세 들어 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일상 속 낭만을 찾아 함께 물들어가는 기분이다. 오해는 마시라. 일상은 여전히 바쁘고 힘들지만, 어쩌면 외딴섬 부산살이를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뒤지고 뒤지다 보니 이 도시의 낭만을 마주한 것일지도 모르니.


어느 곳에 가든지 생활하기 나름이다. 부산에 와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업무 때문에 잠시 부산에서 머물고 있었다. 지방 파견이 제법 많다는 뜻일터. 서울이든 부산이든 혹은 대한민국의 어떤 도시든 간에 마음가짐에 따라 그곳이 제2의 고향이 될 수도 있고, 이직을 고민할 만큼 외롭고 지옥 같은 순간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차라리 100배 즐기기를 결심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훨씬 좋을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성향도 다르고 처한 사정도 다르니 일반화할 수는 없고 나 역시 팔자에도 없는 부산살이를 원망하며 처음 몇 달을 매일 (제법 많은 양의) 맥주로 꾸역꾸역 이겨냈었기에 이제 와서야 반추하자면 차라리 초장부터 마음 열고 즐겨버리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전해본다.


이제 부산에도 겨울이 찾아오는지 제법 춥더라고예(하지만 눈 X)




에필로그


이제 1.5년을 훌쩍 넘어가고 있는 부산살이, 아직도 그 존재조차 모르는 이 도시의 숨겨진 매력을 찾아 주말마다 발 빠르기 쏘다니느라 브런치 업데이트 마저 늦어져 송구할 다름이다. 반경 넓게 여기저기 터를 옮기며 철새처럼 살아온 인생이지만 그때마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시간을 흘려보냈는데 부산만큼 도시 자체에 애정을 가지고 마음을 쏟은 곳은 사실 없었던 것 같다. 이처럼 부산을 온 힘 다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데에는 브런치의 힘이 크다. 오늘도 누군지 모를 당신의 몇 분이 즐거웠기를 바라며 글을 써 내려가본다.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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