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아침이라 시간이며 입맛 없다고 제껴. 점심은 회산 걸? 회사선 뭘 먹기가 싫은 걸? 굶어. 그렇게 저녁 되면 입에선 단내가 나고 당장 위액이 올라올 것처럼 배고파 난리가 나는데도, 그래서 집에만 도착해라 내가 거지 동냥밥 먹듯 게눈 감춘다 이를 가는데도.
집에 와 빽을 놓는 순간 이곳은 단식원. 무식욕자. 모든 게 다 무미무미. 그나마 밖에서 누구랑 먹어야만 두세술 떠온 지 몇 개월. 그래서 집밥을 안 먹은 지 몇 개월.
인터넷보단 TV라는 주의라, 작년까지만 해도 텔레비전만 틀어놓으면 혼자서 그렇게 바쁘고 재미있을 수가 없었는데, 현재 걔는 그냥 바보. 다른 의미의 바보상자가 된 지 오래. 나를 전혀 못 끌어당기지 못하는 중.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몇 개 안 되는 역사 프로그램들로 겨우 겨우 그 체면만 유지.
혼자는 먹는 것도 노맛. 있는 것도 노잼. 제일 편해야 할 혼자에 따라붙는 것들이 하나같이 한숨 나오는 것들이라니. 사십춘기를 일 년 당겨 타나?
그러던 며칠 전. 몇 달째 혼자면 발현되는 이 이유 모를 무기력이 통화 중 느닷없이 툭 나와버렸으니. 평범한 얘기는 아닐진대도 나한테 일상과도 같던 근심이었던 지라, 마치 응 밥 먹었는데와 같이, 일절 대수롭지 않은 얘기인 양 세상 심플하게 등장했다.
-나 진짜 왜 그러지. 괴롭다 괴로워.
그러자, 뭐가 이렇게 빨라? 싶게, 내 푸념보다 더 심플한 답이 수화기 너머 와버리는데. 세상에 이게 귀에 닿기 무섭게 슝. 나를 관통하는 게 아니겠는가.
“이제 다 해봐서 그러지 뭐“
현… 현자다.
머리가 그제야 좀 맑아졌다. 막혔던 혈이 뚫린 기분이 이런 건가.
멀겋게 끓인 순두부인줄로만 알았던 내 세월이, 언제 이렇게 온갖 조미료에 길들여졌을까. 밍숭맹숭해 도저히 안 되겠거든, 그럴 때만 한 번. 양념장 휙 둘러주면 충분했을 희로애락들이었는데, 나 더 즐겁겠다고 나 더는 못 견디겠다고 이것저것 갖고 있지 않던 맛들을 기어코 쏟아부어 왔구나. 나도 모르는 새, 만들어진 자극들에 나를 너무 맡겼던 모양이다.
몇 달째 시름이 한 마디에 가뿐해졌다. 이 수개월 짜리의 무기력. 자기애는 없고 인류애 과잉이던 갸우뚱한 애정전선은 각성의 신호였던 셈이었다. 자극 범벅이 된 지금 이 채로는 더부룩해 더는 안 되겠으니 원래의 나로 돌아가자며, 내 일상의 주파수를 흔들어 놓은 것이랄까.
그러나, 마라탕이 다시 순두부가 되는 일이 어디 쉬울 수 있겠는가. 엄청 힘들지. 그리고 엄청 맛없지.
다 해봤다는 건 어불성설. 그건 내 정신을 들게 해 준 번개 같은 워딩일 뿐. 당연히 내 인생은 남들 하고 사는 거 남들 해 본 거? 아직 흉내도 못 내 본 게 천지삐까리인 신세.
다만 그런 거 부질도 없고 필요도 없으니 이제 그만, 다시 풍둥풍둥한 순두부로 살고 싶다. 세상이 볶는다고 볶이지 말고 남들이 구워삶는다고 구워삶아지지도 말고. 나는 나대로 슴슴하고 미지근하게.
순두부는 볶아도 순두부고 구워삶아도 순두부니까.
순두부를 잃지 않는 순두부처럼 나도 나를 잃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