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지려 하기 전에(2) - 단편소설

by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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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해변 근처 도로에 주차시킨 동기 직원 4명은 방을 예약하기 위하여 사근진 해변 근처의 민박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여름 성수기라 방을 구하기 힘들었고 방을 구하지 못한 우리들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갖고 온 텐트를 치기 위하여 해변에 있는 텐트촌을 방문하였다. 좋은 자리는 이미 모두 대여가 되었지만 다행히 빈 공간이 있어 우리는 대여료를 내고 텐트를 칠 수 있었다.

버너에 라면을 끓여 먹고 간단히 시장기를 채운 우리들은 20대 후반의 청년들답게 해변에서 수영을 하면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해가 저물고 해변은 붉은 노을로 아름답게 물들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켜지고 우리는 해변에 앉아 해진의 기타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오랜만의 휴가를 마음껏 즐기게 되었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해진아 조용히 해봐.” 연가를 한창 부르던 중 동규가 갑자기 말을 했다.

“저기 여자 2명이 있는데 우리 한번 말 좀 걸어볼까. 윤기하고 기주 여자 친구도 만들어 줄 겸.”

동규의 제안에 나와 기주는 해변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반바지와 민소매 티를 입은 두 여자가 맨발로 모래사장에서 바닷물에 발목을 담그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럼. 말솜씨 좋은 해진이가 한번 나서봐. 기주하고 윤기는 숙맥이라 말도 못 걸 것 같으니.” 동규가 기타를 들고 있는 해진에게 눈짓을 했다.

“그래. 우리들의 우정을 위하여 내가 한번 나서볼게.” 해진은 기타를 나에게 건네며 해변에 있는 두 여인을 향하여 걸어갔다.

해진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사귀던 오랜 여자 친구가 있었지만 평소에도 여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며 인기가 좋아 나는 은근히 그런 해진을 질투 반 선망 반의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해진은 두 여자에게 접근하여 말을 걸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여자들의 낮은 웃음소리로 작전이 잘 먹히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해진과 두 여자는 기타를 치며 놀고 있는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크진 않았지만 날씬하여 두 여자 모두 각선미를 뽐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정화와 그날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되었다.


해변에서 같이 기타를 치며 친해진 우리들은 통성명을 하며 서로의 이름을 확인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최정화였다. 친구의 이름은 김미정. 둘은 고향 친구라고 하였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따로 하는데 시간을 맞춰 같이 휴가를 왔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정화가 마음에 들어 적극 대시를 하였다. 해진과 동규도 내가 애인이 없다는 사실을 정화에게 은근히 흘리며 둘 사이에 오작교를 놓아주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기주와 미정이도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듯 다정하게 앉아 있었다.

동규와 해진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텐트에 들어가자 쌍쌍이 남은 둘은 자연스럽게 갈라져 해변을 거닐게 되었다. 객창감과 맥주를 한잔씩 마신 여흥으로 나는 은근슬쩍 정화의 손을 잡았다. 살짝 손을 피하던 정화도 내가 다시 손을 잡자 손가락에 힘을 주고 내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나는 회계학을 전공하고 세무법인에 입사해 올해 2년 차 직장인이에요. 정화 씨는 직장이 어디예요?”

“전 윤기 씨처럼 좋은 직장이 아니고 조그마한 무역회사에서 경리업무를 하고 있어요. 세무법인이면 제가 앞으로 도움받을 일이 많을 것 같네요. 잘 부탁드려요.”

나는 은근히 직장에서 월급이 많다는 자랑을 하며 그녀에게 점수를 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정도로 그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다음날 다시 만난 정화에게 서핑을 배우자고 꼬드겼다. 나는 작년 여름에 서핑 강습을 받아서 서핑을 가르쳐준다는 핑계로 자연스럽게 그녀와 둘만의 데이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서핑을 위하여 몸에 달라붙는 전신 방수 수영복을 입은 그녀의 몸매가 반바지를 입었을 때와는 다르게 육감적이었다. 서핑보드를 대여하고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그녀와 나는 서핑을 하였다. 배가 고파 근처에 있는 퍼니 서프라는 레스토랑에서 같이 홍게 라면과 수제버거를 먹고 커피로 입가심한 우리는 피곤이 몰려와 잠시 그늘에서 쉬기로 하였다.

그늘을 찾던 우리는 텐트 근처에 있던 일행들과 떨어져 나무가 있는 그늘을 찾아갔다. 점점 해변에서 멀어져 바위가 있는 곳에 도달하니 그늘진 곳이 있었다. 우리는 피곤한 다리도 쉬게 할 겸 그늘진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하늘을 쳐다보니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비가 오면 오래 쉴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이 든 나는 그녀가 하늘을 쳐다보는 사이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하였다. 처음엔 움찔하던 정화도 내가 다시 키스하자 나의 입술을 말없이 받아주었다. 그렇게 나는 정화와 내가 점점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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