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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숙녀 Feb 28. 2024

이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나는 세입자. 일주일 후 이사를 앞두고 있다.


지금 집에 온 지는 3년. 계약 보통 2년 단위임을 생각하면, 홀수로 살고 다는 점에서 번 이사는 느닷없거나 사연이 구나로 여기면 될 터.


렇다면 유가 그중 뭐건 큰일은 큰일이니 매일 공사다야 맞겠지만,  하루는 천하태평. 나는 그저 머릿속 공상다망하다.


이사 준비에 몸은 안 쓰고 머리만 세상 분주한 것인데, 여기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사를 위해 정리할 짐보다도 정리할 생각이 많기 때문.




언제부턴가 '이사'에는 비슷한 말을 한다. 게 두 가지. 내 집 마련으로 가는 거냐, 지만 더 좋은 집으로 가는 거냐 하는 것.

이사의 이유 저마다 다를 텐데관심사 한 번 어찌나 편협한지, 오늘날 이사에선 저게 핵심이자 전부인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실  모르겠다. 이사가 꼭 자가니 더 좋은 집이니 하는, 성취의 관점에서만 의미 갖는 인지. 히려  생각 이사란 그 반대로, 분실증발의 차원에서 더 무겁게 새겨지는 개념 같은데 말이다.




그 집을 산 건 남이지만 그 집에 산 건 나.


채 스무 평이 안 되던 그곳들은 나 자체였다. 

주인은 남이고 거주인은 나였던 그 집엔 내 하루는 물론 희로애락, 나도 모르던 내 +a까지아들었다.


나의 격과 취향을 파악하는 난도의 일 역시 집 한 번 휘- 둘러보면 끝. 밥은 해 먹는지 시켜 먹는지, 즐기는 음식과 좋아하는 색, 제기 싫어하는 집안일은 무엇이며 가장 자주 머무는 공간은 어디인지, 그곳엔 모든 힌트와 증거가 나라하게 놓여있었다.

 

그렇게 어락부터 싱크대 배수구까지, 내가 안 닿은 곳이 없는 그곳으로 터덜터덜 퇴근해 왔을 때, 즐거운 약속을 마치고 들어왔을 때, 꿈만 같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말했다. "역시 우리집이 최고야"


내 소유가 아님에도 그곳은 늘 나의 집, 우리집이었으니. 나는 사회적, 법적으로 줄곧 무주택지만, 정서적으로 오래 전부터 유주택자. 것도 재산세 꽤나 내야 할 다주택자였던 셈라고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겠데,




바로 정서적 다주택자. 것이 내게 이사가 증발이분실로 와닿는 이유다.


집은 많은데 돌아갈 곳은 없는. 내것이라 여겼으나 물리적으로는 온전히 영원히것이 아님을 정할 수 밖에 없는 행위이자 과정이 이사인 것이니까.


분명 내 인생의 긴 단락을 담았고, 몇 해 동안의 내 눈물때 웃음때가 눌러붙은 곳인데. 떠나는부로 가 볼 수도, 다시 살 수도 없다는 것. 이게 남의 집 사는 설움이라는 가?


새로웠지만 이윽고 나 그 자체가 된, 떠나왔고 돌아갈 수 없는 곳에 인생의 한 마디를 고이 뒀다. 그리곤 다시 새로운, 그렇지만 반드시 떠것이고 돌아가지 못 할 곳을 내 집이랍시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또 한 번 내 인생을 여기에 촘촘히 스미게 해야 다. 어렵고 쓸쓸하다.


나는 이것이 이사인 동시에 인생에서 이사가 갖는 무게라고 생각한다.




옛사랑이 떠오르면 자니? 연락하면 그만이고, 코 찔찔이 시절이 생각나면 졸업한 초등학교에 가보기라도 할 수 있지. 뽀얗기도 멍들기도 했던 내 청춘이 눌러 붙은 그 집 구석구석이 사무치면, 그 그리움은 어게 해야한단 말인가.




지금 집에 오기 전 8년을 살던 집. 그곳에서 여기로 오던 이삿날이 유독 그랬다. 볼상 사납게 자꾸 방이 눈에 밟히고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인데 어딜 간단 말인가 싶고.


그 때나 지금이나 감성으로 중무장했던 나는, 휙 돌아설 위인이 못되었다. 통 안 떨어지는 발길과 그 상한 마음을, 회사에서 받 백화점 상품권 편지 한 장 담았다. 주인아저씨에게 보내는 인사였다.


이 방에서 8년을 보냈습니다. 20대에 왔는데 30대 중반이 됐네요. 처음 와보는 낯선 동네라 정 붙이기 어려웠는데, 다행히 좋은 집에 따뜻한 주인분 만나 긴 시간 탈 없이 지냈습니다. 마음 같아선 결혼할 때까지 살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


편지에 잉크도 안 말랐을 텐데. 살던 방이 눈에 밟히고 발길이 뭐 어째? 붕어마냥 금세 까먹고는 새 집에서 짐 정리하느라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던 늦은 오후의 문자 한 통.


고맙습니다. 우리집에서의 시간이 행복했다니 다행이네요. 건강해요.


세상 투박하고 무뚝뚝하던 아저씨의 한 마디에, 그 방에 나의 8년을 두고 나만 떠나옴이 마냥 아쉽진 않아져, 내게도 다행인 일이었다.


후에 친구들은 돈 주고 살았는데 뭘 상품권을 또 드리냐. 백화점 딸이었냐. 나도 좀 줘라. 한 소리씩 해댔지만, 치른 값에 맞는 응당한 대우를 문제없이 누리는 당연한 일이, 꼭 기적이나 선행처럼 돼버린 지금. 계약 시작부터 까지 잡음 없이 살았다는 것만으로 나는 복 받은 사람이 생각하기로 했고,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이사를 할 때 굳이 야 할 게 있다면 남의 집 사는 설움이 아남의 집 사는 설렘인 편이 본인에게 더 좋으리라.


이를테면, "세상에, 이 집이 나 살라고 남이 사놓은 집이야?" 하며, 누릴 건 누리고 지킬 건 지키고 행할 건 행하면서, 내 소유는 아니지만 내 책임은 있는 그 공간을 어여쁘 꾸리는 그런 자세서의 설렘.


이사에서 중요한 것은 자가냐 전세냐 월세냐. 아파트냐 주택이냐 빌라냐. 몇 층이냐 몇 평이냐. 대출 꼈냐 영끌이냐가 아닌, 지난 인생이 담겼던 곳을 잘 여미어주고 앞으로의 인생이 놓일 곳을 반듯하게 가꾸는 것리라.


그렇다면 내 화려하고도 구슬픈 30대의 마지막을 함께할 새로운 스위트홈에서,

이제 나는 잘 살아보기로.


그리고 다음주. 내 눈부시고도 구질했던 30대의 중반을 지켜봐 준 현재의 아지트를 떠나면서는, 주인아저씨가 아닌 새로운 세입자 분에게 인사를 남기는 걸로.


쪽지의 시작은 '우리집은 말이죠'.

ps. 왁스의 '부탁해요'를 틀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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