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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Feb 13. 2024

숙녀의 버킷리스트. 정신과에 가다 7


가도 되나, 가야 하나, 가야만 하나. 거진  달을 처절히 고민한 건 어디 가고. 결심이 선 순간, 내 뇌와 다리는  즉시 동기화됐다.


장장 9년이오, 본격적으로는 4개월의 대장정 끝에 거치고야만. 수식이며 사족 리도 , 정신과(이하 마음과) 대망의 첫 진료는... 읭? 40여 분 정도.


설문에 쏟은 시간을 고려하면, 의사 쌤에게 내 9년 간의 역사를 10분 만에 브리핑한 셈이지만 뭐 괜찮다. 늘 그렇듯 중요한 것은 양보다 질 법!... 이니까 문제.


아무리 전문가여도 나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완벽한 타인에게, 터지는 울음 조절하며 티를 기란 무리인데다, 여긴 어디? 금요일 오전의 병원이었으니. 위안과 치유를 기다리는 마음은 내 뒤로 즐비했다.


그런 상황에서 9년을, 4개월을 10분으로 줄인다라. 그러니까 그때 나의 설명이란 흡사 우천시 취소. 악천후에도 강행되는 상약속!처럼 뚝심 가졌다기보단, 이런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면 여기까지. 이 정도만. 기타 등등. 이하 생략. skip... 가까운, 인스턴트? 3분 인생?


그래서였다고 본다. 의사 쌤이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었던 건, 내 설명이 충분치 않았고, 그 때문에 내 감정으로의 동화가 수월할 수 없던 탓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당최 렇게 말하실 수는 없지 않가.


-저는 누가 나쁘다 판단하거나, 같이 욕을 해드리진 못 해요.




병원을 나오는 길. 편의점 출입문럼 멘트가 나오는 차임벨이 마음과에도 있다면 어떨까? 는 생각을 했다.


물론 꼭 그렇게 누가 봐도 "나 일 해요" 하는, 작위적인 목소리 말고. 어눌해도 좋고 이 낮고 을 더듬 사투리를 고. 그러니까 꼭 그렇게 숙련된, 잘 다듬어질 필요 없이 그저 사람 목소리의 우리말이면 좋으니,


오는 이에게는 "잘 오셨어요"

가는 이에게는 "애쓰셨어요"


어쩜 소음 취급 밖에 못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처 첫 방문한 환자들에겐 처럼 든든한 환영, 뿌듯한 배웅 없을 것 같아 말이다.




회사로 가는 길은 떨렸다. 급하게 털어 넣은, 나의 첫 마음과 약이 과연 내 몸에 어떻게 작용하고 거기에 난 어떤 느낌으로 반응할지 궁금했다.


일어나 한 포, 자기 전 한 포 해서 하루 두 포.


그 중 아침 약을 굳이 정오가 넘은 시간에 먹은 것은 약효에 대한 설렘과 궁금함 때문은 아니었다. 출근하고자 가는 곳이 사무실이 아니기 때문.


그 날은 하필 워크숍이었고 그땐 카페에 있을 시간이었다. 다행보단 불행인 일.


사무실엔 정해진 내 공간과  일이 있지만, 사무실이 아닌 곳은 달랐다. 내 자리가 무너지고나면 이후의 모든 것 길을 잃었다. 


가서 누구 옆에 앉아, 빈 의자는  있겠지? 얘기 중일 텐데 갑자기 어떻게 들어?


-오시길 잘했어요. 조금만 정도가 심해지면, 공황이 왔었을 수도 있을 그런 수준처럼 보여요.


의사 쌤의 그 말에 겁이 났다거나 불안하진 않았다. 어느 부분 이미 공황 비슷한 걸 느껴온 걸 수도 있겠으며 어떤 부분에선 결코 공황이 올 수 없으리란 확신이 감히 있었기 때문으로, 그 이유로는 불면을 들겠다.


나의 공황도 나의 불면과 닮아있으리라는 믿음. '선택적'이라, 공간과 사람 따라 달라질 문제임에 틀림없다는 확신.




누구나 관계로 말미암은 난관과 마주하면 꼭 두 가지 방식으로의 질문을 던진다. 언제부터 이랬을까.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거기에  이것들로 답한다. 살다보니 알게 되는 수많은 사실 중 일부이기도 하고, 서로 닿아있는 것이기도 한 두 가지.


1. 인간사 '갑자기'인 것은 없다.

2. 얼굴 한 번 맞대보면, 적어도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빅모씨와 나는 얼굴 붉히며 싸운 적이 없다. 또한 아니 한편? 회식을 제하곤 밥이나 차를 같이 한 적도 없다. 무려 근 10년,  사무실, 같은 팀에 있는 10년 동안.


전자보다 후자가 더 심하다고 느끼는 건 나 뿐일까?


누가 누구를 먼저 좋아하지 않았는지, 거기에

선후 관계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이곳에 처음  당시, 위 2번에 해당되는 본능으로 이 분 게 호의까지는 없음 분명히 감지했을 뿐.


허나 내 느낌도 거기까지였다. 날 향한 그  비호감이 어떻게 발휘돼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으니까.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이 같은 과에 있니 당연 그게 다행일 리는 없겠지만, 이렇게까지 불행이 될 거란 것도 알지 못 했다.




나이 들고 가장 믿는 사자성어고진감래, 인과응보. 누군가를 아프게 했다면 나도 벌 받을 테니 나를 아프게 한 어느 시절의 당신도 벌 받으라는 마음으로 산다.


나이 들고 가장 염두에 두고 사는 사자성어

역지사지. 나 말고도 숱한 사람 1인칭으로 사는 세상이니, 어떻게 다 같수 있을까. 계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언갈 시작으로 상대가 돼보는 시도를 어설프게나마 해왔고, 코앞이 불혹인 지금은 상시까진 아니어도 되도록 시도는 해보면서 사는 중이다.


해보니 어떠냐. 나의 리뷰는 십장일단? 장점으나, 안 해도 되는 생각 꼬리를 물다 보니 과부하가 걸린다거나, 해 안 해도 되는 입장을 이해해 보겠다고 물고 늘어다는 것이 문제.


그 중에서도, 내 경험 최악의 단점은 '역지사지' DNA가 결여된 듯 한 사람과, 그 사람이 내게 하는 의도가 불분명하거나 불순한 말을 이해하려는 데서 발생했다.




어느 퇴근길. 배가 엄청이나 아팠다. 진통제효과가 없 밤을 꼬박 시달리고, 다음 날 출근 도장을 찍자마자 간 내과. 헌데 아무래도 탈이 났다는 건 아니지 싶던 차에 옆에 보이던 산부인에서 이유를 알았다.


의사 쌤 말하길, 어떻게 참았어요? 엄청 아팠을 데"  나 말하길, "어떻게 아셨어요? 엄청 아팠어요"


혼자 사녜서 그렇다 하니 이게 언제든 터지면 더 큰 일이고 더 아프고, 응급실 가야 하니 가까이 사는 친구한테도 말하고 회사에도 말해놓으라고.


그때는 더더욱 사람 잘 믿고  잘 듣 때. 하물며 의사 여부가 있을까. 병원을 나서며 친구에게, 회사 오자마자 회사에. 그렇게 1인 가구의 두려움을 최소로  클리어했는데,


그런 내 귀에 꽂힌 건... 저게 말인 거지? 그 말을 한 건 사람 맞고? 싶어지는 듣도보도 못 했던 류의 걱정.


"어머. 우리 아가씨도 너랑 똑같았는데 너 그거 관리 잘해라? 넌 아직 젊으니까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아가씨는 결국 불임됐잖아"


빅모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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