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에는 쏘주 2/3 함유
두서 없고 요지 없고 행간 없고
내일 이불킥은 없을 리가…
그럼에도 나와 기록은 소중하니까요
내 브런치의 시작은 전 연애 이별기다. 엑스와의 헤어짐은 웬 아주머니의 선 넘는 반대로 징글 치열한 대장정이었다. 솔직히는 끝내려 썼다기보단 보여주려고 썼던 글이었으니 일종의 회유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이걸 읽고도 헤어져? 하는 거.
가수 백지영 님은 총을 맞은 것처럼의 심정이었다면, 당시 나는 총을 몇 번 맞고도 남았을 수준의 멘탈. 그럼에도 꽤 잘존버하여 지인들의 경외심을 사기 이르렀지만, 나도 귀한 집 딸인데 더는 부모 가슴에 대못 박을 수는 없어 결국 헤어짐의 대서사를 완성 당해주었다.
지금 남자친구를 만난 건 그 이별 길목에서다.
쓰는 타령 하는 사람은 알다시피, 돼먹지 못한 이유로 결혼은 반대, 이별은 종용 당한 후유증이란, 돈 주고도 못 살 글감을 죽을 때까지, 내 기억과 감성이 허락하는 데까지 무제한 제공 받은 것과 마찬가지.
그런 특 에이급 글감을 썩혀둘 위인이 아닌 나는, 새로 사귄 친구와의 목하열애 전선에 관계 없이 내가 써제기고픈 욕구에 따라 브런치에 이전 이별의 잔상을 열심히도 게워냈다.
그러던 어느 하루, 내가 올린 글에 하필이면 나 모를 때에 알림이 떴던가 뭔가 하는, 얄궂은 타이밍의 일치로 남자친구가 내 브런치 족적을 보기에 이르렀으니. 어쩜 이걸 전화위복이라 해야할까. 그 일이 내겐 이 친구 좋은 사람이네 싶었던 계기가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인생은 참.
사실 남친의 내 브런치 잠입?을 그 즉시에는 알지 못했다. 이튿날인가 새벽, 남친으로부터 와있던. 이러 저러하다 보게 되었고 고민 끝에 궁금함을 못 이기고 읽는 우를 범했다. 미안하다는 대양심고백 메시지를 읽임으로써 비로소 사태를 인지. 내가 쓴 글 잘 안 읽는 특이종인 내가, 해묵은 내 이별기를 정독했다. 글쓴이 입장에서가 아니라 타인, 엄밀히는 새로 만나는 친구의 눈으로 다시 읽어본 것이다. 응. 그건 못 할 짓이었다.
이후 누구 할 거 없이 거기에 관해선 서로 일절 가타부타 말을 않다가. 어느 한날. 먼저 말을 뗀 건 나였으니. 사뭇 궁금했다.
어땠어 읽으니? 영 깨림칙한 얘기들 일텐데. 그래도 미안하진 않아. 만나기 전 얘기고 그 과정이 있어서 지금 내가 있는 거니까. 근데 그걸 읽은 네 맘은 내가 헤아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라고 떠들었으니 얼마나 꼴깞인가.
나의 꼴값에 돌아온 남친의 말은 심플했다. 좋았단다. 잘 읽었단다. 네가 되게 힘들었겠다 생각했고 잘 이겨내려고 무던히 애쓴 게 보여 대견하더라나. 그리곤 이어진 한마디에 심장이 여기 쿵 저기 쿵 하며 떨어졌다. 네가 만났던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인 것 같더라.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는 말이었다.
내가 지금 만나는 이 친구는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리다. 밥을 분유를 이유식을 먹어도 내가 응? 그런데 어떻게 저런 리뷰가 가능한 걸까. 인생 2회차? 아님 연상 20회차?
내 일대기 한 영역을 그대로 존중 받는다는 건, 실로 엄청난 위안과 격려를 통째로 내 인생에 받친다는 거. 좋았지만 나빴던 사람 간 자리에, 그보다 좋은 사람이 왔음은 그렇게 자명해졌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은, 세상 장르도 없고 요지도 없는 이런 글을 굳이 왜 쓰냐하면 이거슨 일종의 메모. 스케치랄까. 난 다 계산이 있는, 전략적인 여자란 말씀. 쓰고 싶은 글이 생겼는데 그 대업을 위해선 오늘의 이 감상이 필요해 잠을 청하기 전 서둘러 남겨야 했음이다. 완성도는 꽝이지만, 취중브런치가 나는 좋다. 물론 내일은 이불킥이겠지.
이불킥 돌려차기로 하기 전에 이만 마치며. 내가 만나는 친구에게 이 혈중알콜농도를 빌어 말하고 싶다.
지금 다 못 이뤘어도 너는 기어이, 기꺼이 잘 되겠다고. 모든 꽃이 똑같이, 다 일찍 피진 않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만물 모두 그 때가 다르다. 그러니 걱정 할 거 없는 데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네가 늦게 피면? 내가 있다. 내가 너보다 먼저 필게.
만개하지 못 했더라도 그런 하루라 더 고생했어 오늘 역시. 쪼금이라도 싹 틔우느라 피우느라; 또 지느라.
응. 취했으면 곱게 잘게. 물론 안 볼 거 알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