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마지막 행운 - 11 최종회
주말을 이용하여 서초동의 메트로스타로 나 혼자 이사를 했다. 짐이 별로 없어서 인수에게 출입증과 함께 아파트 키를 받고 경비실에 가서 경비원에게 인사를 했다.
“네 사모님이 며칠 전에 다녀가셨죠. 말씀하셔서 입주하시는 것 알고 있었습니다.”
“네 아니 아내 될 사람은 지금 제주도에 있어서 전화로만 관리사무실에 내가 입주한다고 편의를 봐달라고 얘기했다던데. 누가 다녀갔다는 거죠.”
“하얀 원피스 입고 오셨던데. 탤런트처럼 이쁘시던데. 모르세요.”하는 그의 말에 나는 혹시 처녀귀신 아니 이수정이 다녀갔나 해서 인상착의를 말하니 경비원의 말과 일치하였다.
“아니 부인이 아니신가 봐요. 그분이.”
“네 친척동생이에요 아주 가까운. 나하고 아내를 연결시켜준.”
“하하. 그렇군요. 어쨌든 결혼 축하드립니다.”라는 경비원의 말에 나는 갖고 온 음료수 선물세트를 주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22층 아파트로 올라갔다.
50평이 넘는 아파트는 혼자 들어서니 휑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져온 짐을 대충 풀고 베란다로 가서 강남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퇴근시간이라 빽빽이 들어 선 차량의 행렬이 움직이지 못하고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곳이 인수와 내가 새로운 출발을 하는 보금자리라 생각하니 처음 들어올 때와는 달리 행복한 마음으로 충만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입주를 미리 준비해 준 이수정, 그녀도 영혼결혼식을 통하여 다시 만난 김정우와 영원히 행복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주었다.
다음날 나는 사무관 임명장과 추적2팀장 발령장을 받기 위하여 종각에 있는 서울지방국세청으로 출근했다. 7층 대회의실에서 청장으로부터 사무관 임명장 전수식을 통하여 대통령이 발행한 사무관 임용장을 받고 추적2팀장 발령장을 받았다. 간부식당에서 청장님, 국장님들과 신규 사무관들이 오찬을 하는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15층 식당 창문으로 보이는 인왕산과 청와대의 모습을 보며 점심식사를 하였다. 신규 사무관들의 얼굴에는 모두 자부심과 희망으로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패기와 기운이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나는 13층 추적2팀 사무실에 들러 여휴동 팀장으로부터 추적 2팀 업무를 인수인계받았다. 그림 보관에 대하여 신혜주 반장이 견책으로 최종 처분받고 관리책임자인 여휴동 팀장도 인사 경고 처분되어 지방청에서 일선 세무서로 좌천되어 하향 전보되는 거라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다.
“이 팀장님 늦었지만 사무관 승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무궁한 발전을 기원드려요.” 존댓말을 사용하는 그의 말투가 어색했지만
“여팀장님도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하시길 기원드릴게요. 강북세무서면 집에서 가까워 출퇴근하기가 훨씬 편하시겠네요.”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정식발령이 내일이라 오늘은 국장님과 다른 팀장들과 가볍게 인사하고 서울지방국세청에 근무하는 입사동기들과 건물 맞은편에 있는 아리스타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을 하였다. 모두 사무관 승진을 축하해주었지만 약간은 부러워하고 질시하는 느낌도 있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나는 사무관 임관 동기들의 모임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모임 장소인 시청역 고깃집으로 가기 위하여 커피숍을 먼저 빠져나왔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은 늦가을이라 은행잎과 단풍잎이 모두 떨어져 거리를 덮고 있었다. 시청에서 광화문 쪽으로 시위대의 행렬이 있어 거리에 차와 사람들이 엉켜서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덕수궁 근처의 약속 장소를 가기 위하여 시청역 2번 출구를 지나가고 있었다. 멀리서 예전에 나에게 세 가지 큰 행운이 올 거라고 외쳤던 인도의 도사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에 내가 그쪽으로 다가가는 순간 인도의 도사는 거리를 지나가는 대머리 아저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사장님 행운아세요. 올해 세 가지 큰 행운이 오실 거예요.”라고 유창하게 한국말로 말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뭐래. 정말이야.”검은 정장을 입은 초로의 신사는 그의 말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사장님이 제일 좋아하는 색과 숫자를 이 종이에 쓰시고 접어서 저를 주세요.”
노신사가 종이를 접어서 그에게 주자 그는 빨간색과 3을 말하며 노신사에게 맞냐고 물어보았다. 노신사는 그렇다고 하는 것 같았다. 세 가지 큰 행운을 갖기 위하여 주머니에 있는 돈을 복채로 주어야 한다는 인도 도사의 말에 대머리 아저씨는 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모두를 주는 것 같았다.
이 모든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눈에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나에게 온 세 가지 행운이 모두 우연이었다는 사실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강한 바람이 불어와 덕수궁 돌담길에 쌓여있던 노란 은행잎들이 비처럼 흩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