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 되나, 가야 하나, 가야만 하나.거진 넉 달을 처절히 고민한 건 어디 가고. 결심이 선 순간, 내 뇌와 다리는그즉시 동기화됐다.
장장 9년이오, 본격적으로는 4개월의 대장정 끝에 거치고야만.수식이며 사족이이리도긴, 정신과(이하 마음과)대망의 첫 진료는...읭? 40여 분정도.
설문에 쏟은 시간을 고려하면, 의사쌤에게는 내 9년간의 역사를 10여분 만에 브리핑한 셈이지만뭐 괜찮다. 늘 그렇듯 중요한 것은 양보다 질인 법!... 이니까 문제.
아무리 전문가여도 나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완벽한 타인에게, 터지는 울음도조절하며 피티를 하기란무리인데다,여긴 어디? 금요일 오전의 병원이었으니. 위안과 치유를 기다리는 마음은 내 뒤로도즐비했다.
그런 상황에서 9년을, 4개월을 10분으로 줄인다라. 그러니까 그때 나의 설명이란 흡사 우천시 취소. 악천후에도 강행되는 상약속!처럼 뚝심을 가졌다기보단,이런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면 여기까지.이 정도만. 기타 등등. 이하 생략. skip... 에 가까운,인스턴트? 3분 인생?
그래서였다고 본다. 의사 쌤이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었던 건, 내 설명이 충분치 않았고, 그 때문에 내 감정으로의 동화가 수월할 수 없던 탓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당최 그렇게 말하실 수는 없지 않은가.
-저는 누가 나쁘다 판단하거나, 같이 욕을 해드리진 못 해요.
병원을 나오는 길.불쑥 편의점출입문처럼 멘트가 나오는차임벨이 마음과에도 있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꼭 그렇게 누가 봐도 "나 일 해요" 하는, 작위적인 목소리 말고.어눌해도 좋고 톤이 낮고 말을 더듬고사투리를 쓰고. 그러니까 꼭 그렇게 숙련된, 잘 다듬어질 필요 없이 그저 사람 목소리의 우리말이면 좋으니,
오는 이에게는 "잘 오셨어요"
가는 이에게는 "애쓰셨어요"
어쩜 소음 취급 밖에 못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처럼 첫 방문한 환자들에겐 저것처럼 든든한 환영, 뿌듯한 배웅도 없을것 같아 말이다.
회사로 가는 길은 떨렸다. 급하게 털어 넣은, 나의 첫 마음과 약이 과연 내 몸에 어떻게 작용하고 거기에 난 어떤 느낌으로 반응할지 궁금했다.
일어나 한 포, 자기 전 한 포 해서 하루 두 포.
그 중 아침 약을 굳이 정오가 넘은 시간에 먹은 것은 약효에 대한 설렘과 궁금함 때문은 아니었다.출근하고자 가는 곳이 사무실이 아니기 때문이었지.
그 날은 하필 워크숍이었고 그땐 카페에 있을 시간이었다. 다행보단 불행인 일.
사무실엔 정해진 내 공간과 내일이 있지만, 사무실이 아닌 곳은 달랐다.내 자리가 무너지고나면 이후의 모든 것은 길을 잃었다.
가서 누구 옆에 앉아, 빈 의자는 있겠지? 얘기 중일 텐데 갑자기 어떻게 들어가?
-오시길 잘했어요. 조금만 정도가 심해지면, 공황이 왔었을 수도 있을 그런 수준처럼 보여요.
의사 쌤의 그 말에 겁이 났다거나 불안하진 않았다.어느 부분 이미 공황 비슷한 걸 느껴온 걸 수도 있겠으며 어떤 부분에선 결코 공황이 올 수 없으리란 확신이 감히 있었기때문으로, 그 이유로는 불면을 들겠다.
나의 공황도 나의 불면과 닮아있으리라는 믿음. '선택적'이라, 공간과 사람 따라 달라질 문제임에 틀림없다는 확신.
누구나 관계로 말미암은 난관과 마주하면 꼭 두 가지 방식으로의 질문을 던진다. 언제부터 이랬을까.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거기에 난이것들로 답한다. 살다보니 알게 되는 수많은 사실 중일부이기도 하고, 서로 닿아있는 것이기도 한두 가지.
1. 인간사 '갑자기'인 것은 없다.
2. 얼굴 한 번 맞대보면, 적어도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빅모씨와 나는 얼굴 붉히며 싸운 적이 없다. 또한 아니 한편? 회식을 제하곤 밥이나 차를 같이 한 적도 없다. 무려 근 10년,한 사무실, 같은 팀에 있는 10년 동안.
전자보다 후자가 더 심하다고 느끼는 건 나 뿐일까?
누가 누구를 먼저 좋아하지 않았는지, 거기에
선후 관계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이곳에 처음 온 당시, 위 2번에 해당되는 본능으로 이 분이내게 호의까지는 없음을분명히 감지했을 뿐.
허나 내 느낌도 거기까지였다.날 향한 그 비호감이 어떻게 발휘돼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몰랐으니까.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이 같은 과에 있다니 당연 그게 다행일 리는 없겠지만, 이렇게까지 불행이 될 거란 것도 알지 못 했다.
나이 들고 가장 믿는 사자성어는 고진감래, 인과응보. 누군가를 아프게 했다면 나도 벌 받을 테니 나를 아프게 한 어느 시절의 당신도 벌은 받으라는 마음으로 산다.
나이 들고 가장 염두에 두고 사는 사자성어는
역지사지. 나 말고도 숱한 사람이1인칭으로 사는 세상이니, 어떻게 다 같을 수 있을까. 계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언갈 시작으로 상대가 돼보는 시도를 어설프게나마 해왔고, 코앞이 불혹인 지금은 상시까진 아니어도 되도록시도는 해보면서 사는 중이다.
해보니 어떠냐. 나의 리뷰는 십장일단? 장점은 많으나, 안 해도 되는 생각의꼬리를 물다 보니 과부하가 걸린다거나, 이해 안 해도 되는 입장을 이해해 보겠다고 물고 늘어진다는 것이 문제.
그 중에서도, 내 경험상최악의 단점은 '역지사지' DNA가 결여된 듯 한 사람과, 그 사람이 내게 하는 의도가 불분명하거나 불순한 말을 이해하려는 데서 발생했다.
어느 퇴근길. 배가 엄청이나 아팠다.진통제도 효과가 없어밤을 꼬박 시달리고,다음 날 출근 도장을 찍자마자 간 내과. 헌데 아무래도 배탈이 났다는 그건 아니지 싶던 차에 옆에 보이던산부인과에서 이유를 알았다.
의사 쌤 말하길, 어떻게 참았어요? 엄청 아팠을 텐데" 나 말하길, "어떻게 아셨어요? 엄청 아팠어요"
혼자 사녜서 그렇다 하니 이게 언제든 터지면 더 큰 일이고더 아프고, 응급실가야 하니 가까이 사는 친구한테도 말하고 회사에도 말해놓으라고.
그때는 더더욱 사람잘 믿고 말잘 듣던 때. 하물며 의사니여부가 있을까. 병원을 나서며 친구에게, 회사에 오자마자 회사에. 그렇게 1인 가구의 두려움을 최소로 클리어했는데,
그런 내 귀에 꽂힌 건... 저게 말인 거지? 그 말을 한 건 사람 맞고? 싶어지는 듣도보도 못 했던 류의 걱정.
"어머. 우리 아가씨도 너랑 똑같았는데 너 그거 관리 잘해라? 넌 아직 젊으니까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아가씨는 결국 불임됐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