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친절 대마왕 - 7
7.
입주자 대표 변경과 관련된 집단민원에 대하여 전 대표 변호사가 현 대표에 대하여 대표 변경과 관련한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였다. 변호사는 현 대표에 대한 권한정지 가처분을 신청하여 나는 법원 확정판결 이전까지 현 상태를 지속하고 중요한 결정에 대하여 법원의 허가를 통하여 결정하는 것으로 양당사자의 확인을 받아 고충민원처리를 마감하였다. 나의 업무처리에 대하여 양당사자가 일단 수긍을 하여 별도의 추가 민원 없이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입주자 대표회의건이 해결되자 새로운 고충민원이 나를 괴롭혔다. 이른바 보험판매원 기장 사기 세무사 사건과 관련한 집단민원이었다. Y세무사는 수 백 명의 보험판매원 이른바 생활설계사들의 종합소득세 신고를 대리하면서 사업수입과 관련한 경비 증빙을 허위로 작성하여 신고함으로써 소득세를 집단적으로 탈루한 사건이었다.
국세청은 관련 세무사에게 기장대리를 맡긴 모든 설계사들의 경비를 부인하고 경비율에 의한 추계 경정을 단행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제 경비를 사용한 상당수 설계사들의 집단민원이 발생하고 그 고충민원이 나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나는 일단 설계사들의 방문을 받고 그들의 마음을 읽어나갔다. 그중에서 실제 경비를 사용한 사람들을 선별하여 최대한 관련 증빙을 제시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안내하고 적극적으로 해결방법을 제시하자 설계사들은 나의 민원처리에 대하여 국민신문고에 친절공무원으로 칭찬을 하였다.
“최현기 조사관 얼마 전만 해도 불친절 공무원으로 경고장을 받았는데 몇 달 사이에 친절공무원으로 선정되고 계속 친절사례가 신고되고 있네. 비결이 뭔가?”나에게 경고장을 주었던 총무과장은 궁금한 듯 나에게 물었다.
“마인드를 바꾸니 민원인들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가족처럼 진실하게 그들의 고충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현기 씨 오늘 같이 퇴근하자. 오늘 저녁은 그동안 카풀해 준 대가로 내가 쏠게.”나를 외면하고 입사동기인 임규진과 출퇴근하던 영미가 갑자기 나에게 저녁을 제안하였다.
“그럴까. 오랜만에 동기들끼리 저녁이나 먹을까. 규진 씨도 같이 하지.”
“규진 씨는 소득세 신고기한이라 바쁘니 오늘은 우리 둘이 식사해.”하는 영미의 말에 나는 그러 마하고 퇴근시간을 기다렸다.
우리는 사무실 근처에 있는 윈드밀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창문으로 폭포수가 보이고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풍경이 있는 경양식집이었다. 나는 등심 스테이크와 맥주를 시키고 영미는 스파게티와 와인 한잔을 주문했다.
“현기 씨 요즘 민원 처리하느라고 힘들지?”
“그런 일하라고 월급 주는 건데 뭐. 괜찮아.”
“고충 담당은 힘들어서 직원들이 모두 기피하는 일인데 현기 씨가 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것 같아. 경력도 많이 되지 않았는데 말이야.”
“좋게 평가해주니 고마워. 나도 고충민원처리를 하면서 처음에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해보니까 민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많고 최선을 다해서 민원인들의 고충을 해결하고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에게도 만족감을 주는 것 같아. 우리 일 얘기는 그만 하자. 오랜만에 동기끼리 저녁 먹는데. 하하.”
영미의 얘기를 들으며 영미가 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최근에 규진이와 카풀을 하면서 많이 친해진 듯 중간중간 규진을 생각하는 게 내 귀에 들려왔다. 공연히 남의 연애에 끼어드는 느낌이 들어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현기 씨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내일 초등학교 직업 프로그램에 초청되어 세무공무원의 세계에 대하여 설명해야 하는 데 자신이 없어서.”
나는 당황하여 공연히 내일 진희와의 약속을 말하게 되었다.
“그래 현재 현기 씨라면 지금 민원을 해결하는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말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후후.”
우리는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묵동에 있는 영미의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영미는 살며시 내 손을 잡았다. 따뜻한 느낌이 좋아 내가 손을 세게 쥐자 영미는 살짝 손을 빼며 새침을 떨었다. 2층 양옥집인 영미의 집까지 오자 영미는 내 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런 영미를 보며 입술에 키스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순간 진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 즐거웠어. 다음에 규진이랑 동기끼리 식사 한번 하자.”
“그래. 오늘 집까지 바래다 주어 고마워.”
영미가 초인종을 누르고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망우동에 있는 옥탑방에 가기 위하여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