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처음이라면 너무도 생경했겠으나 이전 직장에서도 했던 것이기에 새삼스러울 것 없이 맞은, 이 회사에서의 첫 을지연습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
였으나, 그게 다가 아님을 알게 된 건 이듬해.
그 해 을지연습을 두고 내겐 없고, 남들에겐 있던 한 가지가 있었으니,그건 다름아닌 나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러니까 내게 없던 그 +a란 이를테면,빅모씨가 나를 두고 한 오만 얘기 중, 내가 비로소 처음 인지하게 된 나에 대한 첫 관심? 첫 걱정? 그러니까 a.k.a 첫, 험담?
"숙녀씨... 치마를 입었더라. 뭐야? 전쟁 중에 치마를 어떻게 입어? 놀랍다"
과연 브라보였다. 이제 와 회고하자면 첫 사랑보다 찌릿하고도 아찔한 순간이었지 않나싶다. 평범하지 않은 건 알았다지만 비범하다 비범하다 남 걱정도 저렇게 크리티컬 하게 하다니.
어찌나 신세계였는지 당시 나는 화도 나질 않았다. 그저 그 여름을 복기하느라 매우 분주했다. 을지훈련 지침에 복장에 관한 게 있었나? 어떤 사회적, 암묵적 합의가 된 사항이야? 아님 당연히 지켰어야 할 공중도덕?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억력 하난 팔팔한 지라 그 해 여름, 빅의 눈에는 선을 씨게 넘었다는 스커트가 너무도 또렷이 떠오르는 동시에, 출근길 셔틀에서 스친 이름 모르는 직원분 죄송합니다 스커트 입으신 게기억나고요. 점심시간 구내에서 지나친 스커트 입으셨던 네뎃의 동료 상사 분들, 치밍아웃 부탁드려도 될까요?
마지막으로 전국 관공서 여직원분들, 양심고백 어떠실까요. 9년 전 8월 을지연습 때. 치마 입으신 분, 진정 없으십니까? 저 하나 욕받이 하면 모두 평안하시겠습니까.
어폐가 있지만, '건강'한 사회생활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에 나는 이것들을 포함시킨다. 약간의 술과 최소한의 험담.
물론 술의 경우, 당연히 할 줄 아는 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과하면 독이어도 적당히 요령껏 활용한다면 술이야말로 관계에 기름칠을 해주는, 사회생활의 윤활유라고 보는 바라면,
험담의 이점은 그 반대에 있었다. 술이 어깨동무를 하게 만든다면, 험담은 조직 차원에선 되려 그 결속을 와해시키기에 바람직할 수는 없고 그저, '하는' 입장에서만 (당장) 긍정적이라는 것. 물론 방식은 옳지 못 하나, 쌓였던 것을 해소한다는 점에서도파민이 분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디선가 읽기로도 정신의학의 관점에서 역시 그렇다고 했다. 신뢰할 수 있는 이에게 하는 적당한 험담은 건강한 멘탈에 도움이 된다고.
하기사 그래봤자 이것도 다 입 발린 소리일 뿐. 막상 현실에서 그 뒷담화의 주인공이 된다면, 어찌 달가울 수 있겠냐마는. 이왕 인생 2회 차인양 원론적인 소리를 늘어놔 버린 거, 좀 더 해보자면 이렇게 떠들겠다.
씹힌다는 게 그렇게 분하고 악에 받칠 일도 아니라고. 험담처럼 만인에게 평등한 것도 없으니 누가 날 욕했다면 나도 똑같이 욕하면될 일.단체생활에 몸 담은 이상, 험담에서 자유롭다면 그것도 어불성설아니겠는가.
모두가 날 좋아하는 일은 동화에서도 없다.
그 예쁘고 착한신데렐라도 콩쥐도, 만인에게 사랑받진 못 한다. 직살나게 구박 받고 고생하고, 우리가 아는 인생의 99%를 당하기만 하다가, 이제 마지막에 겨우 딱 한 줄. 거기서 그제야 행복한 마당에,현생 사는 내가 무슨 수로좋은 말만 듣고 사랑만 받을까.
그러니 나는 더더욱 언제든 욕은 먹겠거니 생각도 각오도 했던 터라지만,아무렴... 그게 이런 식은 아니었다.
험담에도 격이 있지. 들을만한 욕을, 자극이든 배움이든 교훈을 주는 비판을, 해도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해야지. 그래야 기분이 그저 잠깐, 나쁘고 말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