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얘기는 그 사람을 믿으니까 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 잃을 각오하고 하는 거지.
고백도 비슷한 결. 혹시 모르는 결실을 기대하는 것이라기보단, 이제 나의 고민을 상대에게 넘기는 일종의 책임 전가이자, 탈피.
고백 다음엔 뭐가 있을까. 질투? 질투는 나의 힘? 아니 그건 영화고. 현실에서 질투는 힘 아닌 흠. 더 해 보자면 존버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루틴화된 호구가 되는 공식. 불의를 보고 못 참으면 머지 않아 되는 건 히어로보단 불우이웃? 애석하지만 그런 경우가 많고 그렇게 되는 것이 시간문제인 곳이, 바로 이 땅. 참 빌어먹을.
신신애 아줌마 말하시길 세상은 요지경 이랬는데, 아주머니 요지경이 아닌 거 같아요 대체 사는 게 왜 이 지경이죠?
주위는 별난 것 없는 무채색인데. 그것도 사실 대단하게 고마운 요즘인데. 글쎄 브라운관? 액정? 모니터? 더럽게 얇으면서 드럽게 비싼 유리 하나 끼우고 보는 세상은 어찌나 총천연색 지랄발광인지, 한숨이 콸콸.
원래도 무던한 이 몸은 세상의 그 경박한 변화무쌍함에 샘이 난다기보단 되려 경이로우니. 보고 있자면 참 저렇게도 열심히 산다 싶어, 경외심마저 든다.
아무렴. 각자 영역이 있는 거겠지. 나는 그냥 까맣고 잿빛이고 하얗고 그런 덤덤한 색깔 입히면서 살 깜냥인 거고. 별의 별색은 다른 누구들의 몫인 것으로.
오늘 새삼 사람이 진짜 너무 버거웠다. 누구든 이해해보려하는 나의 회로 가동이 멈췄다.
야. 무례한 너. 너는 나의 오늘에 두고 이제 그만 꺼내련다. 가치가 없다. 내게 범한 무례를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곱절로 돌려받으라는, 명료한 저주를 내린다.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