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숙녀 Feb 07. 2024

숙녀의 버킷리스트. 정신과에 가다 6


나는 공무원이다. 하여 매년 8월.

우리 회사에서는 을지연습(훈련)을 한다.


을지연습 그것은, 우리나라는 휴전국기에 비상사태에 대비, 행정기관이 상호연계하여 전시대비계획의 실효성을... 이하 생략...


그러니까 각 기관마다 전시에 대비해,

8월에 나흘간 매뉴얼에 맞춰 안보체험, 비상소집 등 관련 훈련을 수행하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기론 그렇다)




지난 8월 그랬듯, 그 해 8월 역시 그다. 위에 열거한 것과 크게 다를 것 없 나흘.

물론 처음이 너무도 생경했겠으나 이전 직장에서도 했던 것이기에 새삼스러울 것 없이 맞, 이 회사에서의 첫 을지연습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


나, 가 아님을 알게 된  이듬해.


그 해 을지연습을 두고 내 없고, 남들에겐 있던 한 가지가 었으니, 그건 다름아닌 나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러니까 내게 없던 그 +a란 이를테면, 빅모씨가 나를 두고  오만 얘기 중, 내가 비로소 처음 인지하게 된 나에 대한 첫 관심? 첫 걱정? 그러니까 a.k.a 첫, 험담?


"숙녀씨... 치마를 입었더라. 뭐야? 전쟁 중에 치마를 어떻게 입어? 놀랍다"




과연 브라보. 이제 와 회고하자면 첫 사랑보다 찌릿고도 아찔한 순간이었지 않나 싶다. 평범하지 않은 건 알았다지만 비범하다 비범하다 남 걱정도 저렇게 크리티컬 하게 하다니.


어찌나 신세계였는지 당시 나는 화도 나질 않았다. 그저 그 여름을 복기하느 매우  분주했다. 을지훈련 지침에 복장에 관한 게 있었나? 어떤 사회적, 암묵적 합의가 된 사항이야? 아님 당연히 지켰어야 할 공중도덕?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억력 하난 팔팔한 지라 그 해 여름, 빅의 눈에는 선을 씨게 넘었다는 스커트가 너무도 또렷이 떠오르는 동시에, 출근길 셔틀에서 스친 이름 모르는 직원분 죄송합니다 스커트 입으신  기억나요. 점심시간 구내에서 지나친 커트 입으셨던 네뎃의 동료 상사 분들, 치밍아웃 부탁드려도 될까요?


마지막으로 전국 관공서 여직원분들, 양심고백 어떠실까요. 9년 전 8월 을지연습 때. 치마 입으신 분, 진정 없으십니까? 저 하나 욕받이 하면 모두 평안하시겠습니까.




어폐가 있지만, '건강'한 사회생활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 것 나는 이것들을 포함시킨다. 약간의 술과 최소한의 험담.


물론 술의 경우, 당연히 할 줄 아는 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과하면 독이어도 적당히 요령껏 활용한다면 술이야말로 관계에 기름칠을 해주는, 사회생활의 윤활유라고 보는 바면,


험담의 이점은 그 반대에 있다. 술이 어깨동무를 하게 만든다면, 험담은 조직 차원에선 되려 그 결속을 와해시키기에 바람직할 수는 없고 그저, '하는' 입장에서만 (당장) 긍정적이라는 것. 물론 방식은 옳지 못 하나, 쌓였던 것을 해소한다는 에서 도파민이 분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디선가 읽기정신의학 관점에서 역시 그렇다고 했다. 신뢰할 수 있는 이에게 하는 적당한 험담은 건강한 멘탈에 도움이 된다고.


하기사 그래봤자 이것도 다 입 발린 소리일 뿐. 막상 현실에서 그 뒷담화의 주인공이 된다면, 어찌 달가울 수 있겠냐마는. 이왕 인생 2회 차인양 원론적인 소 늘어놔 버린 거, 좀 더 해보면 이렇게 떠들겠다.


씹힌다는 게 그렇게 분하고 악에 받칠 일도 아니라고. 험담처럼 만인에게 평등한 것도 없으니 누가 날 욕했다면 나도 똑같이 욕하면 될 일. 단체생활에 몸 담은 이상, 험담에서 자유롭다면 그것도 어불성설 아니겠는가.


모두가 날 좋아하는 일은 동화에서도 없.

그 예쁘고 착한 신데렐라도 콩쥐도, 만인에게 사랑받진 못 한다. 직살나게 구박 받고 고생하고, 우리가 아는 인생의 99%를  당하기만 하다가, 이제 마지막에 겨우 딱 한 줄. 거기서 그제야 행복 마당에, 현생 사는 내가 무슨 수로 좋은 말만 듣고 사랑만 받을까.


그러니 나는 더더욱 언제든 욕은 먹겠거니 생각도 각오도 했던 터지만, 아무렴... 그게 이런 식은 아니었다.


험담에도 격이 있지. 들을만한 욕을, 자극이든 배움이든 교훈을 주는 비판을, 해도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해야지. 그래야 기분 그저 잠깐, 나고 말 수 있지.




-제가 8월 마지막 주에 치마를 입었거든요.

엥?

-아니 그걸로 엄청 욕먹었대요.

엥? 왜요?

-그때 을지훈련 주간이잖아요

엥? 그게 왜요?

-전쟁 중인데 치마 입었다고

엥? 뭔 소리예요?


그러니까요. 뭔 소리예요?

명 좀 해주시겠어요 빅모씨?


작가의 이전글 숙녀의 버킷리스트. 정신과에 가다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