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독자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북미에서 한국으로 이사를 준비하는 중에 정신이 없어 연재 일을 놓쳤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말은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레바논 출신의 학생이었고 내가 다니던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오게 되어 수업을 같이 듣게된 학생이다. 아말은 나에게서 풍기는 느낌이 좋다며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 아말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왔고 우리는 정말 신나는 한 학기를 함께 보냈다. 아말이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날 나는 공항에서 울며 아말을 떠나보냈지만 아말은 나에게 괜찮다며 우리는 다시 보게 될 거라고 하고 비교적 덤덤히 나를 떠났다.
아말에게 배우고 싶은 점들이 참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자신을 가장 소중히 여긴 다는 점을 제일 배우고 싶었다. 짧은 시간동안 이었지만 아말은 나에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녹지 않은 버터가 발라진 바삭한 빵을 좋아한다.
코로나때문에 전 세계가 봉쇄되던 시기에, 아말은 스페인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코로나에 걸려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말에게 "미안해,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너가 위로되지 않을 것 같아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다."고 했지만 그녀는 나에게 "It is what it is, it will be alright(뭐 어쩌겠어. 괜찮아 질거야)"라고 했다. 그 전에 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잃었을 때도 아말은 나에게 같은 말을 했었다.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런말을 하는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원망했다. 그런데 아말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도 그렇게 무덤덤해 보이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 나는 그게 무덤덤함인지 평정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몇 년 후,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비교적 가까운 뉴욕으로 잠깐 여행을 가게되었고 아말은 마치 뉴욕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말에게 뉴욕에 가게 되었다고 만나자고 했는데,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느낌이었다. 그때가서 봐야한다고 약속도 잡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서로가 있던 장소와 시간이 겹치게 되어 만나게 되었는데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고 껴안았지만 그녀는 예전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아말은 뉴욕이 싫다고 했다. 서울이 그립다고 했다. 그녀가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뉴욕을 떠나기 전, 다시 한 번 더 만나기로 했는데, 그녀는 바쁘다고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 큰 상처를 받았던 나는 그 여행내내 공허함을 지울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는 것들이 너무 많고 그 시간이 너무 빨라 내 손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을 모두 붙잡을 수 없없다. 이제 어쩌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지나쳐왔기에 소중한 사람들 조차 놓치기 전에 그냥 덤덤하게 지나쳐버리게 되는 건 아닌 가 싶다.
아빠랑 옛날 사진들을 보며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리워 하는 사진속의 누군가에게 이제는 연락할 길이 없다며 안타까워 하신 적이 있다. 검색과 클릭만 몇 번해도 지금 이 사람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이 세계에서 그리움이라는 단어의 뜻은 어느새 바뀌어버린지도 모르겠다. 금방 가까워지고 또 읽지 않는 메세지를 남겨두는 것이 당연해지는 이 세상에서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부르기 싫은 나에게 누군가가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