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나한테 왜 그래? 왜 잘해줘? 왜 말 걸어? 어째서 오늘은, 이따금 따뜻할 것만 같아? 싶은 날이 있다.
몰래카메라 찍는 날.
대개 진짜 느닷없이 오는 그날을 나는 그렇게 부른다.
그 촬영일을 눈치채기란 쉽다. 왜지 싶은 행동과 말을 두 사람 이상이 내게 행한다면 합리적 의심을 시작해도 된다. 생판 한 번을 안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잘해준다는 건 분명 그 친절을 웃도는 용건이 있거나, 몰래카메라거나이기 때문. 전자 후자 중 무언지는 시간이 가름해 주기 마련이지만, 인간의 온도를 민감하게 잡아내는 사람에겐 그 때아닌 온기의 에너지원을 캐치하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을 수 있다.
내가 그 세밀한 온도계. 그런 날 나의 경우는 그렇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육하원칙에 따라 그 친절을 선 정리, 후 분석한다. 마지막 왜가 성립될 수 있는지. 여태껏 그런 적 없고 그럴 일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말이 안 되는 일보다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더욱 탈이 나기에, 본인의 수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빠르고 쉬운 건 내 평소 호의를 이렇게 받는 거려니 하고 기분 좋게 누리는 거겠지만, 또 그건 안 된다. 남보다 나를 설득시키는 일이 어려운 애한테 이런 일 한 번에 위 근거를 쓰기란, 근거가 너무 아깝거든.
자. 이것이 나의 오늘이 오리무중인 이유다.
안 그래도 몸살끼 때문에 어디 물속에 며칠 담가져 있다 나온 양 뚱하고 멍한데, 오늘을 몰래카메라 촬영날로 느껴버려 어안까지 벙벙하다.
별뜻 없이 그저 오다 주웠는데 줄 데 없어 내게 온 친절이라기엔, 친절함이 지나치게 우후죽순이다. 이런 단체적인 우연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하겠는데, 거기서도 저건 작위적이라고 욕먹을 설정일 것 같다.
그럼 대체 왜? 뭐? 짬짬이 생각하다 마침내 본인은 좀 다른 해석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이 일은, 몰래카메라예요? 나한테 왜 그래요? 하며 세상과 타인에게 물음표를 던질 게 아니라, 나에게 느낌표를 던질 일이라는 통찰에 노크를 하게 된 것이다.
나를 주인공으로 몰래카메라 하는 것 같은 날. 내게 누구누구가 때 아니게 이유 모를 선의며 호의를 베푸는 듯 한 날. 헌데 암만 생각해도 그럴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는 날.
그런 날이 생기는 건 누가 특별히 따뜻해서가 아니라 내가 유난히 사막 같아서겠구나라는 처음 해보는 발견.
또 상처받을까 실망할까. 지레 겁먹고 먼저 메말랐더니 내가 사막화 된 탓에, 아무것 아닌 바깥 작은 움직임에도 내 전체가 울렁이는 것.
아닌 척 꼿꼿한 척, 어깨에 눈에 힘주고 하루하루 있었다. 버거워도 괜찮았다. 그 정도는 누구의 지게에나 다 실려져 있을 일이라 생각했으니, 유난 떨기 싫었다.
제법 잘해오고 있다 어깨 토닥였으나 태생이 마음 삭막하질 못 하니, 사막인 척 할 재간이 되는 그릇이 아니었다. 그러니 내게 닿는 한 방울 촉촉함에 대책 없이 물 들고, 스치는 한 줄기 바람이 사정없이 내 안에 스미는데도 손 못 쓰고 눈만 꿈뻑꿈뻑이지.
우야꼬. 온통의 사람 사이가 꽃밭일 순 없을 노릇인데. 그걸 이다지도 잘 아는 나는, 왜 거기에 잡초 한 가닥이라도 자랄 때면 그 무심함이 이리도 사무친단 말인가.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지만 그 판이 꽃밭보다 곱질 않아 그런 거려니. 우리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그저 우리가 놓인 곳이 정글보다 거칠고 사납고 예측이 안 되는, 모난 곳이라 그럴 뿐이려니. 위로해 본다.
아울러 그럼에도 또 한 번, 이거 몰래카메라인가 싶어지는 날이 다시 온다면, 그때는 거기에 성심성의껏 몰입하고 말리라는 꼭 지키고픈 약속도 해본다. 그게 설령 따뜻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여 내 기대가 또 헛된 마음이 돼버릴지라도. 내가 가꾸는 꽃밭에는 내가 싹 틔우는 잡초는 나지 않도록, 열심히 믿고 열심히 기대하면서 그 모든 것을 거름으로 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