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벚꽃명소는 낙동강 일지도
3월부터 벚꽃이 필 듯 말 듯 애를 태우더니 4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개화하기 시작했다. 긴긴 기다림 때문인지 하염없이 터지는 핑크빛에 그 기간만큼은 벅차오름을 숨길 수 없었다. 작년 해운대 인근에서 지낼 때는 해운대 광안리 벚꽃명소를 주차걱정 없이 즐길 수 있었는데 올해는 그 인파를 뚫고 어떻게 꽃구경을 가야 하나 걱정하던 찰나에 서부산 낙동강변 역시 부산 벚꽃 명소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낙동강은 저 위쪽 경북 안동에서 시작하여 영남 구석구석을 유유히 누비다가 왼쪽에는 김해 오른쪽에는 부산을 끼고 하류로 흘러온다. 부지런히 이어지는 힘찬 물결이 비로소 서부산에 다다르면 물에 서서히 짠기가 스며들어 마침내 다대포를 만나 남해 바다로 이어지는 것이다. 강변의 비옥한 생태계 덕분인지 낙동강을 중심으로 사상구 방면은 '낙동제방 벚꽃길', 강서구 방면은 '낙동강변 30리 벚꽃길'이라는 이름으로 분홍 물결이 양갈래로 놓여있다. 낙동강 찬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 관광객의 발길이 주로 닿는 곳이 동부산이라 벚꽃만큼은 서부산도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말하자면 찐 부산사람들은 벚꽃 보러 여기로 옵니데이!
낙동제방 벚꽃길은 사상구 삼락동에 위치한 삼락공원 인근 낙동제방을 따라 12km남짓 이어진다. 나로선 집 앞 공원 산책길이 봄맞이 명소가 된다는 점이 꽤 반갑다. 그도 그럴 것이 조용한 이 동네가 벚꽃시즌만 되면 방문객으로 제법 북적이는데 그나마 덜 북적이는 시간에 맞추어 주차걱정 없이 집 앞에서 편하게 나들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사실 해운대 살 때도 대우마리나 아파트 벚꽃길을 볼 때면 같은 생각을 했다ㅎㅎ)
어느 나른한 주말 오전에는 왠지 모르게 지금 나가지 않으면 이 봄날을 놓칠 것만 같아 한산한 제방 따라 분홍빛 아래에서 런닝을 즐겨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퇴근 후 제법 늦은 시간에 조용히 나가 어둠 깔린 제방에서 조용히 벚꽃물결을 감상하기도 했다. 하루는 밤산책 겸 낙동제방을 찾았는데 그때가 마침 '낙동강 정원 벚꽃축제' 기간(3.28~30)이라서 뜻밖의 축제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는 정말 조용한(어떨 때는 심심하기까지 한!) 서부산이라 제법 들뜬 마음이 들어 길가에 서있는 푸드트럭에서 괜스레 간식도 사 먹어보며 상춘객이 되어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매일 출근길 경전철을 타고 낙동강을 건널 때면 벚꽃길 위로 지나게 되는데, 어느 한 지점에 다다르면 큰 벚꽃나무 꼭대기를 스치듯 지나게 되어 한동안 벚꽃 위를 걷는 기분으로 출근할 수 있기도 하다!
삼락동 방면 낙동제방이 있다면, 강을 건너 강서구 대저 방면에는 낙동강변 30리 벚꽃길이 있다. 아는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사상구 제방길보다 대저 제방길의 벚꽃이 나무가 훨씬 크고 벚꽃이 더 우거진다. 몇 년 전 진해군항제를 처음 가본 날 오래된 벚꽃나무가 서로 얽혀 마치 꽃으로 터널을 이룬 것만 같은 황홀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대저 방면 벚꽃길이 그러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는 필라테스 수업에서 만난 아주머니께서 대저 제방길이 더 오래되어서 나무가 크고 예쁘다며 진짜 벚꽃놀이는 강을 건너 꽃길을 걸어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었다.
진짜는 저쪽 대저가 더 예쁘데이. 그쪽 벚꽃이 더 오래돼서 꽃 터널이 나있어 훨씬 예쁘데이
단점이라면 (아마도 삼락 방면 강변도 마찬가지지만) 벚꽃이 만개한 시즌에는 강변 따라 위치한 맥도생태공원 차량진입로가 일시 폐쇄되어 주차가 조금 힘들다. 어차피 해당 기간에는 상춘객으로 주차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인근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걸어오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나는 평일 낮에 짬이 나서 잠깐 다녀왔는데 막 벚꽃이 팝콘 터지듯 터지기 시작할 즈음이어서 그런지 조금은 쌀쌀한 날씨만 빼고는 파란 하늘에 군데군데 뿌려진 핑크빛이 제법 아름다웠다.
이번 봄은 유난히도 꽃을 많이 본 느낌인데 아마도 나이 때문인지(흑흑) 부산을 찾는 지인들마다 꽃을 보러 가고 싶다기에 서부산에 꽃 명소는 다 가본 듯하다.
사실 낙동강 따라 위치한 생태공원이 4곳(삼락, 화명, 대저, 맥도)이나 되기 때문에 이쪽저쪽 꽃밭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벚꽃길 다음으로 유명한 곳이 대저생태공원의 유채꽃이다. 2년이 넘게 부산에 살면서 유채꽃 군락지가 있다는 건 사실 처음 알게 되었는데 제법 규모가 크고 방문객이 비교적 많지 않아 오히려 제주도에서 찾았던 유채꽃밭보다 한결 더 여유롭게 노란 꽃물결을 즐길 수 있었다. 마침 '폭삭 속았수다'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애순이의 마음으로 대저 유채꽃밭을 걸었달까!(ㅋㅋ)
한편, 뜬금 맞게도 튤립밭도 있다. 여기는 사상구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보이는 화명생태공원 안에 자그맣게 위치하고 있는데 서울숲의 튤립보다야 규모가 훨씬 작아 감동은 덜하지만, 부산에서 보기 힘든 이런저런 색깔의 튤립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번쯤 방문해 볼 만하다.
그 밖에도 서부산은 아니지만 오륙도 수선화 역시 한 번쯤 방문해 보기 좋다. 그날은 부산에 온 친구가 자기는 봄을 탄다며 꽃을 봐야겠다기에 벚꽃보다 먼저 봄을 찾는 오륙도 수선화밭을 찾았는데, 역시나 관광지라 그런지 수선화 반 사람 반이었지만 그래도 바다를 배경으로 수선화를 이렇게 두 눈 가득 본 적은 처음이어서 뜻밖의 꽃구경이긴 했다. 만약 봄날의 부산을 찾았는데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벚꽃이 아직 개화하지 않았다면 오륙도 수선화 물결을 노려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서부산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엄궁화훼단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참 동부산에서 갓 서부산으로 이사 왔을 때는 한결 다른 동네 분위기에 매일 대형마트만 다니다가, 지도를 뒤져보니 근처에 화훼단지가 있어 하루 방문해 본 것이 계기가 되어 나만의 힐링 스팟이 되었다. 서울에서도 스트레스받는 날 가끔은 양재꽃시장에 가서 힐링하곤 했는데 규모는 조금 작긴 하지만 엄궁화훼단지도 충분히 힐링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어느새 꽃이 좋은 나이가 되어(흑흑 22) 종종 꽃을 '내돈내산'하곤 하는데 화훼단지의 특성상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꽃을 구매할 수 있다. 예전에는 오래가지도 않는 꽃을 돈 주고 사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면, 이제는 꽃을 집에 두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 아주 작은 사치로 나에게 꽃을 선물하기도 한다. 물론 사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마도 이번 봄이 부산에서의 마지막 봄일 듯하다.
부산에 오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이 좁은 땅덩이에도 계절이 달리 찾아와 다른 어느 곳보다도 부산에서 봄이 먼저 피어난다. 지인들과 농담처럼 부산이 한국의 하와이 아니냐고 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 하와이 하면 생각하는 드는 '따뜻한 기후', '바다', '휴양지'의 느낌을 부산에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와이는 열대지방이라 사계절 내내 따뜻한, 말 그대로 휴양지겠지만, 부산도 그 못지않게 온화한 기후하며 여름마다 해수욕장에 관광객들이 넘치는 등 진짜로 한국의 휴양지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비록 근무차 아무도 모르는 외딴 이 동네에 거주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휴양지에서 살고 있는 느낌으로 지내고 있기도 하다. 기분이 울적한 날에는 바다를 보며 멍 때리기도 하고, 봄이면 부산 이곳저곳 피어나는 꽃에 흠씬 취해보기도 하는 거다.
웃기게도 요즘 챗gpt 사주에 빠져있는데(ㅋㅋㅋ) 지피티 왈 내 사주에는 물이 없어서 물의 기운이 강한 부산에서 사는 것이 좋다고 한다. 웃기게도 함께 추천하는 지역 중에 제법 오래 살았던 곳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돌아보니 그곳에서의 시간이 내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이제 시간이 꽤 흘러서 부산살이가 정말 몇 개월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가끔 부산에 오자마자 쓴 글을 읽어보면 우울감이 한결 느껴지는 것이 부산에서의 내 마음가짐도 제법 바뀌었구나 생각이 든다. 그 변화가 긍정적이었던지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한결같이 표정이 좋아졌다고 한다. 허송세월로 보낼 수 있었던 부산에서의 날들을 단디 잡아준 데에는 이 '팔자에도 없는 부산살이의 넋두리'를 빼놓을 수 없다.
아참, 지피티에게 사주를 팩트폭행 버전으로 알려달라고 하니 글을 쓰고 살아야 한다던데(뜨끔)...
"마 지피티야 나 잘 살고 있는 거 맞나!"
(※ 지나친 챗gpt 중독은 지피티와 급격히 친해질 수도 있습니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