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지려 하기 전에(1) - 단편소설

by 하기

슬퍼지려 하기 전에(2021년 강원문학 53집)


* 젊은 시절 여름휴가철이 되면 어김없이 거리를 가득 메우던 그룹 쿨의 노래들. 이 소설은 그 노래들과 함께 했던 청춘을 회상하며 써 본 소설입니다. 어렸기에 능숙하지 못하고 치기만 가득했던 청춘남녀들의 연애와 고단했던 그들의 삶을 관찰하며 느꼈던 슬픔. 하지만 그 슬픔 속에 끝내 동행할 수 없어 빠져나와야만 했던 비겁함에 대하여 변명하고 싶었습니다. 더 이상 슬퍼지려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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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대한민국은 그룹 쿨의 노래로 들썩거렸다. ‘슬퍼지려 하기 전에’, ‘해변의 여인’, ‘운명’ 등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거리에서, 차 안에서 우리는 여름을 쿨과 함께 보내야만 했다. 그 전해에 입사하여 2년 차 직원이었던 동기들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단합대회 겸 강원도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의기투합했다. 얼마 전에 차를 뽑아 한참 운전에 재미를 붙인 입사동기 해진이 기꺼이 드라이버를 자처하였다. 각자 준비물을 분담하여 가지고 온 후 짐을 차에 싣고 우리는 호기롭게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차 안에서는 계속 쿨의 노래가 반복되어 라디오를 타고 나와 우리는 신이 나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여행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운전을 하는 해진만이 꾸불꾸불한 국도와 오르막이 많은 강원도 도로의 특성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우리는 주말에 몇 번 낚시 여행을 가 본 적이 있어 같이 여행하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 있었다. 동기 중에 동규와 해진은 애인이 있었지만 기꺼이 우리와 함께 여름휴가를 보낼 정도로 동기들 간에 정리도 좋은 편이었다. 사회에 나와 같은 직장에 첫 발령을 받아 함께 근무하고 3개월의 신규직원 교육기간 동안 기숙사도 같이 배정받아 생활하였다. 당시만 해도 학창 시절 대학 동기 같은 느낌이 우리들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나와 기주는 여자 친구가 없어 바닷가에서 로맨스를 만들기를 은근히 고대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운명의 장난에 의하여 우리의 기대가 무너질 줄 강원도로 가는 차 안에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해처럼 올해도 다시 여름이 왔다. 2020년은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날 것 같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여름휴가도 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우울해하고 있을 즈음 일시적이긴 하지만 20명 미만으로 신규 확진자가 줄기 시작했다. 아내는 7월 중순 회사에서 휴가를 낼 수 있다고 퇴근한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숙박여행포탈에 접속하여 동해안에 숙박이 가능한 펜션을 알아보았다. 휴가철이긴 하지만 예년과 달리 다행히 예약이 가능한 펜션이 있었다. 우리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펜션을 예약하고 회사에 여름휴가를 신청하여 딸아이와 함께 셋이서 오랜만에 차를 타고 강원도 여행을 떠났다.


서울 양양 고속도를 타고 가는 길은 평일이라 막히지 않았다. 새로 생긴 고속도로는 곧게 직선으로 뻗어 운전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예전에 국도로 강원도에 올 때는 꾸불꾸불한 오르막길과 가파른 경사로 인해 운전이 힘들었는데 평창올림픽 이후 강원도의 도로가 잘 정비되어 여행길이 즐거워졌다.


“도착까지 얼마나 시간이 남았어?” 아내의 말에 나는 내비에서 남은 시간을 확인하였다.

“응. 지금부터 30분 정도 남은 것 같아.”

“운전 집중해서 해. 아까 보니 딴생각하는 것 같던데...”

“알았어. 콘솔박스에서 잠 깨는 껌 좀 줘.” 아내는 박스에서 껌을 꺼내 나의 입에 넣어 주었다.

껌을 씹으며 30분 정도 운전을 하니 내비가 목적지 도착을 알렸다. 나는 펜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였다.


사근진 해변 앞에 있는 펜션은 2층으로 1층과 2층에 객실이 모두 4개 있고 1층 중앙에 주인 방이 있었다. 우리는 열쇠를 받아 방에 입장하였다. 원룸 형태의 방은 넓진 않았지만 3명이 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푼 우리는 펜션 바로 앞에 있는 사근진 해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파도가 치는 해변에는 서핑의 명소답게 서핑 강습이 한참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서핑을 배우기 위하여 엠티를 온 남녀 대학생들이 강사의 지도로 한참 서핑을 배우고 있었다. 아내와 서희가 조개껍질을 줍기 위하여 해변을 여기저기 거니는 동안 나는 젊은 대학생들의 서핑 강습을 지켜보았다. 맨 앞에서 서핑보드를 타며 웃고 있는 여성의 얼굴이 어딘지 익숙하여 자세히 보니 그녀를 닮은 얼굴이었다. 하얀 피부에 포니테일로 묶은 풍성한 머리, 살짝 휘어 더 매력적인 콧날, 정화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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