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공포증인데 비행기를 탄다고요?

익스큐즈미, 신혼여행 왔습니다 3

by 씀씀


감정과 느낌은 강도가 최대치이거나 극한의 상황에 놓일 경우, 무용해지곤 한다.


예를 들자면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데 신기하게도 차분해진다거나 너어무 슬플 때는 도리어 눈물이 나지 않는 것처럼, 응당 표출돼야 할 감각, 감정이 환경에 잠식되어 체화도 체감도 되지 않는 현상들.


나는 그 범주에 고소공포증을 포함시킨다.


나는 고소공포증 보유자. 호소자. 고소공포증 검사 같은 게 있다면, 자신 있다. 상위 그룹에 쏙 들어갈 고득점을 쉽게 획득할 거란 자신.


아주 옛날, 그네가 시작이었다. 일정 높이에 이르면 무섭다 눈물바람과 함께 두 다리는 공중에서 허우적. 그 오두방정 끝에 착지한 육지에서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들은 설명이란 모두 모함이었으니. 아니 내겐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상공이던 곳이, 남들 눈엔 잘 쳐줘야 내 어깨선 정도 되는 높이였다니 말이 돼?


응. 말이 되었다. 그때 그네로 자각한 고소공포증은, 여럿에겐 즐기는 시설이라는 것들에서 발현됐다. 눈썰매, 리프트, 관람차, 후룸라이드 바이킹 등등등. 위에서 밑으로 그려지는 각종 포물선과 직선을 몸으로 고스란히 체험하는 일에 있어 나는 세상 그런 모지리가 없었으니. 중력 껌딱지가 되어 이 나이까지 먹었다.


바야흐로 인간이 우주엘 가는 세상. 더 높이 더 높이. 하늘에 더 가까이 가까이. 짓고 오르고 열풍이니 나를 몸서리치게 하는 장소와 기구는 무수히도 늘어났다.


한 번은 친구가 묻길. 높은 게 무섭다는 게 무슨 느낌이냔다. 우리 고소공포증 환우들을 대표해 이 병의 우라질 느낌을 친구에게 꼭 동기화 시키겠단 쓸 데 없이 비장한 사명감에 몰입된 나는, 고소공포를 적나라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어휘력이란 이 제 3의 감각을 말하기엔 너무 보통의 언어. 하여 도리없이 세상 무책임한 표현을 들이밀었으니, '아무튼 싫다'는 말이었다.


조금 부연해보면, 그러니까 그건 막 심장이 시리고 간지럽고 배꼽 근처도 시큰한 게. 불쾌함이라는 세로로 긴 감각이 내 몸 한가운데를 길게, 정확히 관통하는 그런 건데. 이걸 신경계가 직접 브리핑해 주는 느낌으로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만행까지 보탰다.


나는 꿈이 무섭다. 형체도 없는 꿈에서 떨어지는 느낌이 어떻게 그리 끔찍한 건지. 꿈에서 그런 순간을 경험할 때면 다시 잠도 청하지 않을 만큼 무섭다. 위에 대한,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것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세상 강직한 것. 공포는 사람을 벌벌 떨게 만들지 않는다 그대로 굳게 맏들지.


이런 높이 찌질이에게 높이 최종 보스란, 당연 비행기였다. 그건 내게 못 먹는 감. 나를 제외한 인류를 위한 발명품쯤이었으니까. 가늠도 안 될 수준으로 높은 저기 하늘 어딘가를 나는 기계를 탄다고? 가상의 공포를 왜 굳이 현실의 것으로 만든담?


허나 인생이란 얄궂으니. 내가 그걸 탔으며, 더욱이 천하의 고소공포증이 정작 천상의 비행기 안에서는 세상 조용. 무력화된다는 걸 비교적 일찍, 쉽게 알게 되고 말았으니.


고등학교 2학년. 제주도로 수학여행 갈 때야 처음 탄 비행기는 다른 차원에서 공포였다. 이게 왜? 뭐? 어째서 가슴이며 배가 안 시큰하고 안 간지럽고 불쾌하질 않아? 아직 땅이야? 이건 안 날아? 기어가는 비행기?


그때 알았다. 병도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는구나. 떨어지면 어떡하지. 떨어질 것 같다. 하는 불안함도 엔간히 높아야 엄습하고 상황이 상황이어야 자각이 되는 거지. 비행기에서 떨어진다? 그건 극히 희박한 확률.


고로 스스로 아는 것이다. 만에 하나 여기서 떨어진다면 그건 팔자라고. 떨어지면 그다음 단계. '어떡하지?'가 비행기에서는 성립이 안 되기 때문에. 뭘 어떡해 어떡하긴. 어떡할 뭐가 없기 때문에 고소공포네 하는 증상이 발현되기 어렵고 말고.


헌데 또 모르지. 비행기 밑바닥이 투명이면 어떨지. 물론 그렇단들 발아래가 또 순 하얀 구름으로 뒤덮여 있으니 현실 감각은 한 겹 더 제로일 테지만. 그럼 아예 비행기 밑바닥에 구름까지 투명해, 땅의 모든 것이 개미 콧구멍만 하게라도 보인다면 조금 불안하려나.


신혼여행에서 열 번의 비행을 하며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라이트 형제는 사람이 맞아? 였다.


인천을 떠나 다시 인천으로 오기까지, 내게 있는 고소공포증이 높은 곳이 아닌 법원이나 경찰서에 어울리는 병이었나? 헛갈릴 정도로 불안함 없이 비행기를 탄 사람으로서 신랑에게 말하길


“라이트 형제는 노벨의학상을 탔어도 됐겠어. 아니 고소공포증이 그 높다는 비행기에서 없잖아! 병을 고쳐줬어! 안 그래?"


진지한 물음표였다. 그 친구는 또 시작이네 하는 표정이었지만.


이건 신랑한텐 안 한 말인데. 라이트 형제가 노벨의학상에는 어찌 비빌 구석이 있더라도, 노벨평화상은 힘들었을 것 같다. 경제력 이슈로 이코노미 밖에 탈 수 없는 나의 평가로선 그렇다. 왜냐하면 이너‘피스’가 산산조각 나기 때문이다.


물론, 달콤 쌉싸름했던 허니문 끝에 복귀해 출근한 지 2일 차인 지금은, 이너피스고 뭐고 붕괴와 파괴를 갈망한다. 내가 적임자다. 깁미 더 산산조각.


어쩐지 나의 이 호기로운 고백을 세상에선 이리 부를 것 같으니. 구성애 선생님을 소환하는 그 표현. 소리 없는 아우성.


일을 해야 또 휴가도 쓰고 여행도 갈 수 있겠지. 근데 그런 거면 이건 안 될까. 여행 안 가고 휴가도 안 쓸 테니 일 안 하기. 천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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