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다음날 연수를 마치고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연수 끝나고 서귀포 시내 관광을 하고 싶은 데 가이드해줄 수 있어요?”
“그럼요, 가이드 비용은 별도인 것은 알고 계시죠..”
“그럼, 좋은 데 많이 소개해 줘요.”
스포티지를 몰고 약속 장소인 법환포구로 가는 데 가이드가 아니라 연인을 만나러 가는 듯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이 느껴졌다.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아내와의 연애시절 느껴보고 근 20년 만에 이성으로부터 느끼는 설렘. 그때 바다 쪽에서 생선 비린내와 함께 바람이 불어왔다. 라디오를 트니 강남미인이라는 드라마 때문에 한참 유행하는 정기고의 “디데이”라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굳이 그리 안 꾸며도 충분하게 예쁜 걸 알면서 넌 오늘따라 유난히 더 예뻐서 날 괴롭히는 이 순간”
그녀는 검은색 나시티에 물 빠진 청반바지를 입고 나왔다. 짧은 단발머리와 어울려 유난히 동안인 듯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보였다.
그녀가 처음 나를 안내한 곳은 이중섭거리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들과 살았다는 이중섭의 집은 한 가족이 살기에는 너무 작아서 화가의 빈궁함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이런 집에서 살았던 추억을 화가는 가장 행복했던 인생의 순간으로 기억하고 그 이후에 제주도를 계속 그리워했다고 하네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기억 때문이겠죠.”그녀가 말했다.
“제주도를 떠나면서 아내와 아이들이 일본으로 돌아가고 서울에서 혼자 쓸쓸히 병마와 싸우다 죽었으니 이중섭이 죽기 전 행복했던 시간의 추억은 이곳이 마지막이었나 봐요.”나는 대답했다.
이중섭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하고 우리는 서귀포에서 처음 열었다는 커피전문점 유동 커피로 가서 커피를 마셨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맞은 편의 그녀를 바라보니 햇살이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을 비추어 주어 금발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머리를 길러도 참 예쁘겠어요.”내가 말하자
“길렀었죠. 허리까지... 제주도에 오면서 정리했죠.”하며 웃는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배 고프네요.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나는 말했다.
“아저씨, 그럼 짬뽕 사주세요. 갑자기 매운 게 먹고 싶어요.”
그녀는 덕성원이라는 중국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게짬뽕이 유명하다고 해서 우리는 게짬뽕 두 그릇과 탕수육을 시켜 먹었다. 너무 배가 불러 그녀와 나는 배도 꺼지게 할 겸 해안가 산책을 하기 위하여 법환포구로 돌아왔다.
법환포구 쪽에서 서귀포 시내로 산책을 하다 보니 월드컵경기장까지 오게 되었다. 월드컵경기장 2층에 “세계성문화 박물관”이라고 표지가 있길래 내가 그녀에게 물어보았더니,
“한 번 들어가시죠. 보시면 압니다.”하며 그녀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박물관에 들어가자 세계 각국의 성과 관련된 토템이나 나체 인형 등 각종 전시물이 전시되었다. 박물관 한쪽으로 성인용품을 파는 섹스토이 샵도 있어 약간은 외설스러운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그녀의 반바지 밑으로 보이는 튼실한 허벅지가 자꾸 내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런 내 눈길을 의식한 듯 그녀도 슬쩍 내 손을 잡으며,
“아저씨, 여기 좀 야하죠. 이상한 생각 하시면 안 돼요. ”
“미안, 가이드가 너무 매력적이라 작품보다 가이드 쪽에 자꾸 눈이 가네요.”나도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말했다.
우리는 박물관을 나와 연수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오늘 가이드해 줘서 너무 고마워요. 좋은 곳 안내해 줬으니 귤 한 상자라도 선물하고 싶은데 받아 주실 거죠.” 하루치 가이드 비용을 봉투에 넣어 건네주자 그녀도 웃으며,
“돈만 주셔도 되는데 귤도 주시면 더 좋죠. 제가 귤차 한잔 대접할 테니 제 원룸에 잠깐 들렀다 가세요.”
“그럴까요?” 뜻밖의 그녀의 제안에 나도 냉큼 화답을 했다. 내 마음을 그녀가 읽은 듯 그녀의 집으로 초대를 해주니 그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농장에 들러 집에 보낼 귤과 그녀에게 줄 두 박스를 더 구입하여 트렁크에 싣고 고금산 밑에 있다는 그녀의 원룸으로 향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kLXxS3MxfE (정기고의 디데이 감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