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근교 #거제도 주말살기
일종의 조급 함일까. 부산에 있을 때 경상도 곳곳을 최대한 많이 돌아다녀봐야 한다는 강박에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거제도를 찾았다. 거제도는 부산, 특히 서부산에서는 넉넉잡아 한 시간 반 경이면 족히 도착하는데, 서울에서는 접근성이 정말이지 떨어지는 머나먼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거제도에서 주말을 보내고 온다고 하니 '거제도야 말로 부산에 있을 때 많이 가봐야 한다'며 서울에서 온 (부산에서 근무하는) 지인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마침 동남아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터였는데 그곳에서의 일정이 굉장히 빡빡한 데다 가방 분실 등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까지 겹쳐서 다녀온 뒤로 며칠 끙끙 앓았기에, 무조건 '힐링'만을 외치며 사실 잠결에 덜컥 예약한 여행이었다. 단지 숙소 하나만, 그것도 요즘의 트렌드와는 조금 벗어난 아날로그 감성의 펜션 하나만 예약한 채 떠난 거제행이었으나, '숙소에서 몽돌에 씻긴 파도소리가 들린다'는 한 줄의 감상평으로 여행의 동기는 충분했다. 부산살이 이제 곧 3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눈 뜨면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갈망을 내내 품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아무런 일정도 없었기에 조금은 조급한 파워 J의 마음을 잠재우고자 뒷자리에 3박 4일 충분히 지낼 수 있을만한 식료품을 채우고 퇴근하자마자 거제도로 향했다.
도착지는 망치몽돌해수욕장.
직접 찾은 숙소가 아니라 일종의 '시골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신청한 가성비 숙소라 조금의 걱정은 있었으나, 막상 마주한 숙소는 정말 깔끔한 상태로 3박 4일 편히 쉬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도 설명대로 정말 침대에 누우면 파도가 몽돌에 부딪쳐서 돌돌돌돌 물소리가 들리는 해변가에 위치한 곳이라 누워있는 그 자체가 휴식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기쁜 마음에 시원하게 하이볼 한 잔 들이켠 채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아무런 걱정 없이 눈 뜬 거제에서의 둘째 날 아침은 날씨마저 도와주는 형국이었다. 9월 말이었지만 길어지는 늦여름 더위 덕분에 n차로 여름휴가를 즐기는 느낌마저 들었다.
돌아보면 가장 빡빡한 일정이었는데, 눈뜨자마자 일단 구조라 해변으로 향해 아침 러닝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폭식 방지를 위해 러닝을 하겠다며 러닝복을 챙겨가지만 사실 실제로 달린 적은 손에 꼽는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성취감에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근처에 구조라 성까지 잠깐 들러 거제의 전경을 둘러본 뒤 톳김밥으로 가볍게 아침을 시작했다. 여행지에서는 매번 계획에 계획을 이어나가기 바빴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지도 어플을 열어 '음식점'을 클릭해 나오는 김밥집이 생각보다 입맛에 맞아 돌아오는 날 한번 더 방문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김밥과 꽈배기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나니 동생 부부가 방문을 했다. 사실 여행 계획에 전혀 없던 초대였으나 어쩌다 보니 흔한 안부연락에 그만 거제행이 들통(ㅋㅋ) 나버려 합류하게 되었다ㅋㅋ 무튼 멀리서 온 일행이기에 관광지 한 곳 정도는 가보자는 마음에 인터넷을 뒤지다가 마침 근포땅굴이라는 곳이 눈에 들어와 무작정 해안도로를 따라갔다.
- 날이 좋아 사진 잘~ 찍힐 겁니더
거제에서도 제법 깊숙한 남단에 위치한 곳이라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한적한 동네였는데, 해변이 특히 아름다워 우리나라에도 이런 물 색깔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안내해 주시던 동네분의 말씀처럼 어떻게 찍어도 그림이 되는 풍경이었다! 근처에 카페에서도 망망대해 오션뷰를 즐길 수 있었는데 커피 맛보다도 부산과는 또 다른 오션뷰에 한동안 멍 때리고 먼바다만 바라보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전날 한바탕 술자리에 먹거리에 왁자지껄 하룻밤을 보낸 터에 느지막이 일어나 별거 없는 하루를 보내다가 동생부부가 돌아가고, 또 한동안 몽돌소리를 듣다가 이번에는 장승포로 향했다.
장승포는 머물고 있는 몽돌망치해수욕장 보다 한결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어촌마을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일제강점기에는 식민 이주 어촌으로 제법 붐비는 어촌 마을이었단다. 그래서인지 마을 군데군데 적산가옥이 보이는데 이 중 하나를 카페로 운영하고 있는 '두록'이라는 곳에 들려 커피 한 잔을 즐겼다.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한산한 바닷가 거리를 거닐다가 전날 근포마을과는 또 다른 바다색에 또 한참 윤슬을 바라보며 정처 없이 거닐었다. 해안도로가 꽤 복잡한 섬이 거제도라는데, 신기하게도 바다마다 정취 하며 그 색이 전혀 다른 것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한낱 같은 바닷물이겠지만 그날의 날씨와 온도에 따라, 또 그 물이 맞닿는 곳이 모래인지 몽돌인지 항구의 시멘트인지에 따라, 그리고 그 바다 너머 혹은 바다를 둘러싼 풍경에 따라 색깔이 달리 보이는 것이 바다가 주는 특별함 같았다.
수많은 이야기와 역사와 슬픔과 기쁨이 스쳐 지나간 어촌마을의 바다를 보니 어쩐지 인생이 바다와도 같겠구나 생각마저 들어 괜스레 울적해지기 전에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금토일월. 단 하루의 연차를 붙여 방문한 짧은 거제도 주말살이었는데 충분히 쉬었던 덕분인지 꽤 긴 휴식처럼 느껴졌다. 이제 4일 차가 되어 익숙해진 몽돌망치해수욕장을 뒤로한 채 거제도의 끝자락을 즐겼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산에서 거제도는 편도 1만 원의 해안터널을 통과해야 하니깐!
거리는 가깝지만 왕복 2만 원의 통행료에 괜히 궁색한 마음이 들어 마지막으로 거제도의 관광지 몇 곳을 더 들리고 가덕도까지 찍고 나서야 부산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ㅋㅋ
뒤늦게 추석 명절에서야 거제도 여행기를 올리면서 든 생각이, '나에게 집이란 도대체 어디일까'하는 것이었다. 집이란 자고로 편안한 마음이 드는 곳일 텐데 이제 나는 고향집에서도 마음이 편안하고 부산에서도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보니 학창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한 나는 일찍부터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인생 흘러가는 모양새가 정착과는 조금 거리가 먼 모양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장점인 친화력과 적응력을 앞세워 어찌어찌 둥지를 틀고 또 틀며 이곳까지 흘러왔다. 하필 고향을 떠나 거쳐간 동네들이 (서울 제외) 모두 바다를 끼고 있는 것이 꼭 물 따라 흘러 흘러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다.
거제도에서 만난 다양한 빛깔의 바다처럼, 내 인생 부산에서의 한 페이지 역시 특별한 색을 띠고 있겠지. 확실한 것은 이 페이지를 넘기거든 내내 그리워할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색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점이다.
짧은 거제도 3박 4일 여행 끝에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부산이 더더욱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