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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Dec 23. 2024

크리스마스 랩소디 in 부산

#부산야경 으로 연말 분위기 느끼기

눈 깜짝할 새 12월이 되었다.

해가 갈수록 시간 가는 게 더욱 빨라진다지만, 올해는 정말이지 좀 심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서울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는데 이 도시에는 역시나 눈송이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많이 춥진 않지만 그렇다고 안 춥지도 않은 애매한 추위에 옷깃을 여미며 도통 연말이 맞기는 한 거야 구시렁거리며 일상을 꾸역꾸역 보냈다. 그런 와중에 연말 기념 친구들이 부산을 찾아온다기에 그래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보여주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큼지막한 트리며 시간 맞춰 흩날리는 인공 눈까지, 이 도시가 크리스마스에 제법 진심인 것이었다!


아난티에 트리+인공 눈 보러 가면 사람에.. 치입니데이...


그렇게 주말마다 찾아오는 지인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난다는 이곳저곳을 찾아다닌 결과, 사람 생각하는 것은 다 똑같아서 부산 사람 (거의) 모두 크리스마스 트리를 찾아 이들 장소에 모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쁘게 치장하고서 트리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현생에 지쳐 주말만큼은 힐링이 급급했으나 인파에 치여 힐링 근처에도 가지 못한 불쌍한 중생이었다.


그러니까 온갖 카페에 세워진 화려한 초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에 조금은 피로감을 느끼던 참이었다.


여기를 안 가봤으면 부산사람 아이다!


기분전환 삼아 친구와 떠난 야밤 드라이브의 행선지는 황령산이었다. 도시 전역에 크고 작은 산이 많아 그 산을 깎아 만든 동네가 여기저기 흩뿌려진 부산에서 황령산은 그래도 꽤 알려진, 금련산맥에서 두 번째 높은 산이란다. 이곳 황령산은 부산 남구, 수영구, 연제구, 부산진구에 걸쳐있어 접근성이 좋기도 하고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산이라 도심의 불빛이 자아내는 야경으로도 유명하다.


여러 번 들었지만 왜인지 발길이 닿지 않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하니, 함께 간 친구가 그럼 명예 부산인이 될 수 없다며 야밤에 황령산으로 운전대를 이끌었다. 잘 관리된 산길 굽이굽이를 따라 차를 몰고 올라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그 주차장에서 오르막을 10분 정도 따라 올라가다가, '하이고 언니네 식구들 부산 왔다고 황령산 데꼬 왔는데 마 죽겠다!'는 옆사람의 푸념에 공감 섞인 웃음이 나올 즈음 도시의 불빛이 얼핏 얼핏 보이기 시작는데...

와, 탄성이 절로 나오는 야경이 펼쳐진다.

 

광안대교 너머 밤바다도 보인디!
선명한 동서고가의 불빛(안막혔으면ㅠㅠ!)


저기는 광안대교를 사이에 두고 해운대와 광안리요, 이쪽은 동서고가를 따라 부산의 중심지인 서면, 그리고 저 멀리 서부산과 북구 화명동까지... 화려한 도시의 야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동네들을 찾아 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보니 '부산 지인짜 좋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전망대에는 조선시대에 쓰였다는 봉수대가 있는데 그 근처에 커다란 통신탑이 도시를 비추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조명을 내뿜고 있었다. 이곳은 또 도심에 위치하고 있지만 도심의 불빛은 산자락 아래에 두고 온 덕에 어두운 밤하늘에 듬성듬성 별도 보였다. 멀리 보이는 광안대교를 보니 부산사람들이 불꽃축제를 하는 날이면 왜 이곳 황령산 전망대까지 찾아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도심의 꼭대기 위에서 어두운 밤하늘 아래 저 멀리 어두운 밤바다를 배경 삼아 터지는 불꽃이라니, 이곳만큼 명당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아마 서부산 방면이었던가(아닌가!)
통신탑 조명이 트리처럼 반짝반짝


여기는 이제 부산 사람들도 모른디!


이미 황령산에서 바라본 야경에 흠뻑 도취되었을 때 두 번째 행선지로 향했다. 부산항 전망대란다. 부산항이니깐 부산역 앞에 위치한 그 부산항이겠지, 안일하게 생각하고 말았다. 한참을 따라가다 부산항을 지나쳐 서부산 산복도로로 들어갈 즈음, 부산항 전망대가 부산항에 '있는' 곳이 아니라 부산항이 '보이는' 곳임을 깨달았다. 운전대를 잡고 부산의 산복도로 고바위를 따라가다 보면 급경사에 마치 누워가는 느낌을 주는 구간들이 있는데 이 전망대를 찾아가는 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운 좋게 운전대를 잡지 않아 눈을 질끈 감고 말았지만 친구 역시 '뭔 이런 길이 다 생겼노' 하며 무사히 올라와준 자동차에 경의를 표할 지경이었다. 힘들게 찾아온 서구 남부민동의 어느 중턱에 부산항 전망대가 있었다.


항구의 야경이 색다르게 느껴진다(마 부산 아이가!)


이곳에서 바라본 야경은 황령산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여기저기 보이는 부산의 항구와, 그 항구 사이를 잇는 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결 부산스러운 야경이랄까. 밤산책이라 검푸른 빛이었지만 밤바다로 둘러싸인 부산항의 모습이 마치 영화에서 보았던 바다 냄새 물씬 나는 부산의 한 장면 같았다. 황령산은 산 전망대에서 바라보았기에 그저 점으로 빛나던 도심이었지만, 부산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심의 구석구석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했다. 추운 밤 골목 사이에 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들을 바라보며 주제넘게 이런저런 생각의 꼬리를 물다가 조금 더 위쪽으로 자리를 옮겨 천마산 하늘 전망대로 향했다.


확실히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천마산 아경


머지않는 곳에 위치한 천마산 하늘 전망대 역시 사람냄새나는 풍경을 하고 있었다. '산동네의 추억', '부산의 원도심'이라는 문구와 함께 닿는 발길마저 적은 고요한 산복도로 중턱의 전망대였다. 시선 끝마다 항구가 보였던 부산항 전망대였다면, 이곳은 골목골목이 더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였다. 벽따라 쓰여있는 대로 굽이굽이 산동네 위에 위치한 곳인데도 골목 속에 마을 쉼터와도 같은 작은 평상과 그 옆에 고양이 쉼터가 눈에 띄었다. 겨울밤인데도 군데군데 사람 손길이 닿은듯한 작은 화단이 보여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어쩐지 카페나 호텔 등등 도심 여기저기에 놓인 트리의 크기는 매년 커지는 듯하다. 더욱더 화려한 조명과 장식을 달고서 일 년 중 제일 기다려진다는 '그날'이 왔음을 온 힘 다해 SNS에 알리곤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커지고 크리스마스를 요란하게 기념하는 공간이 많아질수록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종교적인 이유는 차치하고서라도 기억 속 크리스마스는 화려한 불빛과 조명보다는 따뜻함으로 남아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서 숨겨놨던 기억, 그리고 어느 해부터 서는 생크림 케이크를 사서 거실에서 모여 푹푹 퍼먹었던 기억, 크리스마스를 핑계 삼아 달콤한 간식들이며 맛있는 음식을 함께 모여 먹었던 기억.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의 이상한 뭉클함과 새 해를 기다리는 기대감이 뒤섞여 괜스레 '내년의 목표' 따위를 세우곤 하는 희망의 시간. 창 밖은 겨울의 서슬 퍼런 추위로 가득하지만 집 안 온기만큼은 여느 날보다 더 훈훈했던 그날. 어쩌면 미화되었을 내 기억 속 평범한 크리스마스는 이렇듯 온기로 남아있다.


인증샷 열기가 가득한 크리스마스 명소들을 뒤로한 채 어느 추운 겨울밤 부산 야경을 보고 있자니 코 끝이 빨개졌다. 어둠 속 저 멀리 점처럼 보이는 부산 도심의 야경이 크리스마스 불빛이요, 황령산 위에 우뚝 솟은 통신탑이 고요한 크리스마스 트리요, 산복도로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의 골목골목이 크리스마스의 온기였다.


북적이는 인파 없이 고요밤 산책길에 맞이한 2024년의 연말, 범한 나날들이 하나 둘 쌓여 부산에서의 한 해가 이렇게 또 지나다.


모두모두 멜크입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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