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와 함께 사라진 초능력

(단편소설) 친절 대마왕 - 10

by 하기

10.


나는 다음날 효창동에 있는 김구 기념관에서 이오재 국민고충 위원장으로부터 고충 전문관 임명장을 전수받고 꽃다발을 전해주기 위하여 학교에 연가를 내고 참가한 진희와 함께 용산에 있는 결혼식장에 갔다. 동기인 규진과 영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영미와 규진은 카풀을 하며 친해져 결국 결혼에 골인하였다.


“규진아 결혼 축하한다.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해.”


“아 현기 왔구나. 고마워. 지난번 청와대 초청건은 미안했다. 나는 괜찮다고 하는데 과장님이 자꾸 나를 친절대상에 추천하셔서. 하하.”규진이는 지난 일을 사과하며 계속 말했다.


“진희 씨도 왔어요. 두 사람 이제 결혼해야죠. 오늘 부케는 진희 씨가 받아줘요.”


“아니 전 우연찮게 왔을 뿐인데. 부케까지 받을 생각은 못했어요.”진희는 손을 저으며 말했지만 꼭 싫은 기색만은 아니었다. “정 받을 사람이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하는 진희의 말을 들으며 나는 결혼식 후에 프러포즈할 생각을 하면서 주머니에 넣어 둔 금반지를 만지작거렸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영미는 아름다웠다. 영미로부터 부케를 받은 진희도 눈이 부시게 아름다워 나의 눈은 연신 진희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 너무 좋아하는 데”영미는 약간 질투가 나는 듯 말했다.


“영미야 오늘 너무 예쁘네. 규진이와 행복하게 잘 살아.”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피로연장인 뷔페식당에 가지 않고 종각에 있는 종로타워 15층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나는 천천히 회전하는 레스토랑의 창문을 통하여 종로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주말의 종로는 차와 사람들이 가득하여 활기를 띠고 있었다. 나는 준비한 반지 케이스를 꺼내어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마시고 있는 진희에게 내밀었다.


“이거 뭐야?”


“진희야. 나 세종시에 내려가기 전에 너와 미래를 약속하고 싶어. 나와 결혼해줄 수 있니? 나는 너 없이는 안될 것 같아. 앞으로 매일 볼 수 없으니 이렇게 해야 안심이 될 것 같아.”


진희는 잠시 망설이더니 반지를 끼었다. 손가락에 꼭 맞는 듯했다. 나는 나의 커플링을 꺼내어 손가락에 끼었다.


“이로서 두 사람은 영원한 커플이 되었도다.”


손가락을 쳐들고 내가 말하자 진희도 동의하는 듯 생긋 미소를 지었다. 나는 진희의 진심이 궁금해 잠시 마음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예전과 같이 진희의 마음이 읽히지 않았다. 일시적인 현상이려니 했지만 그 이후로 계속 같은 상태였다. 사람의 맘을 읽는 나의 초능력은 프러포즈와 함께 날아가 버리고 만 것이다.


민원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없어지며 국민고충위원회에서 고충 담당업무를 하게 되어 혹시나 민원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오랜 경험으로 초능력이 없어도 고충 민원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고충처리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내가 고충위원회 고충 담당으로 첫 번째로 담당하게 된 민원은 부동산의 압류해제와 관련한 건이었다. 민원인은 국세 체납자로서 토지가 압류되어 있었다. 그 토지 위에 건물을 신축하였는데 토지 압류로 인하여 공유자들의 지분 이전이 되지 않아 건물의 사용승인을 받지 못해 많은 곤란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민원인은 일단 압류를 해제하고 건물의 사용승인이 난 후 건물과 함께 토지도 재 압류하면 국가에서 피해를 볼 일이 없다고 하였지만 관할 세무서에서는 압류해제 후 토지를 담보로 근저당 대출을 받거나 양도하는 경우 국가채권 일실 문제가 발생하여 담당자가 징계를 받는다는 사유로 압류해제를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관할 시청에 당해 토지의 압류해제 없이 건물의 사용승인이 가능한가를 확인해보았다. 담당자는 관련 규정을 적시하여 나에게 압류해제 없이 건물의 사용승인이 불가함을 설명하였다. 나는 관할 시청의 입장을 공문으로 작성하여 증빙서류와 함께 세무서 담당에게 발송하고 민원인에게는 당해 토지의 압류해제 후 근저당 설정 등 재산권에 대한 침해행위를 하면 체납처분 면탈범으로 검찰에 고발될 수 있다는 확인을 받고 당해 토지의 압류해제를 할 수 있도록 세무서에 권고조치를 하였다.


관할 세무서에서 압류해제 후 나는 관할 시청에 연락하여 사용승인이 빨리 나도록 독촉하였다. 결국 사용승인 후 세무서 담당에게 연락하여 바로 토지와 건물을 재 압류하도록 조치하여 민원인과 세무서가 모두 윈윈 할 수 있도록 민원을 처리하였다.


“최현기 조사관 역시 기대했던 대로야.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는구먼. 앞으로도 기대가 많아요. 하하.” 이오재 국민고충 위원장은 나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닙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인데요. 칭찬을 들으니 부끄럽습니다. 위원장님.”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이 많으니까 하는 말이에요. 최현기 조사관 같은 공무원만 있으면 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지금처럼 바닥을 기지는 않을 건데. 휴.”한숨을 쉬는 위원장의 말에 진심 어린 걱정이 어려 있었다.


나는 위원장실을 나와 집으로 퇴근했다. 집이라고 해봐야 건물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있는 오피스텔의 원룸이라 퇴근이라기보다는 야근을 계속하는 기분이 들었다. 오피스텔 앞에서 창문을 보자 내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 같은 금요일이면 학교에서 오후 수업을 빨리 끝낸 진희가 비밀번호로 현관문을 열고 내 방에 먼저 와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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