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참말로 지긋지긋한 여름날의 연속이다.
열대야 때문에 시스템 에어컨을 내내 틀고 있다 보니 좁은 자취방을 냉기로 가득 채우는 에어컨과의 전쟁 때문에 매일 추워서 온도를 올리다 습해서 다시 낮추다 하면서 자다 깨다 한다. 단잠과 여름은 영영 거리가 먼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는 오랜만에 푹 잤다. 평일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대충 미뤄놓은 빨래며 청소를 하고 냉장고 서랍 속 생명을 다한 야채들을 안타깝지만(=아깝지만) 보내주는 한편 피곤하다는 핑계로 내내 가지 못한 헬스장까지 다녀오니 자정도 안 되어 잠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꿈에서 나는 서울에 다시 돌아가고 말았다. 그 복잡하고 정신없는 도시에서 또 길 잃듯 북적북적거리다가 숨이 막힐 때 즈음 눈을 떴다. 일요일 오전 9시 45분. 눈을 떴을 때 이곳이 부산임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마침 또 하늘이 무척 파래서, 마침 에어컨 바람이 적당히 시원해서, 마침 너무 배고프지도 너무 배부르지도 않은 딱 알맞은 공복상태로 눈을 떠서 얼마나 개운하던지!
악몽까지는 아니었지만 찝찝한 꿈을 뒤로한 채 맞이한 새 아침이 유난히 고마워서 오늘은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딜 가지?
선택지가 애매한 곳에 살고 있어서 목적지를 꽤나 오래 고심했다. 혼밥에 딱히 취미가 없기도 하고 요즘 긴축재정이 목표라 집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카페나 가볼까 생각했지만 막상 동네 카페는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거나 너무 왁자지껄 해서 오히려 기를 빼앗기는 느낌이 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이동했다. 서부산이라 김해나 양산 쪽 대형카페를 갈까, 아니면 재작년에 찾았던 차밭으로 향할까 하다가 무작정 다대포가 떠올라 낙동강변을 따라 쭉 내려왔다.
다대포는 뭐랄까, 이름만큼은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익숙하지만 발길이 쉬이 닿는 곳은 아니다. 부산을 대표하는 7곳의 해수욕장 중 가장 유명한 해운대와 광안리를 포함한 5곳이 동부산에 있다. 송도 해수욕장이야 가장 유명한 두 녀석보다야 덜 알려져 있어도 사실 부산 최초로 개장한 해수욕장이니 큰 형님 격으로 논외로 하고, 서부산 끝자락에 있는 이 해변은 어쩐지 '부산 바다' 하면 맨 먼저 떠오를만한 목적지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기사에 나온 통계에 따르면 부산 해수욕장을 찾은 약 2000만 명 중 5% 격인 115만 명 만이 다대포를 찾았다.
* 참고: 해운대 911만, 광안리 453만, 송도 262만, 송정 220만, 다대포 115만, 일광 5만, 임랑 3만 순(세계일보 '2024년 여름 부산지역 해수욕장 찾은 피서객 2000만 명 육박' 중)
하지만 그래서인지 마음이 가는 곳이 또 다대포다. 남몰래 듣는 인디가수의 노래처럼, 당신 역시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지도 모르지만 그 선율은 익숙하지가 않아 들을 때마다 매번 새로움을 주는, 다대포는 서부산 시민들의 작고 소박한 푸른빛이다. 부산의 왼편을 따라 내내 흐르던 낙동강이 드디어 남해바다를 만나는 끝자락에 위치하여 그 모래가 특히 곱다. 그래서인지 부드러운 모래에 앉아 노는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 듯하다.
한편 다대포는 바다를 등지고 아파트가 위치해 있어 제법 도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해변 쪽만 바라본다면 고즈넉한 시골바다의 느낌 역시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대포는 반전매력이 있다. 임랑이나 일광 해수욕장처럼 영 고즈넉한 바닷가도 아닌 것이, 해운대나 광안리처럼 북적북적 떠들썩한 관광지도 아닌 것이, 그 중간쯤에 양면의 매력을 동시에 품고 있는 곳이다.
왜, 나만 듣고 싶은 노래지만 또 어느샌가 알음알음 알려지면 내가 먼저 나서서 자랑하고 싶은 그런 노래 있지 않은가!(오세요 오세요 다대포 오세요!)
추측건대 부산시 역시 이런 다대포의 매력을 관광객에게 알리고자 노력하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산시에서 주최하는 '부산바다축제' 역시 그간 해운대 등 부산의 여러 바다에서 개최타 슬슬 다대포로 집중되는 듯하더니 작년부터는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단독 개최하고 있다. 작년에 한번 방문한 적 있는데 왁자지껄 페스티벌 분위기가 제법 여름의 느낌과 잘 맞아 고운 모래를 밟으면서 맥주 한잔 기울이기 좋았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서부산에 이사 오고 나서는 종종 다대포를 찾게 된다. 가장 가까운 바다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적어 (축제 기간만 피한다면) 차분한 분위기가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라 해 질 무렵 찾는다면 '꿈의 낙조분수'라고 불리는 음악분수를 마주할 수 있는데 분수보다도 주민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모습이 고즈넉한 여름밤의 풍경이 된다.
지천에 바다가 있다는 점이 부산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해건 동해건 육지와 바다의 경계마다 놓여있는 해변을 찾을 때마다 이 도시에 영영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바다를 보면 풍덩 뛰어들고 싶다가도 어쩐지 주저하게 되는 건 무슨 마음일까. 모래사장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에 어쩐지 같이 신이나 씨익 웃음이 나기도 하고 그러다 눈물이 찔끔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부산 바다는 이렇듯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한다.
다대포 어느 카페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잔잔한 푸른빛을 보며 글을 쓰며 상념에 잠겨본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이 도시를 그리워하게 될지 상상조차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