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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숙녀 Feb 24. 2022

어느 날 갑자기 노화가 노크를 해왔다


그러니까 그건,

기억하기로는 작년. 하반기 어느 날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어 그래요. 치료는 잘 받았고?"     

"네, 과장님"         

 

과장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와 앉기 무섭게, 어깨 뒤로부터 의자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백이면 백, 나보다 나이는 어리고 입직은 빠른 A주무관이 오고 있다는 것이리라. 자 어디 봐볼까? 쓰리 투 원.

               

"어디?"     


그럼 그렇지 역시나였다.


"목 때문에 한의원에요. 한 시간 외출 달고"     

"(끄덕끄덕) 근데 얼굴은 왜 그래요?"               


아 왜... 이건 또 무슨 시비인데. 얼굴 예쁜 거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새삼스레 질투라도 하는 거야?


휴우... 피해 준 것도 없이 시기 질투 참견을 받아야 하니, 이럴 때 보면 예쁜 것도 참 성가신 일이라는 황당무계한 정신승리가 이뤄지려던 찰나! 생각이 났다.               


"아! 혹시 자국 났어요? 침 맞느라 엎드려 있었더니"


"주무관님도 이제 진짜 서른 중반이긴 하신가 보다. 고거 엎드려 있었다고 베갯자국이 다 남네"


"서른 중반이긴 하신가 보다.

고거 엎드려 있었다고

베갯자국이 다 남네"


"서른 중반...

고거 엎드려...

베갯자국..."



으아아아아악!! 저걸 진짜.....


침착하자 손모아... 하마터면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릴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빛의 속도로 책상 맨 윗 서랍장에 넣어둔 '영혼 잃은 웃음(회사용)'을 꺼내 장착했다.


공무원 짬밥은 너가 더 먹었을지 몰라도 내가 그 기 세다는 민간에서 구른 게 몇 년 줄 아니? 니가 아주 사람을 띄엄띄엄 봤나본데 이거 왜 이러셔.


"그쵸? 말도 마요. 진짜 하루하루가 달라요. 근데 신기한 건 뭐냐면 노화가 피부에만 오는 게 아닌 거 같단 말이에요? 이거 아무래도 속에도 같이 오는 거 같아요"     

"왜?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무말을 들으면 그렇게 소화가 안 돼요. 종일 더부룩한 게 계속 올라오고. 확실히 달라. 복이 너무 더뎌요"

"아이~ 에이~ 오해하지 마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끼리?! 얼른 일 봐요 이따 커피나 한 잔 하자구요"


아오 저저저!! 지 할 말만 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A주무관의 바퀴 구르는 소리가 어찌나 얄미운지.


그래. 너 아직 30대 초반이라 이거지? 두고 보자. 내가 너 때문이라도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거고? 너의 늙음 하나하나 주옥같은 말들로 후벼 파줄 거고? 응? 딱 기다려! 란 의미없는 으르렁을 하며, 거울에 비춰본 내 왼쪽 뺨은... 곰보빵 그 자체였다.


채 30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근데 겨우 그거 엎드려 있었다고 얼굴이 이렇게 된다고? 안 그래도 요즘 자고 일어나면 얼굴에 남은 베갯자국이 골치였던 터라, 아까 한의원에서 눕기 전에 보들보들 티슈를 베개 위에 까는 치밀함까지 보였는데 이 무슨. 아 물론 그게 엠보싱 티슈인 건 내 계산엔 없던 일이긴 했다.


별 수 있나. 시간에 맡기는 수밖에. 퇴근 전까진 없어지겠지 뭐. 아니다 안 없어져도 되겠다 참. 약속이 없... 후 인생 진짜.




인생사 얄궂은 거야 원투데이 일은 아니라지만 어찌 이리 예외가 없는지. 꼭 불행한테 배우기라도 한 것처럼 노화는 번에 몰려왔다.


어른들 말 틀린 거 없다더니. 숱한 조언과 당부를 내가 귓등으로도 안 들을 때면 꼭 마지막에 따라오던 한 마디.


"너도 나이 들어봐. 그럼 알 거야"

"그러다 훅 간다. 아닌 거 같지? 인생도 젊음도 한 방이"


라는 말이 가슴에 궁서체로 새겨지는 나날의 연속이었까.


아, 내 몸이 예전 같지 않구나 하는 걸 한 번 자각하고 나니 그 후론 매 순간이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본방 사수하는 느낌이었다.


현저히 떨어진 피부 탄력과 더딘 회복력은 노화의 인기척에 불과구나  만큼, 마치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찾은 다음 무대는 네 몸이야! 는 것처럼, 노화의 려한 퍼포먼스는 쉬지 않고 이어졌. 하루는 얼굴, 하루는 머리, 하루는 관절에서. 24시간 올타임으로.


그리고, 그 연구결과를  건 그때였다. 

인간은 만 34, 만 60, 만 78세 딱 세 번 늙는다는, 저명한 과학 학술지 '네이처 매디슨'에 발표된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진의 논문 본 말이다.(아 물론! 영어로 쓰인 논문 원문이나 위 학술지 봤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나의 사랑 한로 기사화된 것을 봤음)


그러니까 무슨 소린가 하면 인간의 노화란 게 정기 적금처럼 꼬박꼬박, 꾸준히 ing인 것이 아니라 명절 보너스처럼 특정 시기에 빡! 하고 이벤트인양 찾아온다는 것.  평생 동안 세 번 씨-게 늙는다는 말이었.


... 실로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 글의 시작 작년 하반기 어느 날... 내 나이 서른여섯, 그러니까 만으로 생일이 안 지난 이유로 서른 일 때였으니까... 말이다.


[다음 편에 더 늙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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