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스트라다무스였던 분들에게

by 씀씀


내게 예언이란 과학이다. 육하원칙 어디에도 발 담그지 않은 채 얼버무리는 워딩은 쳐주지도 않는 그 콧대 높음.


허나 그마저도 요즘처럼 새로고침이 무서울 만큼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선, 미래 이벤트를 아무리 육하원칙에 따라 세상 딥하게 설계해 놨다한들 조회수 1을 못 넘기기 일쑤이기 마련이니,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그렇담 무엇이 더 필요하냐, 예언 성립의 조건은 간단하다.


하나, 말 안 될 확률의 운이던 영험한 예지력이던, 어떤 기운의 서포트로, 과거에 약속한 미래가 시간 지켜 와줘야 하고. 둘, 그때까진 그 기록을 무시, 조롱, 방치 속에도 남겨두어야 한다. 셋, 그래야만 비로소 '성지순례'로 재평가 겸 인정 받을 수 있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예언의 전당에 한 자리 차지할 수 있게 되므로.


물론 그 트로피를 차지한 예언이라도 출신 성분은 똑같다. 화자는 얼마 간의 기다림과 약간의 무시, 조금의 실소를 굳이 당하면서까지 하고 있고, 청자는 대체 저 감동도 재미도 없는 소리를 왜 하는 걸까 그 기원을 고민하게 되는, 피차 불편한 말의 한 종류.




예언 or 예언가에 대해 박식할 일은 없고, 그저 노스트라다무스 한 분 아는 정도인 내가. 그것도 엄밀히는 내가 아는 게 아니라, 그분이 원체 유명하셔서 나까지 알 수밖에 없던 거라고 해야 바른 말일 상황에.


얼마 전부터 신뢰로 안돼 추종하는 예언가가 생겼다.


주인공을 영화제 공로상 수상자 소개처럼 공들이고 싶으나, 그러지 않겠다. 그냥 서둘러 이 분의 예언을 말하면 그만일 일이라.


서론은 거두고 이젠 말해야 하는, 마음으로 인정해 버린 내 인생 최고 예언가는 다름아닌 여기저기, 그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 어른.


같이 늙어가는 이들. 나보다 몇 해라도 더 산 분들. 나보다 빨리 30대를 즐겨봤고 나보다 일찍 노화를 겪었고 나보다 이르게 40대가 됐으며, 나보다 일찌감치 인생 레이스 저기 앞서서 뛰고 계신 그 분들.


왜 그들이 내게 이토록 강력한 예언자인지, 따로 거창히 설명할 게 없다. 인생 최고의 예언을 그들로부터 들었다.


너도 늙어봐라, 너도 나이 들어봐


수치며 데이터 따위 가볍게 무시한 말. 불특정 다수가 불특정 다수에게 시도 때도 없이 해왔을 말. 내용이 하나도 없어서 추상적이다 못 해 기하학적이기까지 한 말. 그런데 적중력, 영향력, 파급력...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없는 말.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갓 서른 됐을 때였던가. 여하튼 지 잘난 맛과 친구에 환장해 뛰놀던 어느 무렵이리라. 그 말을 처음 해 준 이가 나를 어여뻐하고 짠해한 이 중 누구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말을 들으면 무슨 치킨도 아니고 "네네" 했던 것만 어렴풋하다. 아무렴 귀 담아도 안 들었었다. 그랬던 이유 하난 분명하다. 저 땐 나이가 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한 살 한 살 먹는 거야 믈론 알았다지만. 내가 이 나이 먹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데! 그렇게 쉽게 나이 안 먹어요!… 대책 없이 해맑은 생각이었다.


쓰다 보니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억이 말하길, 나이 들어보란 예언은 중학생? 고등학생? 교복 입은 때에 이미 들은 듯 하다. 나이 들어봐,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고. 사진 많이 찍어두라고.


모르고 살았길 다행인 건가. 대간절, 그때 알았었더라면 어디 내 무릎이 남아났겠나 싶어서. 그 신통방통한 말에 무릎을 몇 백 번은 쳤을 테니 말이다.


어른들 하는 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말을 어른이 돼서야만 깨닫는 건 우리의 불완전성 때문일까, 신의 짓궂음 때문일까.




내 지난 10,20,30대에 계셔준 감사한 예언자들이여.


드디어 저 나이가 들었습니다. 그것도 꽤요.


아주 오래 전부터 절 위한 귀한 말을 해주셨음인데, 이 어린양 그 시절이 무릇 그렇듯 가진 젊음에 거만했고 세월의 야속함에 순진했습니다.


그때는 분명 한귀듣, 한귀흘 했던 것 같은데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나 봐요. 한 살 먹을 때마다 제가 전 같지 않을 때마다 그 옛날 누군가 해주셨던 말씀이 진리였구나 생각하며 꺼내든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렇게 나이 들어봐야 안다고 하시더니. 저 이맘때면 제가 그때의 당신들처럼 너도 나이들어봐를 설파하고 다닐 거란 걸 아셨는가요? 그렇담 제가 그때의 당신들에게 그랬듯, 저 역시 많은 콧방귀를 듣고 있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아. 저의 그때와 지금은 또 몰라보게 변하여, 나이로 무얼 하면 꼰대라는 새로운 롤을 얻게 됩니다. 꼰대. 그 글자며 발음부터 못 생겼잖아요. 뜻도 별로에요. 해서 꼰대가 되기는 싫은데 입만 열었다 하면 '나이'가 나가는 통에, 강제로 말수가 조금 줄어들기는 했습니다.


늙어보고 나이 들어보니 어떠냐구요? 다릅디다요. 저도 저지만 세상이 달라지더라고요. 제가 사는 세상, 저를 보는 세상. 그러면서 또 제가 달라지고요. 외모도 체력도, 현실적인 문제와 여건까지. 나이 한 살에 여전한 것들보단, 달라지는 것들이 더 많은 쪽으로 무게 추가 기울어 가더만요.


사실 너도 나이 들어보라던 그때의 말씀은, 분명 어떤 상황을 두고 하셨던 건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근데 그 특정한 상황이 흐릿해진 편이 훨씬 좋답니다. 나이 들면 뭣도 변하고 뭣도 싫고 뭣도 달라지고... 그러다 뭐는 좋아질 거라는, 분명 뒤에 그 뜻으로 하신 말이었을 것 같아 말이죠.


나이가 드니 싫은 거요? 저 줄 세울 수 있습니다. 하룻밤도 세울 수 있어요. 근데 그 줄 맨 앞에, 그 밤 맨 앞엔 나이 들어 좋은 점이 자리하게 하려고요.


나이 들어보니까, 치기에서 한 마디 멀어진 이 감정이 포근하고, 부모님 패인 주름과 수북한 흰머리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습니다. 너무 슬프지만 거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 그건 분명 좋아요. 바깥을 이유로 나를 괴롭히는 등신 같은 일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또 등신 짓 하네 자각은 할 수 있게 됐으니 그것도 다행입니다. 이마에, 미간에 조금씩 지 주장이 실려가는 주름들을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왔나가 보이고, 나쁘지 않게 살아왔다 평가할 수 있게 됐으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원래 스스로는 파고가 높지 않게 살았으니 세월이라는 배만 잘 따라와 주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제가 제일 잘해야겠고요.


나의 어른들이여! 궁금합니다. 거기는 어떤가요?

더 나이 드신 지금은 무엇이 다르신가요?


곧 마흔인 제게 해주실 '너도 늙어봐, 나이 들어봐'가,

제가 또 들어야 할 예언이 있을까요?


보고싶어요. 또 그립습니다 조금은. 그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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