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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숙녀 Feb 04. 2022

젊은 날의 열병? 아니 염병!

                                                                                                                                          이건 한 여자의 일기고,

이번 편은 그 일기의 프롤로그다.


일기의  이름은 Hold Miss Diary



미스 앞에 붙은 게 올드도 골드도 아닌 '홀드'라는 것이 매력이자 한계인 이야기랄까.


그 시작은 이렇다.


밀레니얼 세대 화려하게 등장해, 청춘의 한창에서 '삼포세대'로 불렸던 이들.


그중에서도 서울 아시안게임 말곤 딱히 떠오르는 것 없는 해에 태어나, 자라는 내내 특정 세대 어디도 속한 적 없고 그렇게 불리지도 못 했던.


그러다 하필이면 삶의 노른자위라 할 만한 시기에, 인생의 빅쓰리 이벤트인 '연애, 결혼, 출산'을 패키지로 '포기당하게' 된 세상 억울한 나이.


바로, 올해부로 본격 30대 후반에 진입한 서른일곱 되시겠다.




모든 나이가 다 서러운 구석이 있는 거지, 어디 지금 서른일곱짜리들만 유별나겠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내 보기엔 좀 달랐다.


줄곧 시대와 세대의 주인공이라기보단 주변인 같기만 하던 그 신세가 볼수록 짠하고 생각할수록 가여웠달까.


그래서 맘먹었다.

그래! 까짓거 내가 한 번 그 나이대의 (거창하게는) 일과 사랑. (편하게는) 하루하루 어떻게 늙어가는지를 가능한 한 적나라하고 생동감 터지게 적어봐야겠다!고 말이다.


왜냐고? 왜겠는가.

그야 당연히 내가 그 86년 범띠니까 그렇지.


비운의 1986년생:
나름 꾀 안 부리고 열심히 살았지만
세대로는 눈에 띄지 못 함
ex)
출판계는
90년대생 동생들을 주목했고
영화계는
82년생 지영언니를 택했으며
방송계는
88, 94, 97년생에게 응답했다


30대 후반으로 산 지 이제 딱 한 달.


겨우 나이 뒷자리 하나 바뀌었을 뿐이지만 30대 중반과 후반의 간극이란, 흡사 해발 1천 미터와 2천 미터의 기압차만큼이나 어마 무시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머리로 가슴으로 30대 후반을 시뮬레이션한 게 몇 번이고 그 나이대의 일과 사랑을 온갖 미디어로 간접 경험한 게 얼만데, 그 모든 게 씨알이 하나도 안 먹힌다니. 이건 마치 거사를 앞두고 신경 써서 챙겨 먹은 청심환 약빨이 하나도 안 드는 느낌?


남의 인생에서 구경만 하던 그것과 내 꺼에서 직접 맞는 30대 후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무엇 때문일까? 각 잡고 장고에 들어갈... 것도 없었다. 애초에 연습문제가 잘못됐었기 때문. 이를테면 여태껏 문과생이 이과생 모의고사 시험지를 겁나게 풀다가 본고사를 보러 들어간 느낌 같은 거였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가 보면서 웃고 울고 욕도 심쿵도 같이 해온 드라마와 영화 속 30대 후반의 일상이란, 나의 현실에선 찾기 힘든 것들.


그러니까 반드시 브라운관이고 스크린이어야만 가능한, 캐릭터고 서사고 현실 함유량은 절반도 안 되면서 현실이라고 어필하동화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보통의 일상이랍시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이 또래 남녀의 이 무렵 인생사를 들여다보자면,

1. 찐 현실에선 몇 다리가 아니라
오징어 다리만큼은 건너야 한 명 있을 법한
전문직, 금수저, 고스펙의 30대들이
출근 지하철 옆자리의 행인 1처럼
흔하고 쉽고 뻔하게 등장하고


2.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던 신데렐라는
이젠 신물과 구태의 아이콘이 되어
더는 나오진 않는다지만,
대신 스스로 충분히 공주처럼 살 수 있는
대기업 팀장, 전도유망 사업가,
집안 빵빵하고 스펙 짱짱하며
자차에 자가까지 있는 여자들이
우리네 모습이라며
뻔뻔하게 노크하기 일쑤다


이건 무슨, 집에서 망나니처럼 머리 질끈 올려 묶고 목 늘어난 티셔츠만 입으면 다 현실 고증 100%인 줄 아니, 답있을 수가 있나. 거기서 나오는 현실들이 대다수 사람들한텐 다 로망이고 픽션인 걸 왜 몰라.


아니 세상 어느 평범한 여자가 바에 가서 혼자 위스키를 마셔? 아 그래 마실 수 있지. 근데 일단 내 주변엔 한 명도 없다는 게 중요하고, 찐 평범녀는 그럴 돈도 용기도 없다는 게 팩트란 거다. 바텐더가 내주는 술보단 아르바이트생에게 받는 만원에 4캔 하는 편의점 캔맥주(그마저도 이제 올라서 만천 원)가 더 자연스럽고, 분위기 좀 내자 싶으면 마트 가서 장 봐오는 와인 정도여야 보기 덜 불편하지.




타고난 운동 부족으로 근육이라곤 없는 나에 대한 응원일까? 일상은 정말이지 단백질 그 자체. 닭가슴살처럼 퍽퍽하고 텁텁하게 살던 나는, 근래 부쩍 공감하고 위로받고 싶었다. 그래서 또래 이야기라면 그게 뭐건 눈 벌게져 찾았더랬다.


그랬는데 그 끝은 늘 위화감이거나 내 아쉬운 구석만 확인하는 악순환. 아... 이래선 안 되겠구나. 개뿔 가진 건 없지만 그렇다고 보잘것없지 않은 내가 는 수 밖에.


특별한 것도 특출난 것도 없고, 집도 절도 없는 이 세상 평범한 30대 후반의 여자가 정글 같은 서울 바닥에서 어떻게 늙어가는지,  대체 이 보통의 여자와 이 여자가 만나는 사람들은 무엇에 웃고 울고, 뭐가 좋다고 살다가 뭐 때문에 살기 싫어지는지.


이제 나는 눈 질끈 감고 조금 민망할 수도 있는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쓰려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산 지난 36년의 기록 남아있지 않은 1986년생이고

노처녀, 노화, 노산이란 인생의 고민을 안게 된 서른 후반 여자이자,

쓰는 일에 진심이어야 하는 브런치 작가니까.


[다음 편부터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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