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이전에도 저것비슷하게 와닿은 말을들었었다. 긴 시간, 작가만을 꿈으로 꼽아 온 내게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말하길
-넌 작가는 못 될 것 같아
... 그 날 강원도 한 여고에서 폭행사건이 발생했다면, 저의 폭행은 정당방위로 분류되는 거죠?
아직도 생각난다. 어찌나 분했는지 내가 너 때문이라도 무슨 '작가'든 되고만다! 이를 간 걸로 모자라, 왜 네 꿈은 유아교육과만나오면 될 것 같은 유치원 교사라남의 꿈에 막말하냐며, 똑같이막말로 응수 못한 게 한이었다.
그뿐이랴. 방송국 막내'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맨 처음 떠오른 것도 그 친구. 제발 이 프로애청자여라. 그래서 봐라 내 이름.그다음엔미안해해라.
하지만 모두 내 야무진 꿈. 그 당시 친구의 말에 폭행은 무슨. "왜? 그럼뭐 딴 거 해야지"라며 화에 히읗도 안 꺼낸 나였기에, 친구는 그 대화에 별표는 커녕 밑줄도 긋지 않았을 것이었다.상처가 내게나 상처지, 남에게도 상처이던가 어디.
허구헌날 저렇게 참았으면서도내가 잘 참는다는 걸 인지한 건우습게도 최근의 일.
대부분의 상황에서 성미가 급한 나는, 신기하게도 특정 상황에서만큼은 참는 힘이 좋았는데, 그 모순을 가능케한 영역은 바로 '불의'. 구체적으로는 '내가 겪는 불의'였다.
나는 내가 겪어야 하는 불의에 제법 평정심을 유지했다. 남들은 욱하고 지르고 하는데 이건 뭐 달관한 듯,보았노라 알았노라 되었노라.총알이 날아오면오나 보다. 포가 터지면터지나보다.둔하거나 무신경한 사람처럼, 무던히 넘겼다.
인생 2회차인양, 득도했나 의아해지는 내 고요의 비밀은'척'. 다시 말해 그평온이 관상용이라는 것이었다.
한꺼플벗겨낸속에선 폭풍우가 몰아쳤다. 기분 나쁜데 이게 맞나?나한테 무례했던 거 같은데 맞나? 내가 화내도 되는 게 맞나? 하는자기 검열로 생각의 파동이 쉼 없는 상태.내가 예민한 거 아닌가, 나의 과민일 수 있잖아? 어떤 감정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
내 기분이마땅하단판단이 서면 이제 두 번째 고비. 아까 못 한, 상대의 무례함을 후벼파는 주옥같은멘트들이넘쳐대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때는 이미 지났는데 분노는 시작. 그걸 푸는 건 셀프에 한동안 만만한 사람이 돼야하는 게 서비스라니.
인생의 신비는 참 얄궂고, 쓸 데 없이 가깝다.
반대가 끌린다는 게 여기서도 적용될 일인지.여우는 곰을 귀신같이 알아채고,악함은 약함을 빛보다 빠르게 감지한다.
빅모씨 같은(굳이 특성을 정의하진 않겠다) 인물이나 무리가 기운 약한 사람을 알아보는 것만 봐도 그렇다.떠듦족들은본인들이 온갖 유언비어로 쥐락펴락 하는 것에 호락호락 당하는 부류를 잘도 골라낸다.
타깃이 정해지면 그 때부턴 점입가경. 일단 다양한 장르의소문이 생산되는데, 그 소문 앞에선 백문이 불여일견도 힘을 못 쓴다. 처음이야 경계심을 갖고설마하며 듣지만, 반복되는 자극적 일화나 평가에 사람들은 꽤 쉽게 스르르,특별한 계기 없이도 동화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선입견이 편견으로 굳어지면 제아무리 진실이더라도 소문을 이기기어렵다. 소문에 당하는 사람들은 그경우 대부분 게으르기 때문. 분명 날 위한 해명이지만 한편으론 남 얘기를 떠드는 것이기도 한 일에, 소문을 만든 사람들과 같은열정과 근면이 없다. 안 믿을 사람은 안 믿겠지, 그런 말들에 혹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필요없어라는 마지막 절개만 밀어부칠 뿐.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반응하는 자체가, 그 소문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억울한 건 억울한 것. 그렇다고 조선시대처럼 곳곳에 방을 붙여 호소하자니, 그건 또 법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인 세상인지라,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에 사려야 한다.
그리하여 나 역시 말 안 섞고 귀 닫고 눈 감고8년을 넘어까지 존버한 것이건만결과는 무쓸모. 나아진 건 없었다. 한 번 문, 것도 아주 얌전한 먹잇감을 순순히 놓아주는 맹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이치로, 내 인생과 인성이 회사 어느 무리, 어느 구석에서는 세상 남루하고 파렴치한 것으로 변모해 있어도나는 다 알 수는 없었고혹 알더라도, 내게 말해준 이를 생각해 알면서도 몰라야 했다.
참을 인 세 번엔 살인을 면한다 했던가.
나는 참을 인 백 번으로 나를 살려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해 안 되는 것. 참을 인자는 눈 감고도 휘갈길 경지에 이른 내가. 웬만한 뒷담화며 이간질은 마스터한 내가. 인내심을 사람으로 형상화 한다면 지금의 내가 아닐까 싶은 내가. 이해 못 할 험담 한 가지.
지난 여름 그 이야기.그건 대체 왜 한 걸까. 얻는 게 뭘까. 어떤 정신세계일까.리플리증후군일까. 주변에 어떻게 사람이 있지. 그 썩은 정보에 기생하는 사람들은뭐지.
인간이 희망이라 여겨, 내 사람들에게 인류애 풀 충전했다가도 빅모씨와 그 주변만 보면 인류애가 파사삭 식는, 이 일련의 과정에서 왜 원망이 향하는 곳은 저기가 아니라 나약한 내 멘탈인지. 서글프고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