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친절 대마왕 - 9
9.
친절대상 시상식은 청와대에서 이루어졌다. 친절대상 수상자로 결정되는 과정에서 체납담당공무원인 소득세과의 임규진 조사관이 이의를 제기하여 작은 소동이 있었다. 동기인 임규진의 담당과장인 소득세 과장은 고충민원을 접수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의 공로는 인정하였지만 최종적으로 체납자의 압류를 해제하고 채권압류통지서를 발송하는 등 체납처분담당자는 자기의 소속 직원임을 서장에게 어필하여 친절대상을 임규진에게 주려하였지만 민원인이 친절공무원으로 적시한 내가 친절공무원으로 대상을 받아야 한다는 청와대의 유권해석으로 나는 특별승진과 함께 청와대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청와대 강당에서 친절대상을 수상한 후 수상자를 위한 오찬이 영빈관에서 마련되었다. 대통령의 축하연설과 수상자들의 수상소감이 오가는 자리는 화기애애하였다. 전복갈비탕을 주로 한 오찬은 많은 음식이 준비되어 먹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나는 뜻하지 않게 대학교 동기인 박호수를 만나게 된다. 그는 청와대 출입기자로 행사에 참석하여 나를 보게 되었다.
“아니 현기 아니야. 국세청에 근무한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보게 되네. 반갑다.”
“호수야. 학교 졸업하고 몇 년 만이야. 기자 생활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청와대 출입기자라니 출세했네. 부럽다.”
“여기 인사드려. 이 오재 국민고충 위원장님이야. 위원장님 이번에 친절공무원 대상을 받은 최현기 씨예요.”
“아 최현기 씨 친절사례를 보니까 우리 위원회에 꼭 필요한 인재 같아. 국민고충위원회에 근무할 생각 없나. 내가 대통령에게 직접 자네를 국민고충 위원회 국세청 관련 고충 전문관으로 특별채용을 요구할 생각인데.”
“저야 영광이긴 하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나는 뜻하지 않게 갑자기 세종시에 있는 국민고충위원회 세무고충 담당관으로 발령이 나게 된다. 나는 세종시에 원룸을 구해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나는 세종시에 내려가기 전에 신설동에 있는 마음 상담소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친절공무원 대상에 특별승진과 함께 고충위원회로 영전하는 것이 모두 상담소장의 최면치료로 남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세종시에 내려가기 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롤케이크와 음료수를 사서 신설동에 있는 마음 상담소를 찾아갔다. 검정고시학원 3층에 있는 사무실로 올라가니 마음 상담소가 아닌 내과병원이 있었다. 나는 병원 접수처로 가서 언제 병원이 개업하였느냐고 물어보았다.
“병원이 개원한 지는 10년이 넘었는데 왜 그러시죠?”
“아니 제가 3개월 전에 이곳에 있는 심리상담소에서 상담치료를 받은 적이 있어서 그래요.”
“심리상담소요? 이 건물에는 그런 곳이 없는데. 제가 이곳에 5 년 이상 근무했지만 그런 곳은 없었어요.”
접수처 여직원의 말에 나는 황당하여 건물 지하에 있다는 관리사무실로 들어가 보았다. 유니폼과 모자를 쓴 관리인은 나의 말에 3층의 관리대장을 보여주며 그런 상호를 가진 사무실은 계약된 사실이 없다고 나에게 말하였다. 나는 그에게 보여주려고 황수정이 나에게 준 명함을 지갑에서 꺼내 보았다. 그러나 명함의 금박 표시는 모두 사라지고 빈 종이만이 내 손에 쥐어 있었다.
귀신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만난 황수정과 그의 비서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강에서의 만남과 사무실에서의 최면치료. 그 이후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사실 등 꿈같은 3개월간의 지난 시절이 나의 머릿속을 혼란시켰다. 오늘 만난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보니 모두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신설동역으로 돌아가 전철을 타고 망우리의 옥탑방으로 귀가해 저녁을 먹고 널어놓은 빨래를 걷기 위하여 밖으로 나와 빨래를 걷다가 골목길을 바라보았다. 3개월 전 나를 건져주고 돌아가던 황수정을 생각하며 골목길을 바라보는 순간 그날처럼 청바지와 면티를 입고 갈색 생머리를 휘날리던 그녀가 거기에 서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생긋 웃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계단을 내려와 그녀가 서있던 골목길 마트 옆 전봇대 앞에 왔지만 그녀는 없었다. 하지만 전봇대 밑에 메모지를 꽂은 꽃다발이 있었다.
“국민고충위원회 발령을 축하드립니다. 조만간 우리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때까지 조금만 참아주세요.”라는 문구가 금박으로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