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10:00. 또 변태 같이 회사다. 퇴근하자며 컴퓨터를 끄려했던 게 홀린 듯 여기로 왔으니. 누가 보면 엄청난 구독자 수에 파급력을 가진, 이름난 채널인 줄 알겠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정확히 일치하다.
나의 브런치는 어나더레벨의 안목을 가진 55분의 선택을 받은 걸로 모자라, 관심까지 받고 있는. 아는 사람만 아는, 간판 없는 맛집 같은 그런 곳이니까. 현생이 대환장파티라 정신 없어도, 여길 잊으려야 잊을 수 없음이다.
오늘은 사회적 미라클 모닝인 당번 근무날. 새벽 6시 8분에 출근 도장을 찍었으니 회사에 열다섯 시간 넘게 있는 중인데, 그런 거 치곤 평온하다. 눈이 몹시 아파 튀어나올 거 같은 것만 빼면 그런대로 버틸만 한 정도.
그래도 그렇지. 집에 갔어도 골백번 갔어야 할 야심한 시간에. 집 아닌 여기를 먼저? 왜? 좀처럼 이해되지 않을 일. 허나 읽는 이로 하여금 그 되지 않을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의 일.
하여 말하자면, 이 야밤에 귀가를 다 미루게 하며 나를 움직인 데에는, 열세 시간 전 내게 온 몇몇의 아침 풍경이 한 몫했다.
누구나 그렇듯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로, 오늘도 도토리들의 키를 재면 그만일 아침에, 생각도 않은 촉촉한 낭만을 두 가지나 경험했으니. 이 귀한 것을 날을 넘겨 기록한다는 건, 내 애물단지이자 내 것 중에 최고라 여기는 나의 감수성에게 두 눈 뜨고 못 할 짓 같아, 서둘러 그것만 후다닥 부리나케 적으려 한다.
첫 번째 낭만은 직접 경험으로. 새벽 당번 근무가 끝나고 아침 8시 20분부터 정시 출근시간인 9시까지 약 40분 동안 주어지는 자유 아닌 자유 시간 동안 생긴 일.
잠깐 이래저래 자리를 비웠다 왔는데 맙소사. 오늘 나의 미라클 모닝의 동지가 전하는 따뜻한 아침 인사가 책상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사람은 밥을 같이 먹으면서 정이 든다는데. 회사서 밥을 잘 먹지 않는 내겐 이른 아침에 만나 늦은 저녁 헤어지는, 당번 전쟁을 치르며 생기는 전우애가 밥정에 버금가니. 내게 한 번 아군은 영원한 아군!
사람 몸에 꼭 필요하다는 그 소금. 내 당분간 필요한 나트륨은 이 아침의 소금빵으로 다 채웠나니. 그 이름부터 대놓고 소금빵인 친구에게 꿀이 좔좔 흐르는 것 같았던 것은 내 기분 탓이었겠지? 아메리카노가 시럽 다섯 번 펌핑한 라떼 같고 그랬는데 이것도 커피의 잘못은 아닐 거야?
피곤해 죽겠다가도 당장 울 것 같다가도 다시 자세 고쳐 앉게 되고, 한 번 피식 웃을 수 있는 건 내가 사랑하는 이런 낭만이 이렇게 불쑥, 내게 와주기 때문이다. 낭만이 밥 먹여주냐 묻는다면, 사람 너무 띄엄띄엄 보신 거다. 낭만이 무슨 수로 밥을 먹여주겠는가. 밥은 손이 먹여주는 거지. 근데 뭐 밥 좀 안 먹여주면 어때. 낭만 덕에 내 하루가 몇 초 따땃하면 내겐 그게 포만감인 것을.
두 번째 낭만은 간접 경험으로, 회사 언니의 출근길에서 비롯됐다. 언니들과의 톡방에 약간은 읭? 스러운 사진 한 장이 툭 올라왔으니. 언니 손에 들린 커피 한 잔이었다.
사진도 사진인데 사진 뒤에 이어진 언니의 한 마디는 더 읭? 스러웠으니. 커피가 택시 어르신의 서비스란다.
회사에 도착한 언니에게 들은 부연은 이렇다. 언니는 매일 고정적으로 택시를 이용하는 구간이 있는데, 매일 거의 동시간대에 똑같은 승차 지점에서 택시를 타다 보니 뵀던 기사 어르신들의 차를 타는 경우가 아주 많단다. 해서 언니도 간식을 나누고, 어르신도 안부를 전하는 정도의 사이가 됐달까?
오늘은 그 기사님 중 한 분이 본인 드시려고 준비한 보온병의 뜨신 물과 믹스커피를 손수 타셔서, 언니에게 달달한 모닝커피를 주신 것이다.
세상에. 저 커피는 내가 안 마셔봤어도 무슨 맛인지 알 것 같다. 보나마나 너무 달아서 입 안이 다 녹아내릴 듯한 느낌이었을 게 뻔하다. 아마 저게 믹스커피가 아니라 에스프레소 샷 추가한 거였더라도 저건 그냥 무조건 달 수밖에 없는 커피다. 마치 프림 하나에 설탕 와르르르르르르. 이런 느낌?
팍팍. 각박. 야박. 사람이 사람에게 절망인 날들의 연속인 듯 하지만, 나도 누군가 때문에 절망하고 내게도 절망인 누군가가 있고 어느 이에겐 내가 절망이고 하겠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해도, 그래도 나는 아직은 믿는다. 굳건히. 고집스레. 사람은 사람에게 희망이라고. 애초에 절망이 될 수 있는 것도 희망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안 그런 척, 최대한 사회화된 F로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본투비 사람 좋아하는, 감성에 속수무책 당해주는 캐릭. 나의 본캐는 오늘도 여기 숨어 이리 열일 중이다.
길어졌다. 그럼 나는 있을지 모를 내일의 낭만을 기대해 보며 저 세상 몰골로 퇴근한다. 오늘도 애썼어 나 자신.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너 내일은 더 애써야 할 거 같아. 화이팅 해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