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소주를 마시고 남자 친구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by 씀씀

[전 편에서 이어짐]


| 우리 사회에는 몇 가지 불문율이 있다. 남의 집 앞 택배는 가져가지 않는다거나 영화관 등에서 통화는 삼가는 등의. 모두의 암묵적 동의 하에 정해진 규칙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그래서인지 어길 경우 마땅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욕먹기 십상인 것을 꼽는다면 그건 단연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다'일 터.


가족이 그렇다. 동서고금 예외가 없을 만큼 파워가 어마 무시하다. 가족을 건드릴 바에야 차라리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데의 그 개를 건드리고, 손 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봉선화를 건드리는 게 낫지, 가족은 아묻따 돈터치!


물론 거기엔 가정사도 포함된다 보는데 그렇다는 애가 지금, 다른 사람도 아닌 남자 친구의 가정사를 건들다 못해 후벼 파는 이 말 안 되는 상황이 너무 순조롭게 진행 중인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쌩판 남에게도 지키는 그 규칙을 사랑하는 남자한테 깡그리 무시한다는 게 애석하지만, 나로서도 도리가 없다. 불문율을 먼저 깬 건 어머님이시니까. 딸만 둘이라 싫다며 가족을 나의 하자로 만든 어머님에게 고개 숙일 순 없지 않은가. 밟혔으니 꿈틀은 해줘야지. 아니 자매가 왜 죄야? 무슨 죄야? 오히려 그런 어머니를 둔 이 남자를 만나고? 사랑하고흡..? 한 내가 죄지.


바야흐로 눈눈이이와 기브 앤 테이크가 매너인 세상. 그러니 남자 친구 가정사를 향한 나의 터치도 문제 될 게 없는 거다. 오히려 정당방위랄까. 그래도 내가 상처 받았으니 너도 똑같이 아파야 한다는 계산은 죽어도 탑재가 안 되니까, 최소한으로 살짝만 하겠다.


종갓집인 남자 친구 큰집엔 아이가 없었다. 자연스레 장손 역할은 남자 친구 차지. 그러다 3년 전, 큰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남자 친구는 진짜베기 장손이 되었다. 큰집에 양자로 들어간 것. 오랜 시간 얘기만 해오던 일이 현실이 된 건 단순히 홀로 된 큰엄마를 위한 일만은 아니었단다. 장손의 역할과 의무란 친부모 호적에서도 얼마든 할 수 있는 것이었음에도, 호적을 바꾼 데에는 재산과 가풍 등등 여기엔 차마 다 옮기지 못할 몇몇 이유들이 더 있었다.




종갓집, 장손, 호적, 양자... 사귀기로 한 날, 이 얘길 듣곤 뭐야 이 남자... 혹시 외계인인가 싶었다. 설마 도민준? 그래 차라리 별에서 온 걸로 하자. 거긴 조선시대부터 쭉 산 거니까 저런 말 얼마든 할 수 있어. 전지현을 두고 나한테 왔다는 게 좀 많이 문제긴 한데... 어떻게든 이해해 볼 테니까 도민준이라고 해주라. 안 그럼 2020년 서울 한복판에서 그 도회적인 얼굴로 저런 단어를 그토록 자연스레 구사하는 걸 내가 무슨 수로 받아들이니.


얘기를 들은 친구들의 반응은 깔끔했다. "요즘 세상에 양자? 거기다 시어머니가 두 명... 때려치워"로 대동단결. 당연한 거였다. 결혼하면 시어머니에 시댁에, 종갓집이라 제사까지 따블인 연애를 대한민국 어느 여자가 응원할까.


하지만 주변의 축하쯤 노상관이었다. 이 세상 연애가 전부 축복 속에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시무룩할 필요가 없는 게 어차피 그들은 내 인생을 응원하는 거였으니까. 연애가 인생의 하위 개념이잖아? 고로 내 인생에 대한 응원은 곧 내 연애를 향한 것. 그 덕에 난 쏟아지는 격려를 등에 업고, 친구들 모두 자기였음 시작도 안 했다고 혀를 내두른 그 가시밭길 워킹을 해보겠다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것도 있는 힘껏. 아주 덥석!


3년 만의 연애. 핑크빛 아니기가 더 힘들었다. 심지어 계절도 봄인 데다, 일 년 열두 달 중 이름 예쁘기론 으뜸인 '춘'삼월이기까지 했으니, 이건 뭐 심장이 요동치지 않곤 못 배길 노릇의 나날이었다.


하지만 이쯤에서 어김없이 나와줘야 할 문장,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가 내게도 역시나 등장했다. 꿈같기를 한 달여쯤 됐을 때, 어른이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걘 안 돼"라며 나를 보이콧하셨기 때문. 남자 친구의 현 어머니이자 구 빅마마인 바로 그분이었다.


"본격 가시밭길에 진입하셨습니다"

"낙석 주의 구간입니다. 서행하세요"


잇츠 쇼타임이었다. 아무리 좋은 일 나쁜 일은 같이 온다지만 이 정도면 자웅동체 아닌가?


쉽지 않을 시댁을 염두하고 일단 go를 외친 연애가 비포장도로였다면, 남자 친구 어머님이 반대하는 연애란 한 걸음 떼기도 힘든 늪이고 뻘이었다. 반대와 동시에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걸 가져가셨기 때문.


세상만사 다 하고 싶은 연애 초기 커플에겐 시간이 금인 걸, 더욱이 청춘의 한창에서 조금 떨어져 만난 우리에겐 1분 1초가 금쪽같다는 걸 아셨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40대 남자와 30대 여자의 연애에 그 이름도 고전적이고 이질적인 '통금'이 등장할 순 없는 일이었다.


통금... 대학교 기숙사 살던 시절. 폐문 시간 5분 남기고 술집에서 헐레벌떡 나와, 하이힐 벗어 들고 맨발로 달리며 지켰던 그 통금을, 불혹의 남자 친구가 맡게 된 것. 어디 그뿐이랴. 남자 친구의 시련은 통금을 지켜 들어간 집에서도 이어졌으니, 기본 두 시간, 재수 없는 날엔 새벽 서너 시까지 나와 헤어지라는 큰엄마의 회유와 협박에 시달려 했다. 졸지에 신데렐라에 콩쥐 신세 된 남자 친구는 호박 마차도 두꺼비도 없이 그 시간을 오롯이 혼자 견뎠다.


남자 친구 다크서클이야 어떻든, 큰엄만 본인 생각에 이것들이 숨 막혀 더는 못 만나겠다 싶은 방법만 골라서 못 살게 구셨지만 우리도 짬이 있었다. 아무렴 백세시대에 인생 3분의 1을 산 바이브를 무시할 순 없지. 요것들 봐라? 싶으시게 지킬 건 칼같이 지키다가도 헤헤헿, 요건 모르셨죠? 대놓고 어긋나며 숨구멍을 찾았다.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만나지 말라니까 세상 애절한 거다. 그림자인양 붙어있어도 사이에 철망을 둔 것처럼 애틋했고 매번 데이트는 7월 7일 칠석인 듯 소중했으며, 종소리에 침 흘린다는 개는 가뿐히 이길 반응 속도로 남자 친구 목소리에 눈가가 촉촉해졌으니, 이건 뭐 로미오와 줄리엣이 우릴 위해 기도해주겠다고 땅에서 일어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절절한 로맨스였다.




고진감래요, 지성이면 이보영이 아니라 역시 감천인 걸까? 일주일에 하루, 외박의 자유를 얻어냈다. 물론 요일에 다음날 귀가 시간도 정해진 반쪽 짜리였으나 우리에겐 꼭 회사 유급휴가와 견줄 정도의 기쁨이었다.


여행 한 번 편히 못 가면서도 좋다는 우릴 보고 남들은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한 꺼풀 벗겨낸 속에선 저 나이에 저것도 연애라고 하냐며 손가락질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무렴 괜찮았다. 내께 아닌 거에 그 정도의 오지랖은 누구든 떠는 거니까. 내 연애가 나한테나 애달프지 남에겐 그저 가십일 뿐. 모름지기 내로남불은 인간 의지의 영역이 아닌 초자연적 현상이니 말이다.


허나 당사자라고 현타가 없던 것은 아니다. 하루는 정면 하루는 측면, 다양한 각도에서 현자 타임을 정통으로 맞았다. 내 나이가 열여덟이라 부모 보호 아래 입시 준비로 여념 없는 미성년자라면 온갖 눈치와 제약 투성인 이거야말로 때에 걸맞은 연애라겠지만, 씁쓸하게도 당시 내 춘추는... 첫사랑까지 갈 것도 없이 두세 번째 사랑에서 실패만 안 했어도 학부모가 됐을 나이였다. 그러니 주변의 우려들이란 내가 일찌감치 마스터했고, 온갖 경우의 수로 이미 시뮬레이션 돌려 본 익숙한 것이었다.


드물였지만 신박한 걱정도 있었다. '너 반대하는 그걸 너한테 다 말해?' 짧지만 오만 뜻이 담긴 말이었다. 그 남자 나이 어디로 먹었냐부터 뭐 좋은 일이라고 그걸 여자 친구한테 쪼르르 말하냐까지.


"자, 친구야? 그걸 왜 나한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 한 번 알아볼까? 처음엔 나도 몰랐지. 근데 내가 계속 모르면 오빠가 생활을 할 수가 없었어. 왜냐고? 나랑 헤어지고 들어가면 두어 시간 연락이 안돼. 내가 가만있었을까? 부재중 전화에 카톡에, 걱정부터 의심까지 장르도 다양하게 난리를 쳐놨는데 그게 다 큰엄마랑 얘기하느라 생긴 텀이었어. 그럼 난 대체 맨날 무슨 얘길 그렇게 하냐 묻겠지?"


"통금도 그래. 따박따박 똑같은 시간에 집에 가, 그 즘만 되면 전화통에 불이 나, 근데 또 그 전화는 꼭 나가서 받는다? 그리고 나갔다 하면 하세월이야. 그럼 난 그러겠지. 나랑 있기 싫은가. 급한 거 아님 나중에 받지. 나 혼자 두고 무슨 통활 그렇게 해? 큰엄마? 큰엄마는 집에서도 얘기하잖아? 듣기만 해도 지치는 이 사이클이 무한 반복인 거지. 그러니 무슨 수로 말을 안 할 수 있겠어. 언더스탠?"


이라고 이 연사 힘차게 외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일단 스킵. 어차피 내가 뭐라 해도 각자 판단할 부분이었다. 물론 나 하나 만나자고 남자 친구가 어떤 걸 견뎠는질 아는 나로선, 쥐뿔도 모르는 남들이 그를 평가한다는 게 억울했지만, 둘 연애에 사공 더 태워 뭐하겠는가. 그 노력 내가 높이 사면 되었노라. 남자 친구는 내게 최선을 다했고 큰엄마와의 싸움에서도 그랬다. 풍파에도 우리가 나날이 견고해질 수 있던 건 내 노력은 약간, 팔 할이 그의 피땀눈물 덕분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서사의 전개는 느닷없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이어지던 우리 연애는 별안간 끝났다. 어느 주말, 맛있게 점심도 먹고 광합성까지 한 사이좋은 오후에 난데없이 벌어진 이별이었다.


고3에겐 그래도 졸업식이 있고 눈앞 캄캄한 군인에겐 제대란 게 있지만, 반대당하는 연애는 믿고 비빌 껀덕지가 없었다. 마침내 결혼했다 보다는 역시나 헤어졌다가 어울렸고 우린 많이 지쳐있었다.


미래, 확신, 시간. 뭐 하나 쥔 거 없이 사랑 하나 갖고 버티기엔 '부모가 반대하는 연애 중'이란 타이틀로는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었던 올 1월, '결혼 언제 해? 하긴 해?라는 내 투정에 우린 홀연히 헤어졌다.


그리고 3월, 다시 만났다. 재회는 심플했다. 구구절절한 자기반성이나 고백도 불필요했다. 헤어져 산 두 달로 o.k.


"도저히 안 되겠어. 진흙탕이고 지옥불구덩이고 같이 가자 우리"


집 앞에 찾아온 남자 친구의 한 마디에 우주가 다시 내 편이었다. 그러니 이제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에게 모아지기만 하면 됐다.


"가서 얘기드리고 전화할게" 그 말은 우리가 다시 만난 그날, 남자 친구가 집을 나서며 한 말이었다.


단꿈에 젖었던 건 아니다. 연애도 싫다셨는데 결혼은 무슨. 더 혹독한 가시덤불일 게 뻔했다. 헌데 그러면서도 기대란 걸 했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우리가 잘 만났고 그렇게 사랑했고 그러다 결국 원하시는 대로 헤어졌으니까. 헤어진 두 달이 어땠는지 남자 친구의 지옥은 보셨을 테니까. 그러곤 어떤 지옥도 나와 함께면 천국일 것 같다며 다시 왔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한참을 더 사신 어른이고 어쨌건 그의 어머니라는 것에 기대를 걸었다. 젊은것들 안 쓰러운 맘에 어쩌면 노여움을 조금은 덜어내 주실 수도 있으리라.


야무진 꿈이었다. 돌아온 건 한 단계 더 레벨업 된 반대. 맨 처음 내 사주가 마음에 안 들어 싫다던 반대는, 이제 딸만 둘이라 안 된다는 기 막힌 이유까지 보태져 더욱 견고해졌다.


그냥 내가 싫으신 거였다. 어머, 오빠가 잘못 알았어요. 출생신고를 잘못해서 그건 제 사회적 생일이고 진짜는 이거예요! 라며 남자 친구와 가장 잘 맞는 생일로 바꾼다 해도, 저 사실 오빠 있어요. 너무 유명해서 부담 가지실까봐라며 없는 남자 형제를 만든대도 그땐 또 그게 맘에 안 든다며 드러누우실 분이었다.


겉으로는 헤어지고 속에선 한 번도 헤어지지 않은, 이상한 방식으로 시간이 흘렀다. 남자는 술만 마셨고 여자는 울며 악만 쓰던 사이, 큰엄만 남자 친구에게 차를 사줬다. 똥차 가고 벤츠 온다는 말을 여태껏 난, 나한테 벤츠가 오거나 내가 누군가의 벤츠가 되거나로만 해석했지. 그 벤츠가 나와 헤어진 남자에게 갈 거라곤 생각도 안 했거늘.


아니 내 포지션이 똥차였던 거야? 대체 내가 얼마나 싫으면 한두 푼도 아닌 차를 사줘? 기가 막히려던 찰나, 기막힘은 큰엄마 몫이 됐다. 남자 친구의 드림카가 바뀌었기 때문. "너도 알겠지만 그 차 내가 그렇게 타고 싶어 하던 거였는데, 조수석에 네가 안 탄다 생각하니 아무 의미가 없더라"는 한 마디에, 차를 받을 생각이었어? 제정신이냐며 미친년 널 뛰려던 내 급발진은 멈췄다.




그렇게 번호판에 잉크도 안 마른 새 차가 주차장 신세가 된 지 한 달을 넘겼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

"야!!!!!"


예의와 교양이라곤 1도 없는 싸납고 무식한 시작.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내 36년 인간관계를 통틀어 그런 경망스런 인품을 가진, 나를 그렇게 대할 사람은 유일했다.


"이게 어디 우리 가문을 망치려고. 내가 가만 안 둬. 헤어졌으면 내버려 두지 엇다대고 흔들어 흔들길. 너 오늘 끝을 보자"


똥이 무섭다고 피하진 않지 더러워서 피하지. 근데 그렇다고 피하기만 하면 안 되는 게, 그럼 걔가 평생 모르거든. 지가 똥인지 얼마나 더러운 지. 지가 잘해서가 아니라 다들 주구장창 피해줘서 지 앞길이 평화롭단 걸 알질 못 해. 그러니 한 번은 마주해야 해.


그걸 지금 내가 할 건데 사실 좀 무섭다? 피할 수 없음 즐기라는 그건 암만 봐도 못 할 것 같지만, 이대로 순순히 헤어져긴 싫으니까. 어쩌겠어 저런 사람을 엄마로 둔 남자를 내가 사랑한다는 데. 나도 할 건 해야지.


"네 어머님, 어디가 편하세요"


통화를 끊기 무섭게 눈물은 터졌고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야야 효정아 나 그래서 지금 나가야 하는데 왜 집에 우황청심환도 없고 왜 오늘 약국도 안 여는 일요일이야? 진짜 너무 무서워. 술? 잠깐만" 냉장고 구석에 있는 언제 사놨는지도 모를 소주가 구원 같았다.


급히 세 잔을 털어 넣고 집을 나왔다. 나 오늘 물이든 커피든 한 잔은 얼굴로 마시겠구나. 뭐가 됐건 상처 말고 경험이라 여기자며 정신승리를 하긴 개뿔... 소주 더 마시고 나올 걸 미친 듯 후회하며 카페에 도착했다.


[다음 편에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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