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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토피아, 정신과 8

by 씀씀


꾸역꾸역. 아슬아슬. 위태위태.


제 요즘이 그래요. 빼내서 쓸 악이고 깡이고, 체력, 정신력 다 이젠 바닥을 치는 거 같아요.


사무실이 적막하면 숨통이 트이고, 삼삼오오 모이고 말소리가 시작되면 저는 그대로 굳어요.


다 컬러인데 나만 흑백. 두 살아 움직이는데 나만 얼어붙은 느낌. 그러라 한 적도 없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 말을 해도, 알다가도 금세 또 모르겠어요.


정 많고 사람 잘 따르고, 화 좋아하고 장난 도 즐기는 내가, 왜 그런 나를 참으면서 멀뚱멀뚱 다른 사람들을 구경만 하고 있을까.


그치만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저 속에 내가 있는 그림은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내가 가면 하나둘 헛기침을 할 것 같고,

내 목소리가 보태지면 대화가 겉돌다 이내 멈출 것 같아요.


그런 생각쳐지질 않아서, 그럼 이번 턴엔 구경꾼이나 하자 맘먹었으면 즐기면 되지. 왜 달관을 못 하고, 긁으면 긁는 대로 순순히 긁혀주는 걸까요 나는.


나 긁자고 작정한 말과 행동에 내가 기스 날 게 아니라 저들 손톱을 갈리게 해주면 되는 건데, 왜 난 맨날 낮은 수의 셈에 뽀로로 반응할까요.


고상한 척하는 겉모습에 숨긴 계산이 나는 다 보이는데. 나만 당하고 나만 아는 것 같아, 억울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원망도 향해요.


그렇게 1초도 쉴 새 없이 뇌를 괴롭히다 오늘은 좀 일찍 여기에 들습니다.


이 안은 그래도 편하거든요. 여기선 우수수 와르르. 둑 터지듯 생각이 쏟아져요.


없는 말을 하진 않지만 말이 말을 낳는다고. 하다 보면 하등 쓸데없고, 깊게 생각 않은 얘기도 퍽 스트레스 것처럼 나올 때가 있어요. 없던 불만을 말하다 만들어버린 느낌이랄까.


그럼 바로 정신에 찬물을 확 뿌려요. 이건 좋지 않다. 즐거운 얘기만 해서 좋은 기운만 나눠도 모자랄 판에 굳이 나쁜 에너지를 만들 필요는 없지. 조심하자! 해보지만, 말하다 보면 또 우수수. 꽤나 자주 붕어가 버려요.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거짓말 1위가, 이거 너만 알고 있어. 이거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 라던데.


근데 나는 정말이거든요. 여기에만 하는 말이 진짜 많은데. 런 이곳에서 나는 과연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요. 얼마나 안전할 수 있을까요.


내 속을 100프로까진 다 게우진 못 할 것 같아 답답하고. 풀기에도 뭔가 두려운 이 찝찝함은 어쩔까요. 사실 남들은 남의 얘기, 남의 글에 그다지 관심 없는데 말이에요.


모르겠어요. 머리 아파요. 일단 저는 그냥 지금 정도로만 떠들면서, 박카스를 밥처럼 먹고 타이레놀을 커피처럼 마시며 버티다가, 그걸로도 안 되면 여기 한 번씩 오면서 존버해보죠 뭐.


요즘의 저는 나도 내가 걱정스러울 지경이긴 하지만, 너무 걱정은 마세요. 내가 이리도 진 빠지게 지쳐있는 건 현실세계, 내 회사에선 아무도 모르니까. 저들 아니 저 둘이 하는 아닌 척. 저도 그 안에선 잘해요.


나은 때가 곧 오겠죠. 제가 초연해지거나 더 잘 먹고 잘 살 길을 찾거나 등등 뭘로든 나은 때가.


정신과. 아, 마음과 이야기는 오늘은 쉬어갑니다. 제 리듬이 온전치 못 해서요.


마음과가 나와서 말인데 오늘 제 이런 얘기를 의사 쌤이 들었다면 무어라 하셨을까요?

그때처럼, 저는 누가 나쁘다 판단하거나 같이 욕을 해드리진 못 해요. 하셨을까요?


추측하건대, 저의 의사 쌤은 대문자 T가 틀림없겠습니다. 닥터에도 T! 티쳐에도 T!

에프는 어디에도 없는거 봐...

확신의 T상! 그렇죠 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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