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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토피아, 정신과 14

by 씀씀


병원이란 대개는, 드나든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장소는 아니다. 출입이 죄도 아닌 데다 불편한 곳을 치료하는 목적에서의 행선지일 뿐이니. 하지만 이런 대목에서면 늘 등장하는 그 말이 여기서도 소환되니. 예외는 있음이다.


-정신과 -성형외과 -피부과

(더 있겠으나 오늘 이야기에선 이곳들만 필요함)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위 세 과목의 진료를 보는 사람은 가능한 한 그 사실을 감추고 싶어 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근데 그게 왜? 뭐? 라고 한다면, 고맙다. 계속 써도 되게 해줘서.


어느 쪽으로든 그닥 가치는 없는 내 이 발견을 자평한다면, 웬만해서는 수긍할 테니 설득력 부분에선 후한 점수를 준다. 근데 그게 다다.


내가 찾은 게 무슨, 우리의 마땅한 일상이라 모두가 그러려니 지나갔지만, 나만큼은 무심히 넘기지 않고 퀘스천마크를 던짐으로써! 인류에 기여하는 발견을 한 것은 너무 아니니까.


아무렴 '다닌다는 사실이 알려지길 꺼려하는 병원은 정녕 없는 걸까'와, ‘사과는 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까'를 같은 류의 호기심으로 보는 건, 에이… 에이… 진짜 우리가 돈이 없지 중력이 없냐. 그렇게까지는 하지 말자.




정신과 성형외과 피부과의 교집합. 이건 그냥 내가 정신과를 다니는 중이니 얼결에 생각나 버린 것 뿐. 그게 아님라면 누구 사는 데도 필요 없을 공통점을 뭐 한다고 찾겠으며 또 그게 뭐라고 여기에 대서특필을 하겠는가. 당연히 이렇게까지 쓰는 데엔 또 다른 발견이 있는 거지. 나한테 별 볼 일 없는 유난은 죄악인 것을.




정신과. 모두 알다시피, 우리 사회에서 유구한 전통에 빛나는 오색찬란한 색안경까지 손수 챙겨주며, 특별대우 해주는 병원.


어찌나 특별하면 뭔가 가서도 안 되고 간 걸 걸려서도 안 되는? 꼭 미성년자의 술집 출입처럼 민감하고 조심스럽고 쉬쉬하고. 더욱이 이건 불법도 아닌데 어째선지 내 인생에 있을지도 모를 리스크를 걱정하면서? 초이스해야 하는, 무려 그런 곳.


자그마치 그런 정신과와, 압구정 신사에서는 편의점보다 흔한 성형외과, 피부과가 어떻게 같은 선에서 묶인다는 것인지 혹시 궁금한 분? 궁금하면 오백 원이 아니고, 대단히 고맙습니다.




전편들에서 서술했듯, 내가 다니는 정신과에서 제한적으로 경험한 바에 따르면.


탑오브더병원인 것 같은 정신과는, 오히려 여느 병원보다 더 병원 같지 않다. 분위기며 인테리어, 공기, 응대, 그 모든 것들이 정신과에 대한 높은 진입장벽과 사회적 인식을 타파하고 내원한 이들을 위한 따뜻한 배려, 거기서부터 치료이며 한편으로는 계산이리라. 병원도 어쨋든 엄연히 장사인 건 맞으니까.


정신과 그곳은 커피 없는 카페, 책 없는 서점. 대기 중인 환자들은 지하철에서 보고 거리에서 지나친, 식당 옆자리에서 봤던 보통의 타인들. 정신적 질환? 질병? 글쎄 모르겠다. 나 또한 환자로 찾은 것이니 팔이 안으로 굽어, 좋게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과 환자나 정신과 환자나 다른 게 없었다. 만약 다른 게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참에 검진 받아보시기를 권한다.


내가 보고 느낀 게 그러니 생기고만 아쉬운 지점이 있다. 왜 정신과는 이름을 지을 때 하필이면 '정신'을 넣었을까. (영화 해바라기의 김래원 씨 연기처럼 읽어주셨으면 하는 부분) 꼭 그렇게 '정신'이라고 넣어야만 속이 시원했냐! 아무리 그게 직역이고 바른 표기더라도, 조금 의역해서 '마음'을 넣었으면 모두가 훨씬 편리했을 텐데. 마음건강의학과. 마음과. 마음병. 마음병원.




하지만 말이니 그럴싸해 보이고 나도 글이니 이리 쉽게 쓸 뿐. 본질은 인식이고 의미인데, 이름 하나 저렇게 바뀐다고 편리해지고 달라지는 일 같은 건 없었을 거다. 나부터도 달라질 용기가 없다.


다른 부연은 필요도 없이, 달라질 용기가 없는 게 당얀한 이유는 이거면 설명 끝이다. 정신과의 가장 크리티컬 한 존재감이기도 한 그것. 바로, 회사에서 병가에 결단코 진단서 첨부를 하지 못하겠다는 것. 내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진짜 백 번 양보해 항문외과까지도 다 증빙을 하더라도 정신과만큼은 자신이 없다.


사실 따져보면 되게 부조리한 일이다. 정신과만큼 꾸준히, 주기적으로 가야 하는 병원이 어딨다고. 그러니 결재권자에게만 사전 보고 후, 진단서 첨부한 병가로 업무에 지장 없는 선에서만 통원하며 치료 받을 수 있다면 세상 얼마나 해피할까. 회사는 직원 복지 베스트. 직원은 개인 멘탈 케어 관리 우수.


회사가 불신지옥인 것 같아도 케바케 자바자다. 팀장이건 과장이건 그 자리까지 올라간 책임자는 자기 회사의 생리를 미친 듯 안다. 입들이 얼마나 빠르고 소문이 얼마나 자가번식하는지. 해서 직원의 아픔은 알아도 알아도 모르는 걸로 입을 굳게 잠근다. 결국 그게 곧 본인 리더십이기도 하기 때문.


또 모름지기 인간이 워낙에 순수하고 순진한 종족 아니던가. 일대일에 애틋해지고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갖는. 너와 나만 특별한 비밀? 죽어서도 약속! 이 된다. 거기다 쐐기로, 특정 사실이 유포됐을 때 출처라곤 오직 한 군데 뿐이라면, 그게 팀장 과장 아닌 대표 할아버지라도 결코 쉬이 입을 열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네 오피스의 시스템. 폐쇄적인 듯 개방적이고, 마치 무슨 개인 근무상황도 공지처럼 권한이 있는 이들에겐 공람이 가능하고, 민감한 의료정보도 인사팀은 마치 내 실비 보험 회사인 것처럼 속속들이 꾈 수 있는 굳이 과하게도 친절한. 이럴 거면 왜 검토 결재 과장 국장 두 명만 올려? 과원 전부에 인사팀 전원을 올리지?


이런데 내가, 정신과를 다니는 환자들이 어떻게, 떡하니 진단서 올리고 상담을 받고 치료를 하고 처방을 받으러 갈 수가 있겠는가.


왜 a팀에 누구, 정신과 다닌대

우울증이래

어쩐지 맨날 얼굴이 이상하게 어둡다했어

결혼도 안 하지 않았어?

사무실에서도 좀 그런가 봐

회사 계속 다녀도 되는 거야?


…. 진단서 한 장이 불러올 나비효과가 어떨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정신과 성형외과 피부과의 어떤 공통점을 잇는, 이걸 쓰게 만든 한가지 이야기는 문턱에만 갔다 시작도 못 했네. 노크는 다음 편에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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